[기고/윤용규 강원대 교수] 공수처 법안과 입법의 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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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용규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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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11.05 11:40:25
  • 최종수정 2019.11.0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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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으로서의 적격성도 없다...어느 국민이 그것을 정당한 절차(due process)로 보겠는가.
윤용규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공수처법안에 대하여는 전문가들에 의해 위헌성과 위법‧부당함이 상세하고도 충분히 지적되었다. 그 논거가 차고 넘쳐 여기에 뭔가를 덧붙인다면 사족이 될 것이다. 하지만 파행과 대립으로 치닫는 입법상황은 염려스럽기 짝이 없다. 법을 이런 식으로 만들어도 되나, 놀라울 뿐이다. 의원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가 찬성하기만 하면 그 과정은 어떠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입법에서 쉽게 간과하는 점을 짚어보려 한다.

무엇보다 입법의 이유와 필요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새로운 제도나 법을 만들려면 모름지기 그 배경과 필요성을 법정책적으로 논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안의 ‘제안이유’에는 공수처가 왜 필요한지보다는 그저 필요하다는 주장만 나온다. 검찰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대해서는 다수가 공감한다고 하더라도, 그 수단이 꼭 공수처야 한다는 필연성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공수처법안은, 현행법도 검찰독립을 충분히 보장하고 있는데 왜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지부터 설명했어야 한다. 만일 잘 지켜지지 않아서라고 답하려면, 기존의 법이 작동되지 않은 원인을 먼저 분석해야 했다. 법에 흠결이 있는지, 누가 법을 지키지 않았고, 누가 지키지 못하게 했는지 등을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영역에서 이러한 반성을 했다면 우리는 원인과 그 해결책을 벌써 알았을 것이고 지금 같은 소모적 소동도 일어나지 않았다. 성찰 없이 무작정 새 법을 만들려는 것은 정확한 진료 없이 처방하는 의사와 같다.

필요성을 따지지 않는 입법 시도는 종종 현실문제를, 현행법을 성실히 해석‧적용하기보다 새로운 입법으로 해결을 미룬다는 점에서 일종의 ‘도피’인 것이다. 이는 헌법가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입법을 한낱 정치 술수로 전락시켜, 정치적 불성실과 과오에 대한 책임을 감추는 수단이 되는가 하면, 게으른 의회를 열심히 일하는 정치인으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양산되는 법률 가운데 불필요한 중복‧과잉 입법이 적지 않으니, 법체계는 번문욕례가 되어간다. 천박한 법률만능주의이자 입법의 타락이다.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공수처법안은 이미 검찰독립과 공직부패 처벌 관련 법률을 적용‧감독하는 기관의 직무유기는 숨기고, 그간의 검찰의 정치종속과 공직부패가 마치 기존의 법이 부족해서 그런 것인양 책임을 전가하였다. 그러나 국회의 ‘입법으로의 도피’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의회나 정부의 비겁한 책임전가로 비쳐질 뿐이다. 살아있는 법을 함부로 탓하고 사문화시키는 국회의 오래된 입법일탈은 사실은 법집행기관이나 입법부의 자기부인이자 국민에 대한 기만이다. 현행법이 왜 안 지켜지는가를 따져보지 않고도 어떻게 새로운 법은 잘 지켜질 것이라고 장담하는가. 위선이다.

이 법안이 국회까지 간 과정은 또 어떠했나. 지난 4월 ‘신속처리(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여야간 몸싸움이 얼마나 심했던지, 의원 110명이 수사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국민과 국가를 위한 의정활동이라고 지금도, 1년 후도 말할 수 있을까. 어찌됐든 이 일로 법안의 순수성과 의회의 능력부족은 만천하에 드러났다. 패스트트랙이 물리적 충돌을 막기 위해 만든 국회선진화법이라는 사실엔 쓴웃음이 나오지만, 뼈아픈 성찰을 상기시켰다. 바뀌어야 할 것은 법이 아니라 사람인 것을... 법안이 국회로 갈 때 그들이 즐겨 쓰는 “존경하는 아무개 의원님”은 없었다. 의회주의의 기초는 물론 ‘사보임’ 절차도 어겼다니, 과연 이 법안이 법안으로서의 적격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을까. 어느 국민이 그것을 정당한 절차(due process)로 보겠는가. 국민의 승인을 얻지 못한 법(안)은 불행하다.

이쯤에서 우리는 다음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비리나 범죄도 ‘근절’될 수는 없다는 사실 말이다. 모든 비리를 척결하는 완벽한 제도나 법이 없음도 물론이다. 법의 불완전함 이전에 불완전한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처럼 포장하면 그것이 위선이다. 헌법가치의 실천을 일시적으로 위임받은 정부는 그래서 축적된 법원칙과 제도를 ‘겸손히 존중’해야 한다. 정부의 권한행사에는 ‘견제와 균형’원리에 의한 내재적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야할 정책이란 애당초 없다. 각료 임명과 입법에 온 나라가 소용돌이에 휘말린다면 그 한계를 한참 벗어난 것이다. 그만 둬야 한다.

윤용규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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