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잠 설치며 KBS의 ‘소방헬기 이륙영상 경찰 미제공’ 밝혀낸 젊은 기자의 기자정신
다른 일도 아니고 사람의 목숨이 걸린 사안에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KBS 기자
울릉경비대장 “KBS에서 독도경비대가 원하는 대로 했으면 실종자 수색 도움 받았을 텐데...”
인적-물적 한계 있지만 ‘작지만 강한 언론사’의 존재이유를 다시 입증한 펜앤드마이크

 

권순활 부사장 겸 편집제작본부장
권순활 부사장 겸 편집제작본부장

일요일인 3일 오전 36분 휴대폰 벨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한참 곤히 잠든 필자를 깨운 주인공은 함께 일하는 심민현 기자였다. 심 기자는 지난달 31일 밤늦게 이륙한 직후 독도 인근 해상에 추락해 소방대원과 선원 등 7명이 실종된 소방헬기 추락 사고와 관련해 KBS2일 저녁 뉴스에서 단독 보도라며 내보낸 헬기 이륙 영상에서 KBS의 행태에 큰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긴급 보고했다.

한참 잠들어있는 꼭두새벽에 기자가 업무보고를 위해 상사, 그것도 거의 부친과 비슷한 연령대의 상사를 전화로 깨운다는 것이 일반적으로는 잘 이해가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평소 기자들에게 적어도 펜앤드마이크의 편집제작 총괄책임을 맡고 있는 동안은 시간과 요일을 불문하고 하루 24시간 일을 한다는 마음가짐이니 급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해둔 터였다. 갑자기 단잠에서 깨어나 한참은 비몽사몽 상태이긴 했지만 잠을 깨웠다고 싫은 기색을 조금이라도 내비친다면 앞으로 시간을 다투는 중요한 기사거리가 있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KBS2일 메인뉴스인 저녁 9시 뉴스에서 <독도 추락 헬기 이륙 영상 확보...추락 직전 짧은 비행>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KBS는 추락사고 직전 소방헬기의 마지막 비행 영상과 함께 독도 파노라마 영상 장비 점검차 야간작업을 하던 KBS 직원이 이례적으로 늦은 밤 착륙하는 헬기를 찍은 영상이라고 소개했다. KBS의 이 기사가 포털사이트를 통해 보도된 뒤 2일 오후 102분 박윤창 독도경비대 작전팀장(경사)이 댓글을 통해 추락사고 직후인 1KBS가 문제의 헬기 이륙 영상을 독도경비대 측에 숨겼다가 하루 뒤 소위 단독 보도를 통해 내보냈다면서 KBS의 행태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심 기자는 3일 오전 1시 우연히 이 댓글을 발견했고 29분 독도경비대와 직접 통화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뒤 보고를 해온 것이었다.

보고를 받으면서 KBS가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다는 직감이 왔지만 정식으로 기사를 내보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언론계에서 이른바 특종과 오보(誤報)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사회적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사안을 우리 기자가 단독취재했을 때일수록 보도까지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오랫동안 몸담은 동아일보와 새로 창간한 펜엔드마이크에서 30년 넘게 수없이 많은 민감한 기사들을 현장기자로서 취재했거나 간부로서 게이트키핑 업무를 한 경험을 통해 본능적으로 몸에 배어 있다. 더 냉정하게 말하면 기자가 단독 취재했다고 보고한 내용일수록 정교한 게이트키핑을 거치지 않고 서둘러 보도하면 뒷감당이 안될 만큼 그만큼 리스크도 크다.

남편이 심야에 갑자기 업무 관련 전화를 받는 바람에 함께 깨어난 아내를 옆에 두고 심 기자에게 확인에 확인을 거쳐 <KBS 독도 추락 소방헬기 이륙 영상찍고도 독도경비대에 촬영 안 했다거짓말 의혹 파문>이란 제목의 톱기사를 내보낸 것은 3일 오전 434분이었다. 첫 기사가 나간 뒤 심 기자는 3일 낮 1232분 독도경비대의 상급 부대인 울릉경비대 대장인 김욱조 경정과의 통화를 거쳐 오후 158<김욱조 울릉경비대장 "KBS, 소방헬기 이륙 영상 없다고 거짓말"...펜앤드마이크 단독보도 확인>이란 제목의 단독기사를 추가로 내보냈다. 이어 이날 오후부터 국내 거의 전 언론매체가 관련 내용을 보도하고 KBS가 공식 보도 자료와 9시 메인뉴스를 통해 사과했다. 펜앤드마이크의 보도가 완벽한 특종으로 판명되고 나서야 첫 기사를 내보낸 뒤에도 확실한 기사라고 보이지만 혹시라도 우리 보도가 무리한 기사로 드러나면 어쩌나라는 일말의 불안감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었다.

독도 추락 헬기 이륙 영상을 독도경비대에서 제공하지 않고 숨겼다가 다음날 단독 보도라며 내보낸 사람은 KBS 강모 기자라고 한다. 기자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특종 욕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번의 경우 그는 다른 사안도 아니고 사람의 목숨이 걸린 사안에서 기자는 물론, 인간으로서는 해서 안 될 짓을 했다. KBS3일 오후 발표한 공식 입장문에서 단독 보도를 위해 영상을 숨겼다는 비난은 사실과 다르다고 변명했지만 촬영한 영상 중 실종자 수색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영상은 독도경비대에 제공하면서 가장 중요한 영상은 촬영하지 않았다며 숨긴 것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인가. 김욱조 울릉경비대장이 심민현 기자와의 통화에서 소방헬기 이륙 영상이 없다고 한 ’KBS의 거짓말을 다시 확인하면서 “KBS측에서 독도경비대가 원하는 대로 해줬으면 실종자 수색에 도움을 받았을 텐데 아쉽다고 한 것은 이번 문제의 본질을 지적한 것이었다.

이번 사안에서 자유독립언론 펜앤드마이크의 존재 이유가 다시 입증됐다는 점도 기억할 만하다. KBS의 엄청난 잘못이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은 펜앤드마이크의 젊은 기자가 휴일인 일요일 새벽 KBS 기사에 달린 댓글을 우연히 발견하고 밤잠을 포기하면서까지 독도경비대에 전화취재를 하는 등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면서 취재에 매달린 긍정적 의미의 기자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칫 묻혀버릴 뻔한 중요한 사안을 사명감을 가진 기자가 발굴해 폭로하고 공론화시킨 것이었다.

아직 펜앤드마이크는 주류 신문이나 방송처럼 충분한 취재인력을 갖추지도 못했고 재정적으로도 그리 여유가 없다. 하지만 그런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창간 후 다른 언론에 앞서 크든 작든 이런 의미 있고 차별화된 기사들을 심심찮게 발굴해 내보내고 있다. 이 정도면 감히 작지만 강한 언론사로 평가받을 만하지 않을까. 필자도 일요일 새벽부터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하루 종일 기자들과 함께 일에 매달려 이날 밤에는 몸도 마음도 파김치 상태였다. 비록 심신은 지쳤지만 그래도 펜앤드마이크가 지향하는 자유 진실 시장의 가치를 함께 하면서 물심양면으로 성원하는 정기구독자 등 국내외의 깨어있는 한국인들을 실망시키지 않은 하루였다는 점에서 언론계 최일선에서 현역으로 일하는 작은 보람을 느낀다.

권순활 부사장 겸 편집제작본부장 ks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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