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민족'이란 이름에 숨어 '괴물'같은 추악한 이중성을 지닌 문화인 질타한 작품
고은 이윤택 성추행 논란 속 1994년 출간된 '사로잡힌 악령' 다시 부각돼

최영미 시인이 시(詩) ‘괴물’을 통해 'En 선생'의 성추행 행태를 고발한 데 이어 문화예술계 안에서 유사한 피해 사례 폭로들이 이어지고 있다. 최 시인이 ‘괴물’로 지칭한 ‘En 선생’이 좌파 문학계 원로(元老)인 고은 시인(85)이 유력하다는 주장이 잇달아 나온 가운데 연극계에서 영향력이 큰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감독(66) 또한 심각한 수준의 성추행 논란에 휩싸이며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베스트셀러 소설을 잇달아 발표했던 이문열 작가(70)가 1994년 발표한 단편 ‘사로잡힌 악령’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 작품의 내용을 보면 등장인물이 좌파 문학인, 특히 ‘고은 시인’을 연상시킨다는 논란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작가의 ‘사로잡힌 악령’은 이문열 중단편집 <아우와의 만남>에 수록돼있으며, 줄거리로는 법조계에 종사하는 인물이 한 시인을 관찰하며 그 이중적인 행태를 사실적으로 서술한다. 이를 통해 시인의 위선과 타락한 그를 묵인하는 부조리한 시대상을 고발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시인은 대외적으로는 독재에 저항하는 시인이자 진보적인 지식인으로 포장됐지만, 그 이면에서는 주변 온갖 여자들을 건드리고 다니며 추잡하고 방탕한 생활을 한다.

시인은 자신의 명성을 활용해 신출내기 여류시인과 문학소녀, 여대생, 친구의 부인 등을 농락하는 ‘악’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의 악이 번성하는 한 파렴치한 엽색(獵色)의 식단도 풍성했다. 자랑스레 휘젓고 다니는 색주가는 기본이었고 손쉽고 뒷말없는 유부녀는 속되게 표현해 간식이었다. 더욱 악의 섞어 말하자면 신선한 후식도 그 무렵에는 그에게는 흔했다. 화대도 없이 몇 달 침실봉사만 한 신출내기 여류시인이 있는가 하면, 뜻도 모르고 관중의 갈채에만 홀려 있다가 느닷없이 그의 침실로 끌려가 눈물과 후회 속의 아침을 맞는 얼치기 문학소녀가 있었고, 그 자신이 과장하는 시인이란 호칭에 눈부셔 옷 벗기는 줄도 모르다가 (중략) 놀라 때늦은 비명을 지르는 철없는 여대생도 있었다.”

“어디선가는 좋지 못한 행실로 술상을 덮어쓰고, 또 어디선가는 그 동안 단짝으로 어울려 다니던 문사에게까지 된통으로 얻어맞았다는 소문이 들렸다. 유부녀를 집적이다 눈이 뒤집혀 덤비는 그 남편에게 쫓겨 밤중에 담을 넘는 걸 보았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배가 북채만한 여동생을 데리고 나타나 칼을 빼들고 설치는 청년 앞에 불품 없이 꿇어앉아 싹싹 비는 꼴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222쪽)”

민주투사의 가면을 쓴 소설 속 시인은 ‘민주화’란 이름 아래 숨어 추악한 모습을 보인다. ‘문인시국선언’을 작성한 몇몇 문인들이 시국사범으로 검찰에 붙잡혔는데 ‘그’가 주모자 급으로 구속된 이후부터는 허무주의ㆍ탐미주의 시인이 돌연 독재에 항거하는 저항시인으로 등장한다.

또한 ‘민족’이라는 명분 하에 시인의 ‘타락한 악행’은 묵인하고 보호하며 ‘우리는 하나’라는 내밀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시인 주변 운동권 동지들의 모습을 묘사하기도 한다. 성추행정도야 작은 실수일 뿐이라는 식으로 그의 과거는 은밀한 소문으로 묻히는 모습이다.
 

“동지들의 철저한 함구도 그의 악을 보호해 주었다. 그의 여러 악업들은 그때만 해도 운동의 과정에 흔히 있을 수 있는 동지의 실수였을 뿐이었다. 따라서 그것들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은 곧 그들 운동의 내분을 드러내는 것쯤으로 여겨져 내부에서만 은밀한 소문으로 떠돌았다.”

“어느 날, ‘나’는 그가 주모자급의 시국사범이 되어 구속된 것을 발견했다. 들리는 바로는 순수문학 마당에서 모든 게 거덜난 그가 술김에 구속문인 석방탄원서에다 서명한 것이 변신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남산으로 끌려가 사나흘 호된 취조를 당했고, 그곳을 나와보니 ‘저항 시인’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후 10.26과 12.12를 거쳐 5.18이 터지면서 그는 ‘저항시인’에다 ‘민중시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날들의 끄트머리에는 ‘민족시인’이란 칭호가 다시 덧붙여지게 되었다. 그가 쓰는 책은 일정 부수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늦은 나이임에도 젊고 아름다운 약사를 아내로 얻게 되었다”

“이런저런 성명서마다 감초처럼 끼는 그의 이름과 엄청나게 부풀려져 발표되기 일쑤인 80년대 초 시국사건에의 연루, 투옥, 고문, 재판, 중형으로 이어지는 수난의 이미지는 이제야말로 그의 대중적인 지명도를 전국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그가 편승한 대의는 지식인 사회에서까지 그 명성의 실질을 보장해 주었다.”

“그는 이제 거짓, 뻔뻔스러움, 천박, 비열 따위 다분히 감정적인 험구의 사정권을 가뿐히 벗어나 거창한 반독재의 대의 뒤에 숨어 버렸다. 그리고 뒤이은 유신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더욱 휘황한 빛을 뿜기 시작한 반독재의 대의는 그의 지난 행적에 대해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이 작가는 당시 ‘정의’와 ‘대의’를 외치며 독재에 저항하는 운동권 인물들의 모습을 서술하면서도 그러한 명분을 토대로, “그가 쓰는 책은 내용을 묻지 않고 일정 부수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그의 시간을 비싸게 사려는 사람들도 늘어났다”며 반사이익을 얻는 문단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시인의 이름에는 저항시인, 민족시인이란 칭호가 따라붙었으며, 문단은 민족주의 진영에 거스르기 힘든 처지에 놓인다. 카르텔의 범주에 속했는지 아닌지가 '정의'의 척도로 비춰지는 듯하다.

그러나 책이 처음 나왔을 당시 ‘민족’ ‘저항’이라는 이름을 이어받은 이른바 ‘민족ㆍ진보 문단계’ 등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 작가의 작품을 ‘악의적 모략으로 가득찬 치졸한 작품’이라고 악평하는 이들도 있었다. 고은 시인이 소속된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가 소설 속 등장인물을 문제삼자, 이문열은 “작품을 보면 어떤 시인의 행보가 연상되겠지만 그를 개인적으로 공격하는 작품이 아닌 1980년대의 시대상을 담아내는 작품으로 봐 달라. 내가 더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악에 대한 우리의 심리적 대응 방식이었다”고 밝혔다. 이후 이 작가는 시대상을 그린 작품이 개인을 겨냥한 채 읽히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하여 ‘사로잡힌 악령’을 삭제한 뒤에 다시 책을 내놓았다.

한편, 이문열 작가에게 항의했던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는 1974년 11월 18일 생겨난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후신이며, 6.15 남북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문학작가대회를 개최하는 등 ‘민족’의 가치를 앞세워 활동한 단체이다. 이후 2007년에 한국작가회의로 개칭한다. 한국작가회의는 촛불집회, 친일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백남기 농민 추모 대회, 강정평화대행진 참가, 세월호 특별법 개정 촉구 범국민 대회, 노동자 복직 운동, 사드 배치 반대 집회 등에 참가하거나 참여를 독려하며 인권과 민족 등의 가치를 강조해온 단체이다.
 

고은 시인의 서재를 재현한 곳이자 '만인보' 관련 자료 전시 공간

최영미 시인과 이문열 작가, 두 작가는 각기 작품에서 서술되는 ‘En선생’과 ‘그’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명확한 실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고은’ 시인의 위선을 폭로하는 것이라는 추측이 확산되며 파문이 커지고 있다.

최 시인은 지난 1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그는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시를 읽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추가적인 단서를 서술하며 추측에 더 힘이 실리기도 했다. 우선 고은 시인은 2014년 5월 3일 수원평화비(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열릴 당시 추모시를 헌납한 바 있어서 최 시인이 가리킨 ‘시를 읽었던 사람’에는 포함된다. 최 시인은 또한 “1992년 등단 이후 제가 원하지 않는 신체적 접촉을 했던 남자 네명은 대개 민족문학작가회의와 가까운 문인들”이라고 밝히며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를 언급한다는 점에서 과거와 엮이는 지점이 있다. 이어 최 시인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제외되는’ 식으로 문단의 주변부로 밀려난다. 희롱당하고 싶지 않아 문단 모임을 멀리하고 술자리에 나가지 않으면, 원고청탁도 뜸해지고, 신간이 나와도 사람들이 모르게 더 큰 불이익을 당한다”며 문단 내 존재하는 카르텔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한편 한국 문단 내에서 그리 많지 않은 우파 성향 작가인 이문열 작가는 고은 시인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상당수 좌파 문인이 사생활 문제나 돈 문제와 관련해 잡음에 휩싸인 것과 대조적으로 등단 후 이런 문제를 둘러싸고 물의를 일으킨 적이 없다.

이세영 기자 lsy215@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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