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책, 아르헨티나 빼닮아...다시 후진국으로 추락하는 유일한 사례 될 듯"
"한때 경제 대국이던 아르헨티나 국력이 기운 원인은 페론주의(Peronismo)"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가 경제위기에 처한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중도좌파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자)로 분류되는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의 당선에 대해 "한 번 포퓰리즘의 맛을 본 나라의 국민은 이를 쉽게 끊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박정자 교수는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복지의 달콤한 기억을 잊지 못하는 국민들은 다시 좌파 정부를 선택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교수는 과거 2007~2015년 대통령 당시 페르난데스의 ▲공무원 증원으로 인한 200억 달러 상당의 세금 낭비 ▲청소년들에게 과도한 수당 지급 ▲연금 기준 완화로 인한 연금 수급자 급증 ▲민간 기업 보조금 인상 ▲공공 서비스 요금 감소 등 포푤리즘 정책을 꼬집으면서 이로 인한 물가상승률과 인플레이션 급상승, 페소화 가치의 급락 등을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좌파 정권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마약 중독처럼 한 번 포퓰리즘의 맛을 본 나라의 국민은 이를 쉽게 끊지 못하기 때문"이라면서 "한때 경제 대국이던 아르헨티나가 국력이 기운 결정적인 원인은 대표적인 남미형 좌파 포퓰리즘인 페론주의(Peronismo)"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우리에겐 (아르헨티나가)반면교사"라면서 "1세기만에 후진국에서 선진국 대열에 오른 우리나라지만 임금과 복지, 공공 부문 등 아르헨티나를 빼닮은 정책을 보면 한 세기 안에 선진국으로 부상했다가 다시 후진국으로 추락하는 유일한 사례가 될 듯 하다"고 우려했다.

성기웅 기자 skw424@pennmike.com

 

-이하 박정자 교수 페이스북 글 전문(全文)-

Don't cry for me Argentina!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오늘 다시 좌파 정부를 선택했다.
오늘 아침 뉴스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가 새로 부통령이 되었다고 전한다. 그녀는 2003년에서 2007년까지 대통령을 지낸 네스토르 카를로스 키르치네르의 부인이다. 영부인으로 4년 있다가 2007년 남편이 죽자 대통령에 출마하여 첫 여성 대통령이 되었고, 2015년까지 재임했다. 이들 부부 대통령은 좌파 포퓰리즘의 극치였다. 이들이 집권한 12년 동안 나라는 거의 망했다.

공무원 수를 2배 가까이 늘려, 근로자 다섯 명 중 한 명이 공무원이 됐다. 일 하지 않고 월급만 타가는 유령 공무원들에게 준 국민 세금이 매년 200억 달러에 달했다. 18세 미만 청소년 360만 명에게 수당을 지급하고 전기·수도요금에 정부 보조금을 쏟아 부었다. 20년만 일하면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해 연금 수급자를 두 배로 늘렸다. 민간 기업에 주는 보조금을 GDP 대비 1%에서 5%까지 늘렸고, 대중교통 등의 공공 서비스 요금을 낮추었다. 공립학교 학생들에게 노트북 컴퓨터 500만대를 공짜로 줬다.
세금만으로 선심 쓰는 데 한계가 있자 돈을 찍어냈다. 그러자 물가상승률이 연간 30%를 넘었다. 이 숫자가 부담이 되자 정권은 물가상승률을 10%라고 조작하기 시작했다. 통계와 현실 차이를 숨기기가 힘들어지자 일부 통계는 발표를 중단했다.
인플레이션이 40%로 치솟고 페소화 가치는 50% 급락했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45%로 올린 후, 또 다시 60%로 올렸지만 외국 자본의 이탈을 막지 못했다. 결국 크리스티나 대통령은 외환 보유액의 6배에 달하는 대외 부채로 나라를 거덜 내고 퇴장했다.

좌파 포퓰리즘에 싫증 난 국민이 2017년 우파 정부를 선택했으나 파탄 난 경제는 살아나지 않았고, 결국 2018년에 아르헨티나는 IMF(국제통화기금)로부터 560억 달러를 빌리는 신세가 됐다. 그리고 복지의 달콤한 기억을 잊지 못하는 국민들은 오늘 다시 좌파 정부를 선택했다. 한 번 포퓰리즘의 맛을 본 나라의 국민은 이를 쉽게 끊지 못한다. 마약 중독과 같다. 한때 경제 대국이던 아르헨티나가 국력이 기운 결정적인 원인은 페론주의다.

페론주의(Peronismo)란 무엇인가? 대표적인 남미형 좌파 포퓰리즘이다. 친(親)노동정책과 저소득층 복지정책 그리고 외세 퇴치 등이 주요 강령이다. 일종의 사회민주주의로 1946년에 집권한 후안 도밍고 페론(Peron, 1895~1974)과 그의 아내 에바 페론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들은 '경제 독립'을 내세워 외국 자본을 몰아내고 철도, 전화, 가스, 전기, 항공사 등을 국유화했다. '노동자 수입 증대'를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현금을 살포했고, 어느 해는 노동자 임금을 20%나 올린 적도 있다. 현대 좌파 포퓰리즘의 원조로 평가받는다.
그 결과 빈부 격차를 일시적으로 줄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탄탄한 산업 기반을 닦거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데는 실패하여, 결국 아르헨티나 경제는 서서히 침체에 빠져 들었다. 모든 의사 결정이 대통령인 페론을 통해야 했기 때문에 정당이나 의회 정치가 발전하지 않은 것은 물론, 부정부패 추문이 끊이지 않았다. 페론 자신이 집권 기간 동안 모은 재산이 금괴 1200개, 비행기 1대, 요트 2대, 자동차 19대, 아파트 17채, 귀금속 1500점에 달했고, 아내 에바 페론의 사치도 극에 달했다. 횡령한 거액의 돈을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에 넣어 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작은 에바'라는 뜻의 '에비타'는 후안 페론의 아내다. 1976년 앤드류 로이드가 뮤지컬 ‘에비타’를 만들었고, 1996년 알란 파커 감독이 가수 마돈나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Don't cry for me Argentina 라는 애절하고 아름다운 노래가 전 세계의 팬을 사로잡았지만, 실제의 에비타는 아르헨티나의 재앙이다. 예술의 아름다움이 현실에서는 이렇게 해악을 끼칠 수도 있다는 생생한 사례라 하겠다. 아르헨티나 경제는 페론주의 때문에 망했지만, 뮤지컬 '에비타'와 함께 에바 페론은 아르헨티나 빈민층의 영원한 성녀로 남아 있다.

그녀는 후안 페론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무기였다. 작은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15세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올라와 나이트클럽 댄서, 라디오 성우 등을 거쳐 배우가 되었다. 1944년 지진 난민 구제 모금 행사에서 노동부 장관 후안 페론과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1945년에 페론이 대통령이 되자 그녀는 퍼스트레이디가 되어, 복지 사업과 봉사활동으로 가난한 노동계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끌어내었다.
천한 농민의 사생아에서 퍼스트레이디까지 오른 드라마틱한 인생과 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으로 그녀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국민들은 그녀를 부통령 후보로 추대했다. 그러나 그녀는 1952년 암 말기 진단을 받고 33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마치 성녀(聖女)같은 대우를 받으며 국가 원수에 맞먹는 예우의 국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아르헨티나는 20세기에 선진국 대열에서 탈락한 유일한 국가로 경제학계의 연구 대상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제발전론의 대가 사이먼 쿠즈네츠(1901~1985년)에 의하면 세계에는 네 가지 유형의 국가가 있다. 선진국(developed)과 후진국(underdeveloped), 그리고 일본과 아르헨티나다. 한 세기 안에 선진국과 후진국의 벽을 뚫고 선진국에 진입한 국가가 일본이라면 아르헨티나는 정반대 케이스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도 "공산주의권 몰락을 제외하고 20세기 경제의 최대 실패 사례는 아르헨티나"라고 했다.

100년 전 아르헨티나는 1인당 국민소득 면에서 세계 10위의 경제 부국(富國)이었다. 팜파스라 불리는 비옥한 초원에서 생산되는 대두(콩)와 밀·옥수수·쇠고기 등을 수출해 국부를 축적했다. 당시 아르헨티나 경제가 얼마나 풍족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 이탈리아 소년 마르코가 외국에 돈 벌러 간 엄마를 찾아가는 여정을 다룬 『엄마 찾아 3만리』다. 마르코 엄마가 가정부로 일하던 곳이 아르헨티나였다. 이랬던 아르헨티나가 주기적으로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을 받는 국가로 전락하였다.

우리에겐 반면교사다. 1세기만에 후진국에서 선진국 대열에 오른 우리나라는 쿠즈네츠의 분류법을 따르면 일본형이다. 하지만 임금과 복지, 공공 부문 등 아르헨티나를 빼닮은 정책을 보면 한 세기 안에 선진국으로 부상했다가 다시 후진국으로 추락하는 유일한 사례가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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