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좌파 포퓰리스트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현재 48% 이상 특표...당선 확정
블룸버그 “페르난데즈 정부, 조만간 국가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 이를 것”

페르난데스 대통령 당선인(오른쪽)과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 겸 부통령 당선인 [EPA=연합뉴스]
페르난데스 대통령 당선인(오른쪽)과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 겸 부통령 당선인 [EPA=연합뉴스]

경제위기에 처한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선택은 또다시 좌익 포퓰리즘이었다.

27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중도좌파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자)로 분류되는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가 마우리시오 마크리 현 대통령을 물리치고 승리했다.

페르난데스 후보는 개표가 95%가량 진행된 현재 48%를 득표했다. 중도우파연합 ‘변화를 위해 함께’ 후보로, 연임에 도전한 마크리 대통령은 40%를 득표했다. 아직 개표가 5%가량 남았지만 아르헨티나 주요 일간지들은 페르난데스 후보를 당선인으로 표기했다.

아르헨티나의 대선에서 대통령 당선인으로 확정되려면 최소 45%를 득표하거나, 40%를 얻고 경쟁자는 10%p 이상 따돌려야 한다.

아르헨티나 유권자들은 악화된 경제 사정과 개정 긴축 정책에 대한 반발로 마크리 정부에 등을 돌린 것으로 분석된다. 마크리 정부는 지난 2018년 국제통화기금(IMF)로부터 560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교육 등 정부 보조금을 삭감하고 세금을 인상하는 등 긴축재정을 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거센 반발과 함께 지난 8월 대선 예비선거에서 득표율이 부진하자 IMF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포퓰리즘으로 선회했다. 포퓰리즘은 장기적인 국가 발전보다는 단기적으로 대중이 선호하는 선심성, 대중영합 정책을 남발해 권력을 유지하는 정치체제로 ‘망국병’으로도 불린다.

이날 페르난데스의 승리로 아르헨티나는 4년 만에 다시 우파에서 좌파로 정권이 교체됐다. 페르난데즈 후보의 승리는 아르헨티나가 페론주의로 회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지난 1940년대 후안 페론 대통령과 영부인 에바 페론이 집권한 후 아르헨티나에서 막강한 노동조합의 지지를 얻기 위해 반(反)기업, 친(親)노동정책을 펼쳤다. 수출기업이나 자본가에서 거둔 부를 노동자와 빈민에게 재분배해 서민층의 소득을 늘리고 내수시장의 규모를 확대하는 이른바 ‘페론주의 정책’을 시행한 것. 당시 페론 정부는 대표적인 수출품인 곡물을 독점 구매해서 직접 판매하고 그 수익을 서민 보조금과 복지 증진에 투입했다. 이 같은 정책으로 페론 정부는 집권 초기에 아르헨티나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을 매년 20%씩 증가시켰다. 또한 무상의료, 최저임금 인상, 은퇴자 연금 확대 등 전 국민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확대했다.

그러나 1950년대 들어 주요국의 전후 복구가 대부분 완료되면서 아르헨티나 제품의 수요가 크게 줄어들자 경제는 급격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무리한 복지로 인한 만성 적자를 메꾸기 위해 아르헨티나 정부는 외국에서 차관을 들여오거나 직접 돈을 찍어냈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의 물가 상승률은 연 50%까지 치솟았다. 서민들의 소득은 늘었지만 화폐 가치가 하락해 구매력이 떨어졌고 무역적자와 경기침체로 사회가 혼란에 빠졌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의원으로 잠시 활동한 것 외에 정치 이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페르난데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21세기의 에바 페론’으로 불리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전 대통령의 덕분으로 분석된다.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집권했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페르난데스 당선인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출마했다. 그는 대통령 재임 시절 공무원 증원, 연금 확대와 같은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을 시행해 아르헨티나의 경제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페르난데스 후보는 오는 12월 10일부터 집권에 들어간다. 그는 소비와 고용주들과의 폭넓은 합의 체결로 임금을 상승함으로써 경제를 살리겠다고 약속해왔다. 

블룸버그통신은 28일 “페르난데스의 광범위한 약속은 그가 집권에 들어간 후 조만간 즉각적인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라며 “경제규모가 줄어들고, 인플레이션이 50% 이상에 이르며, 실업률이 10% 이상인데다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극빈층임을 감안할 때 투자자들은 페르난데즈 정부도 조만간 국가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페르난데스는 연합세력인 좌익세력들의 사회적 지출을 늘리라는 요구와 지난해 560억 달러를 빌린 IMF의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다”며 “만일 페르난데스가 균형 예산을 위험에 빠뜨리는 정책을 시행한다면 현금을 지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달 IMF 관계자들은 페르난데스를 미국 워싱턴DC에서 만나 “아르헨티나 채권에 투자한 이들은 가파른 손실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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