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펜서 존슨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 많던 치즈가 사라졌음을 인정하는 용기
박정희 대통령의 혁명은 텅 빈 창고를 버리고 떠난 것에서 시작
이제야말로 그분의 개척정신을 이어갈 때가 아니겠는가!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

- 치즈는 하룻밤 사이에 사라져버린 게 아니었다. 치즈의 양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고 치즈의 맛도 변해가고 있었다. 마음만 있었다면 다가오는 미래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는데도 그들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 스펜서 존슨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중에서.

치즈가 몽땅 사라졌다. 평생 먹을 걱정 안 하고 마음 편히 살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열어보니 창고가 텅 비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두 명의 꼬마 인간, 헴과 허는 단 한 장의 치즈도 남아 있지 않은 창고를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다. "누가 내 치즈를 다 가져간 거야?" 그들은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절망하고 분노한다. 혹시 잘못 본 게 아닐까. 밤새 누군가 가져다 놓지 않았을까. 다음날에도 또 다음 날에도 창고를 찾아간다. 하지만 텅 빈 곳간이 저절로 채워질 리 없다. 

1998년에 발행된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스펜서 존슨이 쓴 어른을 위한 동화이다. 책 속의 화자(話者) 마이클은 고등학교 동창모임에서 자신이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게 해준 치즈 창고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준다. 왜 이토록 짧고 단순한 이야기가 마이클은 물론 동창들, 그리고 많은 독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을까.

꼬마 인간들과는 달리 생쥐 스니프와 스커리는 똑같은 현실 앞에서 놀라지 않는다. 매일매일 자신들이 먹어치운 만큼 치즈의 양이 줄어드는 것을 계산하고 있던 그들은 오늘 같은 날이 닥칠 줄 알았기에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난다. 더 맛있는 치즈로 가득한 새로운 창고를 일찌감치 찾아낸 것이다.  

눈앞에 닥친 불행을 인정하지 못해 어쩔 줄 모르던 허도 창고를 떠난다. 원래 치즈가 있던 곳이니까 기다리면 다시 채워질 거라고, 무엇보다 미지의 세계는 위험하다고 말하는 헴의 만류를 뿌리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허는 두려움을 이기고 밖으로 나서자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걸 느낀다. 과거와 비교해 대단하진 않지만 작은 치즈 창고를 마침내 발견했을 때 그는 용기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는다.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결심만으로도 인생에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나는지, 얼마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게 된 것이다. 허는 자신이 느낀 보람과 기쁨을 친구도 반드시 경험하게 되길 바란다. 그러나 어리석고 겁 많은 헴은 언제까지나 고픈 배를 움켜쥔 채 텅 빈 창고를 맴돌고 있을 뿐이다.   

작은 땅덩어리는 그나마 반 토막, 1억도 안 되는 인구지만 대한민국은 세계6위의 수출 강국, 세계7위의 군사 강국이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지만 세계 최고의 원자력기술 보유국이었고 세계11위의 경제 대국이기도 했다. 그러나 “낮은 단계 연방제를 꼭 이루겠다.”고 확언했던 文은 군 무력화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경제 붕괴를 목표로 한 악의적인 정책들도 실효를 거두고 있어서 국가 자살이라는 결말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을 통해 저녁 있는 삶을 선물하겠다던 정권이 국민에게 줄 거라곤 기나긴 빈곤과 자유가 사라진 참담한 겨울밤뿐일 것이다.  

그런데도 지난 10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文은 “대한민국의 재정과 경제력은 충분할 정도로 성장했고, 재정 건전성 면에서 최상위 수준”이며 “우리 경제의 견실함은 세계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통계자료들을 어떻게 해석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평균 고용률 역대 최고, 청년 고용률 12년 만에 최고, 상용직 비중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며 자화자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런 주장을 믿는 사람들이 정말 있는 것일까. 믿거나 말거나 여론조사는 국정지지도가 40퍼센트라고 발표했고 이에 탄력 받은 탓인지 文은 지난 25일 열린 청와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저만큼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은 정치인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사람이라도 행복하다니, 국민의 절반쯤은 여전히 이 나라가 건재하다고 믿는다니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어느 날 갑자기 창고가 털린 게 아니다. 하루아침에 막장국가로 추락한 것이 아니다. 꼬마 인간 헴과 허처럼 눈앞에서 매일매일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탓이다. 위험을 외면하고 미리 대비하지 않은 탓이다. 누군가 잘 지켜낼 거라며 방관했고, 선배세대에게서 물려받은 풍요의 곳간이 무한히 크다고 믿었으며 마법의 항아리에서 자유가 펑펑 솟아나오는 것인 줄 착각한 때문이다.
  
마이클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동창들은 저마다 실패와 성공 경험담을 주고받는다. 변화와 위기 앞에서 꼬마 인간 헴과 허, 생쥐 스니프와 스커리 중 자신들이 누구와 닮았는지도 생각한다. 헴과 같은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고, 절대로 헴처럼 살지는 말자고 그들은 결론을 맺는다. 

우리는 누구와 닮았을까. 대한민국의 창고는 거의 다 바닥났다. 정치, 경제, 군사, 외교, 교육 등 국가 기반 창고만 사라진 것이 아니다. 정직의 창고, 진실의 창고, 양심의 창고마저 거덜이 났다. 그런데도 우리는 텅 빈 창고를 떠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 서성대는 헴이다. 무엇보다 텅 빈 보수 정당, 텅 빈 보수 지식인들 속에 아직도 무언가가 남아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은 비어 있더라도 자고 일어나면 그들 속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국가와 국민을 더 잘 살게 하겠다는 갸륵한 진심이 생겨날 거라고 여전히 꿈꾸고 있는 것 아닌가. 

"사라져버린 치즈에 대한 미련을 빨리 버릴수록 새 치즈를 빨리 찾을 수 있다"

새로운 치즈를 찾아 모험을 떠난 뒤에야 꼬마 인간 허는 깨닫는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두렵기 때문이다. 옛것을 버렸는데 새 것을 얻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빈손에 대한 공포, 허깨비라도 붙들고 의지해야 안심이 되는 연약한 마음. 그러나 분명한 건 버려야 새것을 얻는다는 사실이다. 버린 다음 새로운 것을 찾아낼 확률과 찾지 못할 확률은 반반이지만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으면, 새로운 치즈 창고를 찾을 가능성은 제로, 0퍼센트이다. 

지난 10월26일은, 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일생을 바친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40주년 되는 날이었다. 그의 혁명은 기존의 낡은 곳간, 텅 빈 진실의 창고를 과감히 버린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쓸모없는 것을 버리는 게 먼저다. 떠나는 게 먼저다. 이제야말로 그분의 개척정신 본받아야 할 때가 아니겠는가. 

깨어나라, 개인이여! 일어나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여!
TMTU. Trust Me. Trust You.

*‘TMTU. Trust Me. Trust You.’는 김규나 작가가 ‘개인의 각성’을 위해 TMTU문화운동을 전개하며 ‘개인이여, 깨어나라!’는 의미를 담아 외치는 캐치프레이즈입니다.

*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소설가, 소설 <트러스트미> <체리 레몬 칵테일>, 산문집 <대한민국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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