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팩트체크 자료 기재부 공무원이 최초작성...홍남기 "野 민부론 내부검토한 자료, 與 요청으로 제공했다"
野 제출요구엔 "내부자료라 안돼" 잡아떼...한국당 "민주당 행정부냐" "합법 자신없으니 제출 못하는 것"
與 소속 기재위원장까지 "민주당에 제출했으니 한국당 달라는 논리는 안 통한다" 내놓고 부정
당정협의 훈령 거론되자 유승민 "집권당 원내대표 해봤지만, 野발표 대상 당정협의 사례 없었다"

황교안 대표 체제의 자유한국당에서 발표한 자유시장·민간주도 지향 경제정책인 '민부론(民富論)'을 깎아내리려 더불어민주당이 만들어 배포한 이른바 '팩트체크' 자료의 기반을 기획재정부가 제공한 것으로 확인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위반 의혹이 제기됐다. 정부부처가 자체 정책자료를 여당에 제공할 수는 있지만 '야당 비판용' 청탁을 받고 자료를 만들어 준 경우라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료출처=TV조선 뉴스 방송화면 캡처

앞서 민주당 정책위원회는 지난 1일 '한국당 민부론 팩트체크'라는 36페이지 분량 문건을 만들어 소속 의원들에게 배포했다. "전반적인 팩트는 외면하고 정책은 균형감이 없으며 재탕했다"고 야당의 경제정책을 부정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한국당 김광림·추경호 의원에 따르면 해당 문건 원본 파일의 '최초 작성자'가 기재부에서 대(對)국회 업무를 맡고 있는 서기관급 공무원 아이디로 나타났다. 

이를 근거로 한국당은 기재부에서 작성한 문서 파일이 민주당으로 흘러들어갔는지를 추궁했다. 실제 기재부 종합정책과는 민부론에 거론된 자료의 사실 여부를 분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23일 국회 기재위 종합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내부적으로 (민부론에 대해) 검토했고 민주당에 그 자료를 참고로 제공했다"고 시인했다. 

다만 홍남기 부총리는 '민주당에서 (작성) 요구가 있었냐'는 엄용수 한국당 의원의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고 부인했다. 그는 "한국당에서 민부론을 발표하고 즉각 (기재부) 간부회의에서 내용을 세부적으로 분석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한국당이 발표한 내용에 대해 어떤 내용인지, 정부 정책과 어느 정도 부합하는지, 다른 건 무엇인지 등을 분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엄용수 의원이 '민주당의 요청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분석해서 자료를 건넸느냐'고 따지자 홍 부총리는 "그렇지 않다. 스스로 줬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홍 부총리는 "민주당 측 한 분의 요청이 있었다"며 "민주당에서 (기재부가) 검토한 자료가 있으면 좀 줬으면 좋겠다는 실무자 간 이야기가 있었다"고 했다. 요컨대 기재부가 스스로 만든 자료를 사후 민주당 측 요청으로 넘겼다는 입장이다.

(왼쪽부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추경호 김광림 의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연합뉴스)

이에 한국당 기재위원들은 기재부에 민주당이 이른바 팩트체크 자료를 작성하는 데 활용한 기재부 문서 원본을 달라고 요구했다. 추경호 한국당 의원은 "만일 검토자료를 전자우편 이메일로 송부한 경우 전자우편의 해당 발신 메일 내용 화면까지 캡처한 이미지파일을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홍 부총리는 "내부 검토용이라 대외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여당과의 자료 작성 '공모' 의혹을 부정하면서도 동일한 자료를 야당에 제공하길 거부한 것이다.

조정식 민주당 의원은 "일부 언론이나 야당이 잘못된 주장을 했을 때, 정부가 그것을 분석하는 내부자료 만드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야당이 문건을) 문제삼고, 자료를 제출해 달라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정부 측 역성을 들었다.

심재철 한국당 의원은 "(기재부는 문서가) 내부 검토자료라면서 대외적으로 줬다. 그런데 왜 한쪽(여당)은 주고 한쪽(야당)은 안 주냐"며 "(기재부가) 국민의 행정부지, 민주당의 행정부가 아니지 않느냐"고 질타했다.

권성동 한국당 의원도 "민주당에는 민부론 자료를 제출하면서 한국당은 왜 못하냐"며 "내부자료인데 민주당만 괜찮으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결국은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다"며 "(합법이라는) 자신이 없으니 제출 못 하는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그럼에도 홍 부총리는 "내부자료를 달라는 건 국정감사를 준비하기 위해 준비했던 Q&A를 다 내놓으라고 한 것과 똑같은 것"이라며 "내부자료라 제출하기 어렵다는 것만 알아달라"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에 민주당 소속의 이춘석 기재위원장은 "내부자료라 제출할 수 없다는 부총리 답변이 있었다"고 지원사격하면서 "제출하지 못하는 이유, 어떤 근거에 의해 제출할 수 없는지 등을 밝혀달라"고 논의를 뒤로 미루려 했다.

추경호 의원이 "민주당에 보낸 자료를 공유해달라는 것"이라고 맞서자, 이춘석 위원장은 "민주당에 제출했기 때문에 (제출해야 한다는) 한국당의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고 내놓고 부정해 한국당 의원들의 반발을 샀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김정우 조정식 강병원 의원이 10월23일 국회에서 열린 기재위의 기획재정부 대상 국정감사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홍 부총리는 "당정협의 업무규정에 따라 민주당에서 관련 자료를 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전달한 걸로 알고 있다"는 논리를 들었다. 조정식 의원도 "총리 훈령 703호에 따르면 각 부처는 주요정책에 대해 여당과 협의하도록 돼 있다. 기재부가 받는 자료를 통상적 당정협의 틀 속에서 여당이 제공받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그렇게) 해왔다"고 야당에 반론을 폈다.

이에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집권여당 원내대표를 해봤지만, 당정협의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으로 하는 것이지 야당이 발표한 것에 대해 하는 사례가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여당이 요구해서 제출 했으면 야당이 요구해도 제출해야 한다"며 "여러분(기재부)이 '세금받고 알아볼 만큼' 중요한 사항이었으면 우리(야당)도 봐야 한다"고 했다.

한기호 기자 hk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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