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문화재청 21일 국정감사에서 "이순신 표준영정 신속히 교체"
좌파정부 들어설 때마다 '친일 화가'의 표준영정 등 두고 시비 되풀이
文정부, 2017년 출범하자마자 친일 행적 작가들 작품 모두 철거
전문가 "靑 코드에 따라 문체부도 신속히 움직이는 것 아니겠나"
"화가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무리...청산이 현실적으로 불가한 이유 생각해보라"
국가 공인 표준영정 제도 자체 없애자는 주장도 제기돼

정재숙 문화재청장과 박양우 문체부 장관 (출처: 연합뉴스).
정재숙 문화재청장과 박양우 문체부 장관 (출처: 연합뉴스).

문화재청이 문체부와 협의해 월전 장우성(1912~2005) 화백의 충무공 이순신 표준영정을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장 화백이 친일 논란에 있기 때문이라는 게 당국 측 입장이다. 문화예술계에선 이를 청와대가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이름 올린 화가들의 작품을 청와대에서 떼어버린 것과 관련지어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되풀이되는 친일 시비에 대해 역사적으로 타당한 평가가 아닐 뿐더러 당파성만을 앞세워 작품을 평가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지난 21일 국정감사에서 “이순신 장군의 표준영정은 장우성 화백의 친일 논란과 영정의 복식 고증 오류 등으로 지속적으로 교체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며 “문체부와 협의해 해제 및 교체 방안을 합리적으로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같은 날 국정감사에서 충남 아산시 현충사 소장 충무공 이순신 표준영정 교체를 서두르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박 장관은 “11월 중 규정 개정을 마무리하겠다”면서 “현충사 관리사무소 측에서 (표준영정 교체를) 신청하는 대로 개정된 심의 규정에 따라, 곧바로 심의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박 장관이 언급한 규정 개정은 문체부 산하 영정동상심의위원회 내 소위원회 설치와 제척 사유 도입 등에 관한 신설 조항이다.

문화재 관련 부처들이 한목소리로 이순신 표준영정 교체 의사를 확고히 내보인 것은 그림을 그린 월전 장우성 화백이 일제 때 활동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장 화백은 일제 때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출품해 수차례 수상한 바 있는 일급화가였다. 근대 전통화단에서 인물화가로 출중한 기량을 인정받은 그는 조선의 마지막 어진화사(御眞畵師)였던 이당 김은호(1892~1979)의 직계 제자다. 김 화백과 그의 제자들은 건국 이후 다수의 표준영정과 화폐에 들어갈 그림들을 남겼다. 그러나 이들은 당대 제일의 화가로서 일제 때 국가 주도의 문화사업에 참여했다. 붓을 꺾지 않고 이런 행적을 남긴 것에 대해 후대에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2009년 김은호, 김기창, 장우성 등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했다.

올해 1월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장 화백이 친일파라면서 ‘친일 잔재를 청산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이달 초 일부 매체는 친일 잔재 청산을 강조해온 현 정부가 청와대에 친일 작가의 작품 14점을 소장하고 있다는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논란이 되자 청와대는 “2017년 8월쯤 친일 작가의 작품을 일괄적으로 떼어냈고 이후 걸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출범 직후 문재인 정부가 자체 조사를 통해 친일 작가라 규정한 이들의 작품 모두를 철거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22일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이순신 표준영정 교체도 청와대 코드를 따른 것 아니겠느냐”면서 문체부 및 문화재청의 신속한 교체 움직임을 풀이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국회 문체위 위원들인 김영주, 신동근 의원 등은 이순신 표준영정 교체를 거듭 요구해왔다. 지난 정부 당시 문화재청 현충사 관리소가 2010년과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영정 교체를 건의했으나 문체부가 반려했다는 사실도 거론됐다.

전문가들은 “좌파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친일 시비가 미술계에서 식상할 정도로 되풀이돼왔다”며 “그럼에도 청산이라는 게 왜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는지 생각해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장 화백이 기존 전통화에 일본화와 서양화 요소 등을 가미한 그림을 당시 요구에 맞게 가장 잘 그렸다는 점, 이에 따라 많은 작품과 제자들을 남겼다는 점 등을 꼽았다.

현대사 전공의 한 교수는 “태어나 활동한 때가 일제시대였던 예술가에게 오늘날의 잣대를 대는 게 과연 현실적인가”라면서 “망한 조선을 떠올리거나, 당시 일류 지식인들도 가늠하지 못했던 한국의 근대성을 떠올리거나 했어야 된다는 말인가. 그림 그리는 게 전부인 화가가 더 이상 어쩔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작품을 평가해야지 화가의 삶 전체에서 일부 행적을 갖고 당파성에 따라 잣대를 들이대면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이참에 국가가 공인하는 표준영정이란 제도 자체를 없애자는 의견도 나온다. 역사적 위인의 경우 복원이 아닌 상상화라고 해야 맞을 정도인데 국가가 복식 고증 정도로 표준영정이라 확정짓는 것도 시대착오적이라는 주장이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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