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참사·이중잣대·불통 논란 외면 "공정 위한 개혁 강력추진...반부패 정책협의회 운영"
사실상 親文 국한한 '국민' 앞세워 검찰때리기 반복...與는 박수, 野 'X표' 손짓으로 항의
특별감찰관 3년째 공석, 靑특감반 해편해놓고 "대통령 친인척 감시" 공수처 명분 삼나
"국방예산 50조원으로 증액" 불구 전력증강 상세설명 없이 "兵월급 54만원으로" 홍보
北 연평도 운운 겁박중에 "평화경제" 퍼주기 구상, "운명 스스로 결정" '反美코드' 반복
국가채무비율 40% 잣대 대놓고 뒤집기도..."정치는 항상 국민 두려워해야" 사실상 말뿐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자신의 조국 법무장관 인사 강행으로 벌어졌던 국론분열과 친문(親문재인)좌파진영의 '내로남불' '독재' 논란을 외면하고 여당발(發) 공수처법 등 정책선전을 이어갔다. 

북한 정권이 연평도 포격을 재론하면서 대남(對南) 위협까지 가하고 있는 상황에 "평화경제" 구호를 재차 내세우는가 하면 병(兵) 월급 인상을 국방예산 증액의 대표 격으로 소개하는 '안보 불감증'적 태도도 보였다. 경제 부문에선 '소득주도성장'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국민 혈세를 재원으로 하는 정부재정 대거 팽창을 위한 '아전인수 식' 논리를 전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월2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0년도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실시한 2020년도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최근 다양한 의견 속에서도 국민의 뜻이 하나로 수렴되는 부분은 검찰 개혁이 시급하다는 점"이라고 못박으며 "어떠한 권력기관도 '국민' 위에 존재할 수는 없다"는 레토릭을 되풀이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친문세력의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 '조국(曺國) 수호' '검찰개혁' 집회가 열리자, 이에 동참한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200만명"이라고 자체 추산하며 대국민 선전에 나선 바 있다. 하지만 이달 3일과 9일 전국에서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시청광장-숭례문 일대로 대거 집결, 서초동 친문 집회를 몇배로 압도하는 '조국 파면' '문재인 퇴진' 저항시위를 벌였다. 이후 여권은 장외 세(勢) 대결에 입을 닫았는데도 문 대통령은 "검찰개혁이 국민의 뜻"이라는 엇나간 주장을 반복한 셈이다.

또한 문 대통령이 언급한 '권력기관'은 현 정부·여당이 사실상 검찰의 권한 축소를 의중에 두고 써 온 말이며, 지난 16일 부마항쟁 40주년 정부기념식 기념사 등에서도 등장했다. 구태여 강조한 '국민'은 친문세력의 목소리만을 대변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뒤이어 '절제된 검찰권'까지 언급하며 조국 전 장관 일가 수사를 지휘하는 '윤석열 검찰'을 겨냥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엄정하면서도 국민의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 행사를 위해 잘못된 수사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법 개정 없이 정부가 할 수 있는 검찰 개혁방안"을 성과이자 향후 과제로 강조했다.

그러면서 "검찰에 대한 실효성 있는 감찰과 공평한 인사 등 검찰이 더 이상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기관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개혁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이처럼 여권발 검찰개혁론을 내세울 때 여당 의원들은 큰 박수를 쳤고, 야당 의원들은 팔로 'X'자 표시를 해 반대 의사를 표시해 눈길을 끌었다.

10월2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새해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 도중 여권발 검찰개혁 주장을 되풀이하자 자유한국당 등 야당 의석에서는 'X' 모양으로 손짓하며 문 대통령에게 항의 의사를 표시했다.(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이어 국회에 "'공수처법'과 '수사권 조정법안' 등 검찰 개혁과 관련된 법안들을 조속히 처리해 달라"면서, 현재 북한 보위부·중국 국가감찰위원회 등 유사 기관 사례로 '독재 기구' 논란이 일고 있는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 설치 필요성을 강변했다.

그는 "공수처의 필요성에 대해 이견도 있지만"이라고 치부한 뒤 "검찰 내부의 비리에 대해 지난날처럼 검찰이 스스로 엄정한 문책을 하지 않을 경우 우리에게 어떤 대안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반(反)독재 진영을 공격했다.

그러면서 "공수처는 대통령의 친인척과 특수 관계자를 비롯한 권력형 비리에 대한 특별사정 기구로서도 의미가 매우 크다"면서 "권력형 비리에 대한 엄정한 사정기능이 작동하고 있었다면 국정농단사건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력형 비리 감시 실패 사례로 가장 가까운 '현직 법무장관 일가의 부패 혐의와 검찰수사 방해'가 아닌, 전임 정부 시절 좌파언론의 왜곡·과장보도로 촉발된 이른바 '국정농단' 의혹을 거론한 것이다. 

이석수 국정원 기조실장(오른쪽)과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 비서관이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 시작 전 대화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권력기관 개혁 작업 진행 상황을 점검한 뒤, 검경수사권 조정, 국정원법 개혁, 공수처 설치에 대한 의견을 논의했다. 2019.2.15
지난 2월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정보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 시작 전 이석수 국정원 기조실장(오른쪽)과 박형철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반부패비서관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사진=연합뉴스)

또한 공수처 설치 명분으로 '대통령 친인척과 특수 관계자'에 대한 감시 기능을 들었지만, 이 기능을 수행하는 '특별감찰관'조차 문재인 정권은 3년째 공석(空席)으로 두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14일 여야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 회동에 이르러서야 후보 추천 논의에 동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2016년 9월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직권남용 의혹을 제기하고 물러난 이석수 초대 특별감찰관을 국정농단 여론몰이의 협조자로 삼은 수혜자였지만, 집권 만 2년을 넘도록 야당의 국회 추천 특별감찰관 임명 요구를 무시해왔다. 이석수 전 특감은 현 정권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으로 발탁돼 '보은 인사' 정황이 뚜렷하기도 하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반부패비서관실 특별감찰반원으로 일했던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이 지난 1월2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청와대의 특감반을 이용한 민관 사찰 의혹 관련 기자회견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청와대 직속으로 유사한 공직 감찰 기능을 수행하던 특별감찰반 역시 지난해 말 시작된 김태우 전 특감반원의 '여권인사 비리 무마' '민·관·언론 사찰' 등 정황 폭로 이후 조 전 장관이 지휘하던 민정수석실에 의해 조직이 해편된 터다. 대통령 직계 자손인 문준용·문다혜씨에 각각 제기된 '채용비리·관급사업 특혜' 의혹과 급작스러운 태국 이주 정황에 대한 야권의 규명 시도도 정부·여당의 비협조로 가로 막혀 있는 가운데, 문 대통령이 진정성 있는 발언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공수처법은 우리 정부부터 시작해서 고위공직자들을 더 긴장시키고, 보다 청렴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정치적 수사(修辭)를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전 법무장관.(사진=연합뉴스)

'조국 사태' 그 자체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직접 언급 없이 "공정"과 "개혁"이라는 구호 선전에 주력했다.

그는 조국 사태로 인한 민심이반을 두고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엄중한 마음으로 들었다. '공정'과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면서 "정부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 만연한 특권과 반칙, 불공정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국민의 요구는 그보다 훨씬 높았다"고 해석했다.

이어 "국민의 요구는 제도에 내재 된 합법적인 불공정과 특권까지 근본적으로 바꿔내자는 것이었다. 사회지도층일수록 더 높은 공정성을 발휘하라는 것이었다"면서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겠다"고 했다.

'인사 참사와 불통'에 따른 불만여론을 제도 개선 요구로 치부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 요구를 깊이 받들어 공정을 위한 개혁을 더욱 강력히 추진하겠다"며 "'공정사회를 향한 반부패 정책협의회'를 중심으로 공정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도록 새로운 각오로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전 장관의 자녀에 대한 '내로남불 식 특목고·명문대 진학', 대학 총장 표창장 위조 및 허위 인턴경력 날조 의혹 등 학사·입시비리 혐의 검찰 수사에 국민의 이목이 집중돼있는 상황이지만 문 대통령은 "국민들께서 가장 가슴 아파하는 것이 교육에서의 불공정"이라고 했을 뿐 엇나간 문제 인식과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시작한 학생부종합전형 전면 실태조사를 엄정하게 추진하고, 고교서열화 해소를 위한 방안도 강구 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정시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도 마련하겠다"고도 밝혀 기존의 '정시 축소' 대입정책의 일부 변화를 시사했다.

불통 논란을 의식한 듯 문 대통령은 "정치는 항상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믿는다"면서 "저 자신부터,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과 함께 스스로를 성찰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곧바로 "과거의 가치와 이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고 전제해, 여권에서 보수·자유민주주의 진영을 수구(守舊)라고 폄하하는 태도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뒤이은 "어떤 일은 과감하게 밀어붙여야 하고 아쉽지만 다음으로 미루거나 속도를 조절해야 할 일도 있다"는 언급도 정책의 속도 조절만 시사했을 뿐 방향 전환 가능성은 일축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 조선로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지난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민족주의적 '한반도 주인론'을 내세운 이튿날인 8월16일 '판문점선언리행을 위한 근본립장'이란 제목의 기사로 한반도에서의 미국 영향력 배제를 부채질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대북·안보 문제에 관해서는 "국방비를 내년 예산에 50조원 이상으로 책정했다"고 홍보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전력에 관해서는 "차세대 국산 잠수함, 정찰위성 등 핵심 방어체계를 보강"한다는 것 이상의 언급을 찾기 어려웠고, "병사 월급을 병장 기준으로 (현행) 41만원에서 54만원으로 33% 인상해 국방의무를 보상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강한 안보"라는 수사를 내세웠지만 "우리의 운명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우리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는 문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인"(지난해 8·15 경축사) "우리는 한반도 운명의 주인"(올해 4월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등 이른바 '한반도 주인론'을 전개해오면서 "북남관계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우리 민족"(지난해 8월16일 북한 로동신문)이라는 북한 정권과 사실상 '미국 배제' 코드를 맞춘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금 우리의 안보 중점은 대북억지력이지만, 언젠가 통일이 된다 해도 열강 속에서 당당한 주권국가가 되기 위해선 강한 안보능력을 갖춰야 한다"고도 했다. 통일 이후 주권을 강조했을 뿐 헌법에서 규정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전제한 발언인지 확인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문 대통령은 '평화경제'라는 미명을 붙인 대북 퍼주기 구상을 밝혔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면, 우리 경제는 새로운 기회를 맞게 될 것"이라며 "남북 간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경제·문화·인적교류를 더욱 확대하는 등 한반도 평화와 경제협력이 선순환하는 '화경제' 기반 구축에도 힘쓰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밝은 미래도 그 토대 위에서만 가능할 것"이라며 "북한의 호응을 촉구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월22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새해 정부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뒤 퇴장하는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 및 보좌진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외에도 문 대통령은 513조원 규모의 내년도 초(超) 팽창예산 편성에 관해 "혁신적이고, 포용적이고, 공정하고, 평화적인 경제로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며 "재정의 과감한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 대외충격의 파고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금 징수와 나라 빚을 늘려오기만 한 것이 현 정부이지만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재정과 경제력은 더 많은 국민이 더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데 충분할 정도로 성장했고, 매우 건전하다"면서 "재정건전성 면에서 최상위 수준"이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국가채무비율을 협소하게 설정해 "GDP대비 40%를 넘지 않는다"며, 재전건전성 판단 기준과 공기업 부채 비중 등 여건이 다르고 기축통화국이 포함돼 있는 OECD 회원국 평균치와 단순 비교하면서다. 

이에 '대통령발(發) 가짜뉴스'라는 논란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실상 '적폐'로 몰던 전임 정부에 대해 '최상위의 재전건전성'을 유지했다고 평가한 격이 될 수 있고, 야당 대표시절 발언을 정면으로 뒤집었다는 이중잣대 논란이 일 전망이다.

지난 2015년 정기국회에 돌입한 9월 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 대표로서 당 공식회의에서 "박근혜 정부 3년 만에 나라 곳간이 바닥나서 GDP(국내총생산) 대비 40%, 730조 원에 달하는 국가채무를 국민과 다음 정부에 떠넘기게 됐다"며 "재정건전성 회복 방안이 없는 예산안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미리 경고해 둔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한기호 기자 hk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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