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칼럼] 국면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탄, 한민호 국장 파면을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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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10.22 10:28:59
  • 최종수정 2019.10.23 09:15
  •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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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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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년 10월 31일은 개신교의 창립일이다. 맞다. 변두리 신학자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한 날이다. 그런데 그게 왜 개신교의 창립일이냐고? 보통은 면벌부에 대한 문제 제기 정도로 알고 있지만 실은 그 이상이다. 루터는 가톨릭이 결코 수용할 수 없는, 넘지 말아야 할 위험한 선을 과감하게 넘어버렸다. 그는 선행善行과 회개 그리고 예배에서 구원이 온다는 기존의 교리를 다 엎어버렸다. 루터는 구원이란 신에 대한 복종과 해방에 대한 믿음에서 온다고 말했다. 선행의 결과가 구원이 아니라 선행이 구원의 결과라는 주장이었다. 파격이었다. 이 발언대로 하면 가톨릭 사제의 입지가 사라져버린다. 아시다시피 죄는 기독교의 독창적인 발명품이다. 유대인들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에서 악惡이라는 개념을 배웠고 여기에 죄라는 개념을 얹었다. 그래서 인간은 만날 죄를 회개해야 하는 존재로 전락했고 그 죄를 신을 대신해 들어주었던 사제의 권위 그리고 사제의 우두머리인 교황의 존재는 압도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 무너뜨린 것이다. 인간과 신의 직거래, 그게 로마 교황청을 뒤집어놓은 루터의 혁명적의 발상인 것이다. 사실 루터의 이런 발상은 그가 처음이 아니었다.

얀 후스와 루터의 각기 다른 결말, 나는 나 혼자가 아니다

시계를 백 년 전으로 돌려보면 우리는 얀 후스라는 인물을 만날 수 있다. 체코의 신학자인 얀 휴스가 가톨릭 개혁을 외쳤다가 화형을 당한 게 1415년이다. 엇비슷한 주장을 펼쳤는데 왜 후스는 죽고 루터는 살았을까. 그것은 후스에게 없었던 ‘뒷배’를 루터는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터가 ‘교황청의 죽음’을 선언하자 교황청 역시 파문이라는 형식으로 루터의 ‘종교적 죽음’을 공언한다. 교황은 루터의 영방군주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를 압박한다. “그 자식의 입을 다물게 해주면 당신이 추천하는 후보를 추기경으로 선발하겠다.” 그러나 프리드리히는 루터의 발언에 문제가 있는지는 내 알 바 아니고 게다가 그런 모호한 이유로 ‘자신에게 속한’ 학자를 로마로 보내야 한다는 주문은 납득할 수 없다는 말로 교황의 제안을 뭉갰다. 이에 용기백배한 루터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파문 문서를 불살라버리는 퍼포먼스까지 벌인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루터와 프리드리히라는 두 ‘똘끼’ 충만한 인물로만 가능했을까. 아니다. 더 큰 뒷배는 따로 있었다. 바로 유럽 각 곳에서 성장하고 있던 신흥 상공업자들의 자유도시가 루터의 진짜 배경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가톨릭의 중세적인 교리와 충돌하기 시작했고 낡은 옷을 갈아입을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당시 일을 하지 않는 주일과 가톨릭 성자들의 축일이 일 년에 백 일을 넘었다. 상공업자들에게는 죽을 맛이었다. 그러나 함부로 자기 이익을 내세우지 못했던 것은 지옥과 연옥이 주는 공포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루터가 이 심리적인 부담을 화끈하게 덜어준 것이다. 종교개혁의 결과로 종교를 고를 수 있게 되고 성자들의 축일이 줄어들자 프로테스탄트 지역의 생산량은 눈에 띄게 증가한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배경에 깔린 경제사적 의미인 것이다. 서론이 좀, 많이 길었다. 그냥 교양 쌓았다고 생각하시라.

공무원의 항명, 정권이 흔들린다는 증거만이 아니다

문체부 한민호 국장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글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가 파면 조치를 당했다. 업무 시간에 SNS를 하고 공무원의 품위를 손상했다는 것이 공식적인 이유지만 실은 밉보인 것이다. 조국씨가 죽창가를 부르자며 핏대를 세운 다음 날 한 국장은 태연하게 자신은 친일파라고 공언하며 지금은 친일이 애국이라고 맞받아쳤다. 얼마나 미웠을까. 아마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납작 엎드려 복지안동伏地眼動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한민호씨는 아무 생각이 없어서 그랬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다. 일단 조직에서 까 내지고 핍박을 받을 일을 벌일 경우 몇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먼저 사법적인 보호 장치다. 예전에 좌익들이 자신의 조직에 등을 돌릴 때 뒤에 세웠던 것이 정의구현사제단이다. 그러나 종교와 도덕만으로는 신변 보호 장치가 만들어질 수 없었다. 그래서 태동한 것이 ‘민변’이다. 법치국가에서 한 개인을 보호할 방법은 법밖에 없다. 현재 자유우파 진영에는 한민호씨를 감싸고 옹호할 법조 인력이 차고 넘친다. 두 번째는 사회적 보호 장치다. 조직에 등을 돌리면 왕따가 된다. 그러나 이를 받아주고 입지를 만들어 줄 반대 세력이 튼튼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지금의 자유우파 세력은 한민호씨를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는다. 명예회복을 위한 소송에 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한민호씨는 할 일도 많고 불러주는 곳도 많을 것이다. 정신적으로 무너질 일이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소송을 할 경우 최소한 일 년 이상이 걸린다. 정권 말기로 들어가는 시점이고 판결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저무는 정권 편을 들어 한민호씨를 ‘밟는’ 무모한 판결을 할 인간이 과연 있을까. 게다가 정권이 바뀔 경우 한민호씨에게는 다양한 선택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도 좋은 조건으로 말이다. 다소 도박적이기는 하지만 충분히 걸어볼만한 일이다.

신재민, 김태우 사태 때와 다른 점

자발적으로 나섰던 신재민, 김태우씨 때와 비교하면 한민호씨 사태는 상대적으로 수동적이다. 그러나 앞의 두 사람보다 한민호씨 사태를 주목하는 이유는 오히려 그 때문이다. 정권이 튼튼하면 내부의 사소한 잡음 같은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아량이 되고 포용의 상징이 된다(물론 반대인 경우도 있겠지만 진보 정권을 자칭하고 나선 사람들이라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렇게 예민해진 것은 정권이 내부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다. 그냥 방치해 둘 경우 전염병처럼 분위기가 확산될 수 있다는 초조감 때문이다. 정권의 위기의식을 건드린 것은 자유우파의 성장과 그동안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던 시민들의 대거 등장이다. 지난 조국 사태를 통해 자유우파는 광장의 맛을 봤다. 그리고 정권의 거짓말과 위선에 질린 중도 시민들이 동참했다. 공포다. 자신들이 그렇게 정권을 차지했기에 광장이 주는 압박감은 상상 이상이다. 조국 사태 때 처음 광장에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던 얘기다. 박근혜 탄핵 때도 비슷한 인터뷰가 넘쳐났다. 이대로 있을 수가 없어서 나왔다는, 평소 신문 정치면은 읽지도 않았다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쉽다. 이제 정권이 조국 때처럼 무리한 짓을 벌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드러날 것은 드러나고 터질 일은 터지기 마련이다. 도화선에 불을 댕길 소지는 사방에 널렸다. 해서 조급한 것이고 한민호씨 사태는 그 시발점이다. 그의 파면 조치를 유심히 봐야 하는 이유다. 물론 한민호씨가 그렇게 이해관계를 정밀하게 따져 본 끝에 SNS를 다루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했다고도,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말한 대로 그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얀 후스의 시대가 아니라 루터의 시대다. 변화를 바라는 광범위한 ‘세력’이 존재하는 시점인 것이다. 국면은 바뀌고 있다. 적어도 공격권은 자유우파 진영으로 넘어왔다. 이제 골을 넣는 일만 남았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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