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국의 슬픈 역사] 39회. "변방의 중국몽": 모택동, 김일성의 빅브라더"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39回. "邊方의 中國夢": 毛澤東, 金日成의 빅브라더"

며칠 전 (10월 18일) "대진연"이라는 "친북 대학생" 단체가 주한 미대사관저를 월담해 점령했다. 그들은 주한미대사 해리스를 떠나라 외치며 "방위비 분담금 인상 절대 반대" 등의 구호를 외쳤다. "혈세강탈을 막고 재정주권을 지키려 한 의로운 행동"이라며 자신들의 행위를 미화했다는데······.  2019년 10월 세계 10대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에서 이들은 1980년대 "반미자주" "미군철수" 외치던 주사파 운동권의 사고방식을 앵무새처럼 흉내내고 있다. 월담 과정을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하는 등 최첨단 소통매체를 활용했지만, 이들이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는 지겨우리만큼 진부하다. 

 

30년 전 구소련이 무너지고, 동구가 자유화되고, 베트남 공산당은 도이머이를 외치며 고립주의를 포기했다.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도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주사파가 활동하고 있다. 소수의 극단세력이야 어디나 있다. 문제는 그 소수의 극단세력과 대한민국의 현집권 세력이 공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사파 대부 "강철서신" 김영환의 증언대로 "문정권에는 주사파 출신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의 의식 밑바탕엔 반미친중의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다. 미국은 악이고 중국은 선이라는 근거 없는 풍문이다. 이들은 과연 누구로부터 그런 풍문을 전해 들었나?  

 

1. 80-90년대 NL주사파의 미망  

 

리영희의 한계를 인정하는 남한의 좌파평론가들은 대부분 그의 잘못을 모두 유신의 정치적 억압으로 귀속시킨다. 나아가 그들은 80년대 지식계의 좌경화 책임 역시도 모두 군부 탓으로 돌린다.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극히 제한된 독재정권 아래서 “공산권”의 실상을 직시할 수 없었다는 논리다. 1980년대 시인 황지우의 말대로 “버스 운전사가 핸들을 오른쪽으로 획 돌리면 관객은 왼쪽으로 쏠린다!”는 정도의 얘기.  

 

2005년 리영희와의 대담(<<역사비평>> 31, 1995 여름호)을 재출간하면서  좌파사회학자 김동춘은 “1970년대에는 ‘중국 사람도 밥을 먹고 살고 있다’는 식생활 묘사도 죄악이 되었다”고 쓰고 있다. 곧 이어 그는 2000년 당시의 현실에서 “북한도 100개 이상의 국가와 수교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이다”라는 사실 인정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과연 그랬을까?

 

1970년대를 말하기에 앞서 우선 북한에 대해 기초사실도 말할 수 없었다는 김동춘의 주장부터 점검해 보자. 1980년대 후반이면 이미 대학가 서점에 수많은 북한서적이 쫙 깔렸고, 운동권에선 북한바로알기 운동이 일면서 NL주사파의 활동이 음지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북한 출판물의 영인본도 있었고, 남한의 표기법에 맞게 새로 조판한 출판물도 있었다.

 

교보문고, 종로서적 등등 서울시내 대형 서점에서도 북한의 입장에서 대한민국의 “민족사적” 정통성을 부정하는 수많은 책들이 자유롭게 팔렸다. 서울뿐만이 아니었다. 1989년 대구의 한 대학가 서점에서 북한 서적이 쫙 깔려 있었음을 또렷이 기억한다. 바로 그 대구의 서점에서 고교교사였던 한 선배(1982학번)는 당시 만 열아홉 살이었던 내게 북한서적 세 권과 함께 루이제 린저의 <<북한여행기>>를 선물로 사주면서 좋은 책이니 꼭 반복해서 읽으라고 당부했던 기억도 난다. 한때 나치 부역자로서 히틀러를 찬양하는 시를 썼던 루이제 린저는 그 책에선 김일성을 “위대한 지도자”라 칭송하며 북한사회를 “가난도 없고 범죄도 없다”고 칭송하고 있다. 당시 대한민국은 극좌의 전성기였으며, 극좌 중에서도 김일성숭배자들이 활개 치던 미망의 시대였다. 김일성의 입장에서 보면 혁명의 만조기(滿潮期)임에 틀림없었으리라.  

 

2. 대한민국을 점령했던 북한 선전물들!  

 

1990년대 대학가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북한서적들 몇 개만 열거해보자.

1. 북한의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가 엮은 <김일성 선집. 1, 1930.6 – 1945.12>(북한사상 총서 제1권)이 서울의 대동출판사에서 1988년에 출판되었다. 이 책은 본래는 1979년 일본 동경의 조총련계 출판사인 구월서방의 간행본이다.

 

2. 북한의 백두연구소에서 편찬한 <<주체사상의 형성과정 I>>(북한연구자료 제1권) 역시 서울의  백두 출판사에서 1988년에 출판되었다.

 

3. 한마당 출판사의 편집부에선 1988년 북한혁명 가극 원본 <<피바다>>를 <<민중의 바다>>로 제목만 바꿔서 그대로 출판했으며, 열사람출판사, 황토출판사, 아침출판사에선 <<꽃 파는 처녀>>(1989)를 인쇄했다. 심지어는 “김일성부대 문예선전대”가 직접 편찬한 <<한 자위단원의 운명>>이란 장편소설도 살 수 있었다. 김일성의 항일무장 투쟁을 극화한 북한 작가 석윤기의 <<봄우뢰>> 역시 1989년 “힘”에서 출판되었다. 

 

4. 서울의 오월출판사는 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편찬의 <<조선통사>>(1988)를, “일송정”사는 <<현대조선역사>>(1988)를, “이성과 현실”사는  <<조선철학사>>(1988)를, 태백편집부에선 <<주체사상 연구 : '주체사상'의 '김일성주의'화에 관한 연구: 주체사상에 대한 김정일의 논문>>(1989)을 출판했다.

 

5. 백산서당에선 평양의 사회과학출판사가 편찬한 <<주체사상총서>>(1989)도 찍혀 나왔다. 이 책은 1985년 평양의 사회과학출판사에서 발간한 <<위대한 주체사상총서>>(전 10권)이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

2) 주체사상의 사회역사 원리

3) 주체사상의 지도적 원칙

4) 반제 반봉건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이론

5)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이론

6) 인간 개조이론

7) 사회주의 경제건설이론

8) 사회주의 문화건설이론

9) 영도체계

10) 영도 예술

 

 

현재 통일부 산하 북한자료센터에 비치된 북한의 출판물
현재 통일부 산하 북한자료센터에 비치된 북한의 출판물

 

 

1989년 노태우 정권의 자유화 물결을 타고 바로 이런 북한 서적이 대학가에 쫙 깔렸다. 의심의 여지없이 위의 서적들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미화하고 “주체사상”을 설명하는 공산전체주의 북한체제의 선전물이었다. 물론 학술적 차원의 북한연구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서적임엔 틀림없다. 다만 당시 그 서적을 탐독한 사람들 대부분은 학술의 차원보단 “사회변혁”의 관심에 이끌렸다.

 

당시 대학가에서 매주 발행되던 학보나 매학기 출간되던 교지(校誌) 등은 그야말로 “붉은 책”이었다. 교지에 투고되는 많은 원고는 프로 좌익세력이 당시의 혁명운동 지침에 따라 조직적으로 작성한 것이었다. 대학가에선 어린 학생들이 날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누가, 누가 더 붉나?” 경쟁하던 시대였다. 전국 모든 대학에 운동권의 소규모 세미나 그룹이 있었고, 입학하기 무섭게 신입생들은 주사파의 의식화 공작에 포섭되었다.  

 

 

3. 주사파가 친중사대주의의 뿌리

 

 

 

운동권 상식이지만, 당시 전국 학생운동권은 반미청년회, 반제청년동맹, 조통그룹 등의 지하조직이 배후조종하는 전대협의 주사파가 장악했었다. 거리낌없이  주사파 완장 달고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외치던 시절이었다. 현 청와대 비서실장 임종석은 전대협 제3기 의장이었다. 1989년 평양학생축전에 파견된 임수경은 독재자 김일성의 품에 안겨 눈물을 뚝뚝 흘린 후 평양의 군중을 향해 “조국통일 가로막는 미국 놈들 몰아내자!”고 외쳤다. 많은 사람들이 쇼크를 먹었지만, 실은 당시의 대학가 분위기에선 전혀 어색할 것도 없었다. 대학가 술집에 가면 술에 취해 북한 혁명가요를 불러대는 주사파 운동권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1989년-90년 당시 전대협 의장 임종석에 극존칭을 ....(중략)

 

이들은 북한을 동경하고, 김일성을 숭배하고, 김정일을 존경했다. 북한식 말투를 그대로 빌려 쓰고, 북한식 사고방식으로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진정 웃지 못할 코미디는 바로 주체사상의 수령론을 그대로 따라 학생회장에게 북한식 극존칭을 붙이는 문화였다. NL주사파가 총학생회 선거를 통해 학생회장으로 선출되면, “임XX 동지, 학생회장으로 당선되시다”란 대자보가 나붙었고, 학생회장이 광주로 가면 “임XX 회장께서 광주로 가시다”라 선전했고, 그 학생회장이 경찰에 연행이 되면 “임XX 회장께서 달려가시다”란 현수막이 내걸렸다. 돌이켜 보면 섬뜩하고도 역겨운 비합리의 극치였다.

 

1989년-90년 당시 전대협 의장 임종석에 극존칭을 붙이는 대학가 대자보. 주사파 운동권들은 주체사상의 수령론을 따라 학생회장을 떠받드는 웃지못할 코미디를 연출하곤 했다. 이 대자보는 당시 수배 중이었던 임종석을 "전국 백만학도의 지도구심"이라 칭송하고 미화하고 있다. 김일성 인격숭배를 대학가에서 흉내내는 반이성, 불합리, 몰상식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당시 NL주사파 세력은 중국 문화혁명기의 홍위병뿐만 아니라 독일 제3제국의 히틀러 유겐트를 연상시킨다. 김일성 인격숭배에 빠졌던 점에선 그들은 중국의 홍위병을 방불케 하며, 낡아빠진 “우리민족끼리”란 민족지상주의 혹은 종족중심주의에 매몰된 점에선 히틀러 유겐트와 흡사했다. 전대협 지도부가 그런 문화의 중심부이었고, 그들의 지도를 따라 전국의 대학이 주체사상의 온상이 되었다. 오늘날 북한에서 공공연히 “남조선 민주화는 김일성 수령의 교시에 따른 것”이라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며 애써 감추려 하지만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80년대 민주화 세력의 최대 오점이다. 

 

1999년에 “북한이 100개 국가와 수교한 것을 말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는 김동춘의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김동춘 같은 좌파지식인은 빤히 알면서도 왜 과거를 왜곡할까. 리영희가 존경하는 모택동은 늘 “비판과 자기비판”을 강조했다. 틈만 나면 현실을 왜곡하는 남한의 좌파에겐 더더욱 절실하게 자기비판이 필요하다. 왜 그들은 스스로의 사상적 오류를 반성하지 않을까?

 

왜 갑자기 주사파 비판이냐 묻는다면, 빙긋이 웃으며 답하리라. 대한민국 현실정치에서 친중과 친북은 동전의 양면이자 일란성 쌍생아라고. 김일성의 "주체사상"은 북한정부가 선전하듯 김일성의 독창적인 세계관이 아니라 1950년대 모택동의 자력갱생론의 모작일 뿐이다. 폐쇄적인 "반외세 자주노선"은 결국 전 인민을 인질로 잡은 납치범의 경제노선이었다.

 

김일성 인격숭배 역시 모택동의 인격숭배의 복사판이다. 북한에선 김일성을 태양이라 숭배하지만, 이미 1950년대 중국에서 모택동이 바로 인민의 태양이었다. 민족자주를 외치는 주체사상의 발원지는 바로 중국이다. 모택동이 인민의 주체적 의지를 강조하고 자력갱생을 부르짖고 반외세 자주노선에 집착하다 대기근의 참사를 일으켰다. 주체사상은 결국 위성국 "조선인민공화국"이 표절한 마오이즘(Maoism)이었다. 김일성은 모택동을 흉내내고 있을 뿐이었다. 모택동은 김일성의 빅브라더였다. 대한민국 좌파세력이 여전히 친중노선에 기우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모주석은 우리 마음 속의 홍태양!" 인격숭배에서도 김일성은 모택동의 방법을 그대로 따라서 흉내내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독립자주, 자력갱생" 모택동의 구호이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중국 모택동사상의 아류이다.
"독립자주, 자력갱생" 모택동의 구호이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중국 모택동사상의 아류이다.

 

송재윤 객원칼럼니스트 (맥매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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