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욱 칼럼] ‘검찰장악’의 야누스, 소위 검찰개혁과 공수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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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10.15 09:19:21
  • 최종수정 2019.10.15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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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국민적 반대여론 무릅쓰고 임명 후 연일 '검찰개혁'이란 말의 수사 펼치고 있어
검찰장악 주체, 법무부 장관 임명된 조국...온갖 의혹에 '사회주의자' 밝히기까지 한 인사
내년 총선 대비해 선거법과 공수처법 통과시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검찰개혁이라고 말하는 내용도 사실 별 것 없어...외부적 견제 없는 개혁은 조삼모사 불과
검찰개혁과 공수처는 '야누스의 얼굴'...文정권 검찰개혁・공수처는 '검찰장악' '파시즘'만 봐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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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스(Janus)는 로마신화에서 문(門)의 신(神)이다. 문에는 앞뒤가 있다는 점 혹은 앞뒤가 없다는 점에서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으며, 1월을 뜻하는 January는 ‘야누스의 달’을 뜻하는 라틴어 Januarius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야누스의 두 얼굴은 지나간 해와 새해를 맞이하는 각 얼굴을 뜻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런 뜻보다는 두 얼굴을 가진 이중적인 사람을 뜻하는 의미로 많이 쓰고 있다.

인사청문회에서 보고서 채택은 고사하고 국민적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임명됐다가 어제 사퇴한 조국 법무부장관은 연일 검찰개혁이란 말의 수사(修辭)를 펼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87체제 이후 권력자가 개혁이란 말만 쓰면 내용은 따지지도 않고 무비판적으로 그 말을 써주는 것이 언론의 관행이긴 하나 매번 이런 말의 성찬과 프레임에 국민을 속이는 것도 이제는 지겹다.

법학에서 보통 절차의 적법성과 타당성을 따질 때 주체, 방법, 시기라는 기준이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나는 문재인 정권과 조국의 검찰조직개편을 ‘검찰장악’으로 보는데, (법리는 아니지만) 위 기준으로 왜 검찰장악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검찰장악의 주체는 어제 장관직에서 물러난 조국이다. 그는 현재 아내와 함께 자녀들의 부정입학 의혹, 사모펀드 투자 의혹 등으로 언론에서는 일가(一家)비리로까지 명명되기까지 한 의혹의 당사자이다. 남이라도 일정기간 알고 지내면 경제공동체로 보는 문재인 정권하 판례에 비추어보면 (100보 양보해서) 조국장관 모르게 전부 아내가 했다하더라도 그건 자기 변명에 불과하다. 건국이후 다른 장관도 아닌 어떤 법무부장관이 이랬던 적이 있던가. 더구나 그는 장관직에 있으면서 자신과 관련한 사건에서 압수수색 현장의 검사에게 압력으로 보일 수 있는 전화를 하거나 당초의 약속과 달리 검찰이 그의 가족과 관련한 수사에서 비공개소환을 하는 등으로 인해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위법 의혹을 받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는 대한민국 헌법하의 공직자로서 용납될 수 없는 사회주의자임을 밝히기도 했다(자유주의자이면서 사회주의자라는 말은 것 또한 야누스적이다).

방법은 어떠한가. 언론보도를 보면 조삼모사가 따로 없다. 특수부란 명칭이 반부패수사부가 아니어서 피해본 국민이 있었던가. 원래 특수부는 고위공무원 및 권력형 부패수사를 위해 존재해왔다. 그러나 그 수사의 정치적 폐해를 방지한다면 그런 의미에서 받아들일 수는 있겠지만 현재 진행되는 검찰장악 방식은 그 의미와는 정확히 반대다. 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법안을 보자. 이건 무소불위 특수부의 창설이고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직속 공수처장이 사실상 전국의 모든 특수부 사건을 독점하는 법안이다. 입법행정사법의 모든 공무원이 공수처장의 감시대상이 된다. 가히 히틀러의 수권법에 비견할 만하다. 원래 자유민주주의 개혁 원칙은 권한의 분리와 견제다. 특수부를 없앴다고 하면서 공수처란 이름만 바꾼 권력형 독재기구를 창설한단다. 

시기를 보자. 문재인 정권과 조국장관은 지금과 달리 소위 적폐수사라고 하여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검찰 특수부 수사를 응원했다. 정치적 반대자들을 모두 감옥에 보내고 나서 ‘지금’이야말로 검찰개혁이라고 말한다면 이전의 문재인 정권하 특수부 수사도 적폐라고 자백하는 꼴과 다름없다. 내년 총선을 대비해서 선거법과 무소불위 공수처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말만하면 촛불혁명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그 촛불혁명이 국민의 대의라면 지금도 아무 거리낌 없이 그 권한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굳이 국민과 여론이 달라져도 독재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방패막을 법으로 만들려는 것일까.

검찰개혁이라고 말하는 내용도 사실 내용이 없다. 별건 수사라든가, 심야조사 문제, 피의사실 공표 문제 등은 누구나 그 대의만 들으면 공감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는 많은 논란의 문제가 생긴다. 가사 국민들에게 선전하는 그 개혁방안이 맞다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검찰개혁은 선전용에 불과하고 정파적일 수밖에 없다. 검찰 내부에서 어떻게 하겠다만 있을 뿐, 피의자 인권을 대변하는 외부세력, 즉 변호인이나 법원의 감시견제와 관련한 추가 개혁은 하나도 없다. 입맛대로 할 수 있다는 거다. 외부적 견제가 없는 개혁은 다시 한 번 조삼모사에 불과하다.

이 칼럼을 쓰는 와중에 조국 장관의 사퇴소식이 들린다. 그러나 조국장관이 사퇴한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검찰개혁과 공수처는 야누스의 얼굴이다.

야누스는 그래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쳐다보고 있지만, 이 정권의 검찰개혁과 공수처는 ‘검찰장악’과 ‘파시즘’이란 한 방향만 쳐다보는 야누스다.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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