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삼 칼럼] 멸공-방첩을 다시 돌아본다
[김용삼 칼럼] 멸공-방첩을 다시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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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시절, 우리의 이념적 좌표는 명확했다. 반공-방첩이다. 이것이 1970년대 후반에는 ‘멸공-방첩’으로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되었다. 국가보안법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공산주의자·사회주의자, 소위 ‘민주화’로 위장한 이념과 체제 변혁세력들의 대공세로부터 대한민국을 효율적으로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누가 뭐래도 이것이 박정희의 업적이다. 박정희 시대에 이들을 유효적적하게 억제·통제하지 못했다면 이 나라는 오래 전에 공산화 되어 주체 수령교 교주를 모시고 ‘장군님의 위업’을 달달 외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조국 장관’ 사태를 두고 둘로 갈렸다. 한쪽에서는 “검찰개혁, 조국 수호”를 부르짖고, 다른 쪽에서는 “조국 파면, 문재인 탄핵”을 외친다. 한쪽에서는 서초동 대로를 가로막고 초대형 스크린과 유명 가수·연예인·작가들이 등장하는 시위를 하고, 하늘에선 공중파 방송들의 헬기가 시위를 생방송한다. 다른 쪽에서는 청와대 앞에서 밤을 새워 노숙 시위를 하며 나라 구원 예배와 통성 기도로 청와대 담장을 울린다.

해방공간에서 좌우로 진영이 갈려 목숨 건 이념 투쟁을 벌일 때의 모습과 동일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탈북자들이 자유를 찾아 줄줄이 목숨 건 탈북을 해오는 반면, ‘주체의 낙원’ 북한으로 탈출하는 월북자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을 둘러싼 공방이 개인 차원의 문제의식을 넘었고, 이념과 체제, 진영의 싸움으로 비화되었다. 이제 자유민주 대한민국의 영속이냐, 전체주의 고려연방국가로의 변혁이냐를 가름하는 아마겟돈의 전쟁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진행 중이다. 총칼과 전차, 대포가 동원 된 전쟁이 아니라, 미디어와 SNS를 장악하고, 선전선동으로 표심(票心)을 장악하는 전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조국 사태는 좋든 싫든, 원하든 원치 않든, 대통령 책임론으로 비화되지 않을 수 없다. 장관에 대한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다. 때문에 조국 사태의 책임 소재는 대통령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촛불 대통령’ 취임 후 현재까지의 통치행위를 복기해 보자. 대한민국의 자유민주 체제 부정, 남북연방제 시도, 한미동맹 해체, 한일관계 악화, 북·중·러 사회주의 동맹으로의 편입, 북한과 9·19 군사 합의 통해 안보기반 해체, 탈원전·4대강 보 해체, 세금폭탄, 범법자 옹호, 국격 실추…. 참으로 끔찍하고 경악스러운 대한민국 해체작업의 연속이다.

좌익은 과거로, 우익은 미래로

이 작업에 동참한 세력들의 면면을 보면 대한민국 건설에 벽돌 한 장 쌓기는커녕, 소위 ‘민주화’로 위장하여 목숨 걸고 대한민국 반대·해체의 목소리를 높여온 부류들이다. 그들은 소련을 해방자로, 미국을 점령군으로 해석하질 않나. 사회주의(공산주의)는 인간해방의 복음이요, 자유민주주의는 자본가들의 계급 착취를 정당화하는 ‘악의 제도’라고 낙인찍는다.

그 연장선상에 서 있는 ‘촛불’ 옹호 세력의 목표는 한 가지다. 해방 공간에서 실현하지 못했던 반제반봉건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대한민국 땅에서 실현하려는 것이다. 이들의 의도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로의 통일, 혹은 고려연방제의 쟁취다.

저들이 역사퇴행적 뻘짓을 반복할 때 자유민주 세력들은 나라의 발전을 위해 땀과 눈물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브라운 주한 미국대사는 1966년 8월, 한국이 오랜 역사적 고립의 둘레를 벗어나 ‘은둔의 왕국’에서 탈피하여 국제무대로 도약하는 모습을 자세하게 서술한 서한을 미 국무부의 윌리엄 번디 아·태담당 부차관보에 보냈다. 이 서한에는 엄청난 에너지와 활력 속에서 눈부신 속도로 변신과 발전을 거듭하는 한국 사회의 역동적인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국가적 태도는 외부세계에 대한 의심과 의존으로부터, 갈수록 높아지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희망으로 변환되고 있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그리고 어쩌면 다시는 결코, 그처럼 오랜 세월 동안 그러해 왔던 ‘은둔의 왕국’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은 앞을 보기보다는 뒤를 돌아보고, 밖을 내다보기보다는 안을 들여다보며, 자신이 먼저 손 내밀고 다른 국가들에 영향을 주기보다는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를 회피하고 외면하는 나라였다. 오늘날 한국은 외부세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적극 주장하고, 영향령 행사를 열성적으로 추구하며, 권리의 문제로서 강대국들이 자신과 협의하고 자신의 의견을 존중해 주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후략)”

브라운 대사의 말처럼 우리는 ‘은둔의 왕국’에서 벗어나 개방의 세계로 나갔다. 과거를 돌아보기보다는 미래를 향해 뛰었고, 한 나라라도 더 친구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심지어 국가원수가 한국 원양어선들의 참치 잡이 현장인 남태평양 사모아섬의 파고파고항까지 찾아가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1968년 9월, 당시 사모아 기지에 진출한 한국 원양어선은 60여 척, 선원은 2,000여 명이었다. 그들의 현지에서 격려하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이 남태평양까지 찾아간 것이다. 선원들은 대통령이 자신들을 위로하기 위해 태평양 섬까지 찾아와 준 것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후대에게 어떤 나라와 삶을 물려줄 것인가?

그해 연말, 박정희는 대한민국 대통령 명의로 사모아에 기지를 둔 남태평양의 원양어부들에게 고추장과 김치통조림 207상자를 선물로 보냈다. 2008년 작고한 작가 이청준은 한 언론 기고문에서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명심해야 할 것은 지금의 우리 경제력이 어제오늘 이 세대가 이룬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일찍부터 값싼 섬유 제품과 신발류 등속으로 출혈 수출을 시작한 소기업부터 북태평양 얼음바다로 원양어선 타고 나간 우리 어업인들과, 사막의 모랫바람을 몇 해씩 견디고 돌아온 중동 건설근로자들과, 심지어 ‘용병(傭兵)’ 소리까지 감수해야 했던 월남 참전 용사들의 피와 땀이 기틀을 마련해준 덕이다. 오늘 지구촌 곳곳의 시장을 누비게 된 전자제품·자동차·조선해운업의 발전도 이역만리 독일에서 파견 광원들과 간호사와 이 나라 대통령이 함께 애국가를 부르며 눈물 속에 다짐했다는 서러운 결의와 종자돈이 주춧돌을 놓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허투루 생색내고 낭비할 권리가 없다. 우리 후대들의 앞일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오늘 우리는 그들에게 과연 어떤 나라와 삶을 물려줄 것인가.’(「조선일보」 2005년 11월 3일, 아침논단, ‘어떤 나라를 물려줄 것인가’)

중동 사막의 근로자, 남태평양의 참치잡이 선원, 베트남의 정글에서 목숨 바친 참전용사…. 그 많은 사람들이 보다 잘 사는 내일을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릴 때, 좌익세력들은 애오라지 이 나라를 뒤엎기 위해 역사퇴행의 길을 향해 질주했다.

‘민주화’와 ‘촛불’로 위장한 좌익 전체주의 추종세력의 생각과 행위는 단순하고 분명하다. 지극히 목표 지향적이다. 그 목표란, 자신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 현존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다. 다 같이 잘 사는 사회, 내 삶을 책임지는 정부, 사람이 먼저인 국가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악착스럽게, 무자비하게, 비타협적으로 자신들이 권력을 탈취하고 행사하는 것을 뜻한다.

이를 위해 그들은 먼저 ‘촛불 지지세력’을 조직하고, 그 주위에 대중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국가기구(군대·경찰·관료제도·사법부·의회 등)를 장악한 다음, 결정적 시기를 택해 상대를 파괴한다. 이를 위해 협박·공갈·납치·살인 기타 무자비한 폭력적 수단을 동원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파쇼 전체주의적 광란을 통해 반대자들의 투지를 꺾거나 약화시켜 대항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레닌은 자신의 저서 『국가와 혁명』에서 ‘부르주아 국가는 폭력 없이는 혁명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남의 권력을 빼앗기 위해서는 폭력이 필수적이고, 폭력이 행사되는 곳에서는 반드시 피가 흐르기 마련이다. 저들이 추구하는 이념은 ‘폭력’과 ‘피’의 제단 위에 서 있는 파괴적 이데올로기다.

‘촛불 지지세력’은 자신들이 정권을 탈취하는 투쟁에서 철저한 ‘속임수’를 전략 전술의 핵심 논리로 내세운다. 대중을 자신들 편으로 유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한다. 거짓말을 해야 하니까 자신들의 본심을 이중적 구조로 숨겨놓는다. 결론적으로 좌익 전체주의 세계의 본질은 계획적이고 의도된 속임수 체계다.

‘조국 문제’로 촛불 세력 분열 가능성

이제 대한민국 좌익세력들은 자금과 정보, 권력과 공권력(군대·경찰), 언론·종교·영화계 등 문화권력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마지막 남은 보루가 검찰이다. 이것마저 장악하기 위해 범죄 혐의자를 장관으로 보내 또 다시 촛불 난동을 시작했다.

폭력과 파괴, 선전선동의 원리가 적나라하게 작동한 것이 박근혜 탄핵 과정에서 벌어진 최순실 태블릿 PC사건 조작, 촛불·횃불 난동사태다. 지금 그 수법이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서초동에서 동일한 패턴으로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촛불 지지세력’, 즉 좌익 전체주의자들은 내세워야 할 ‘인물’을 잘못 골랐다. 저토록 하자가 만발한 ‘가족 사기단’의 수장(首長)을 언제까지나 감쌀 수는 없는 법이다. 과거 박근혜 탄핵을 둘러싸고 우익 진영이 둘로 갈려 반목했듯이, 좌익 진영에서도 조국의 처리 문제를 두고 핵분열을 일으킬 것이다. 조만간 조국 일가를 둘러싼 ‘권력형 게이트’의 대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점점 농후해지고 있다.

좌익 전체주의자들은 이미 기득권 세력이 된 지 오래다. 견제 감시 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것이 인류 역사의 잠언이다. 부패한 좌익 척결을 위해서는 우리가 오래 잊고 살았던 단어, ‘반공·방첩’으로 정신 재무장을 해야 한다.

박정희 시절, 우리의 이념적 좌표는 명확했다. 반공·방첩이다. 이것이 1970년대 후반에는 ‘멸공·방첩’으로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되었다. 국가보안법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공산주의자·사회주의자, 소위 ‘민주화’로 위장한 이념과 체제 변혁세력들의 대공세로부터 대한민국을 효율적으로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누가 뭐래도 이것이 박정희의 큰 업적이다. 박정희 시대에 체제변혁세력들을 유효적절하게 억제·통제하지 못했다면 이 나라는 오래 전에 공산화 되어 주체 수령교 교주를 모시고 ‘장군님의 위업’을 달달 외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주위를 돌아보라. 얼마나 많은 간첩과 공산주의자(사회주의자)들이 체제변혁, 촛불 혁명, 민주화, 사람이 먼저, 다 같이 잘 사는 사회의 구현이란 가면을 쓰고 설쳐대고 있는지를. 서초동 대전(大戰), 광화문대전, 청와대 앞 노숙투쟁으로 날을 새고 있는 이 암흑의 시대에 멸공·방첩의 의미를 새삼 되새겨 본다.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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