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량미달-하자 투성이 수두룩한 문재인 정부 1기 내각
노무현 정부에는 그래도 윤증현 최종찬 김대환은 있었다
‘뛰어난 장관’ 소린 못 듣더라도 汚名은 남기지 말라

권순활 전무 겸 편집국장
권순활 전무 겸 편집국장

노무현 정부 시절 나는 몸담고 있던 신문사 경제부장 등으로 일하면서 집권세력의 독선과 오만, 무능과 위선을 지적하는 칼럼을 종종 썼다. 후배기자들이 발로 뛰어 취재해온 내용을 토대로 좌파 정권의 포퓰리즘 정책이 미칠 폐해와 위험성을 경고하는 기사도 많이 내보냈다.

최악의 거짓과 선동 보도가 홍수처럼 쏟아져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던 무기력한 박근혜 정부와 달리 당시 정권은 자신들의 입맛에 안 맞는 기사는 조금의 허점만 있어도 꼬투리를 잡아 언론중재위원회 제소나 고소, 고발을 남발하던 때였다.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가 나가는 날은 트집잡히는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조간신문 최종판 편집이 끝나는 밤늦게까지 기자들의 기사 표현 하나하나를 다듬어야 했다.

잘못된 방향의 정책에 대해서는 비판했지만 국가와 국민을 위해 올바른 방향이라고 판단되면 적극적으로 도왔다. 당시의 좌파 홍위병 언론들이 기를 쓰고 반대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나 철도노조 불법파업에 대한 정부의 원칙적 대응에는 누구 못지않게 노무현 정부를 격려하고 지지했다.

장관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역량과 자질에 비해 너무 큰 모자를 쓴 함량미달 각료나 극좌 운동권 출신 새파란 청와대 실세(實勢)들의 눈치만 보는 각료의 문제점은 강도 높게 질타했지만 여러 한계 속에서도 제대로 된 공직자의 소신과 자세를 지키는 장관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청와대 비서진들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신용카드 수수료나 금융산업 지배구조 문제와 관련해 경제 논리를 강조하고, 18년이나 질질 끌었던 생명보험사 상장(上場) 문제를 마무리 지은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이 대표적이다. 그가 퇴임하기 직전인 20077월 쓴 장관다운 장관 윤증현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필자는 누구의 눈치도 의식하지 않고 그가 남긴 족적을 공개적으로 평가했다. 그 칼럼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썼다. “3년 임기를 채우고 떠나는 그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금감위원장으로 쌓은 명예를 앞으로도 흐트러뜨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현재 펜앤드마이크(PenN) 객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도 비슷한 사례다. 노 정부 초반인 20036월말 시작된 철도노조 불법파업 때 최 장관은 이번에는 분명히 원칙을 지킬 것이며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그 소신을 지켜 철도 노조의 항복을 받아냈다. 당시 필자가 몸담고 있던 신문사는 정권과 불편한 관계였지만 건교부를 취재하던 기자와 상의해 최 장관의 소신과 뚝심을 높이 평가하는 박스 기사를 내보냈다. 취임 당시 제기된 노조 편향 우려와 달리 재임 중 한국의 왜곡된 전투적 강성 노동운동을 질타한 김대환 노동부 장관도 내가 일하던 신문사에서 비슷한 예우를 받았다.

문재인 정부를 두고 흔히 노무현 정부 시즌 2’라고들 한다. 문 대통령 본인이 노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과 민정수석비서관 등의 요직을 거쳤고 정권의 주도세력이 중첩되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하지만 정권 출범 후 9개월 넘게 지켜본 바로는 노 정부보다 훨씬 하수(下手). 무엇보다 이 정부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노 정부의 윤증현 최종찬 김대환 장관처럼 제대로 평가해줄만한 장관을 찾기가 힘들다.

지금은 대한민국 건국 후 전례를 찾기 어려운 안보 및 외교적 위기 상황이다. 어느 때보다 주요국과의 외교 역량이 절실한 시점에 취임 당시부터 자질 논란을 빚었던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아마 외교부 역사에서 최악의 장관으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군대도 안 다녀온 사람들이 즐비한 청와대 비서진에 걸핏하면 꿀밤이나 먹는 장성 출신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과연 묵묵히 나라를 지키는 직업군인들이 존경하고 따를 만한 장관이라고 할 수 있는가. 북한의 김여정과 김영남이 방한했을 때 눈에 띄게 저자세를 보여 상당수 국민의 공분을 산 조명균 통일부 장관, 교수 출신이면서 제대로 된 논문도 쓴 적이 없는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진정한 법치에 대한 신념보다는 현 정권과의 코드 일치가 발탁의 주요한 배경으로 보이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또 어떤가.

경제 분야 장관들도 마찬가지다. 본인의 삶부터 공정과는 거리가 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 후 마구 휘두르는 칼을 보면서 장관님 말씀대로 공정하게 기업 활동을 하겠습니다라고 진심으로 승복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복잡하기 짝이 없는 국토교통 행정의 수장(首長)인 정치인 출신의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해당 부처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퇴임할 때까지 정확하게 파악이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도 자신을 옛 노조위원장으로 착각하는 듯한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나 한국형 강남 좌파의 위선적 모습을 여실히 드러낸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한숨이 난다. 역대 어떤 정권과 비교해도 내각 구성에서 정통 관료 출신을 홀대한 현 정권에서 그나마 몇 안 되는 관료 출신인 김동연 경제부총리 역시 정부 경제팀 수장으로서의 권한을 거의 행사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약체 장관이 즐비한 것은 기본적으로 대통령이 조각(組閣) 때부터 깜이 안 되는 인물을 대거 기용한데 1차적으로 기인한다. 이와 함께 최대한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고 일해야 할 청와대 비서들이 그 어떤 정권보다 기세등등하게 설치면서 장관은 안 보이고 청와대 비서들만 보이는' 현 정권의 권력 구조 탓도 클 것이다. 칼럼 분량을 감안해 청와대 비서진의 문제는 오늘은 이쯤에서 접고 나중에 별도로 다시 다룰 생각이다.

아무리 청와대 비서진의 입김이 강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장관은 장관이다. 각료가 정치인이라도 실제 부처 업무는 대부분 전문 관료 출신의 사무차관이 주도하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청와대나 장관의 뜻에 따라 실무진 인사까지 큰 영향을 받고 정책의 방향도 달라질 수 있다. 각 부처 장관들은 지금이라도 제발 제대로 소관 분야 업무를 철저히 공부하고 말도 안 되는 청와대의 어설픈 정치공학적 논리에는 당당하게 맞서는 소신을 펴주길 바란다. 임기가 길든 짧든 어차피 장관으로 일했다면 나중에 뛰어난 장관이란 말은 못 듣더라도 오명(汚名)을 남기는 일만은 피해야 하지 않겠나.

권순활 전무 겸 편집국장 ks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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