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건국과 부국을 국제적 관점에서 조망해볼 수 있는 저서

『미국의 봉쇄전략: 냉전시대 미국 국가안보 정책의 비판적 평가』, 저자 존 루이스 개디스, 역자 홍지수, 강규형, 비봉출판사, 2019.09.25 초판 (ISBN: 9788937604805)

한국은 냉전질서 속에서 태어나 눈부신 발전을 이룬 나라다. 그런데 정작 한국인들은 냉전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대단히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분단으로 인한 상흔 때문인지 건국과 그 이후를 폄훼하고, 한국이 냉전질서에서 서방 자유 진영에 편입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지 않는 듯한 풍조도 상당하다. 그래서일까? 냉전사에 있어 첫손에 꼽히는 명저(名著)가 이제야 우리말로 번역됐다. ‘냉전사학자들의 학장(Dean of Cold War Historians)’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냉전사 연구를 주도해온 존 루이스 개디스(John Lewis Gaddis) 예일대 교수의 『Strategies of Containment: A Critical Appraisal of American National Security Policy during the Cold War』(Oxford University Press, 1982)가 전문번역가 홍지수씨와 개디스 교수의 제자인 강규형 명지대 교수의 노력으로 국내 출판됐다.

이 책은 냉전질서의 기원을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에 함께 맞섰던 미국과 소련의 관계로부터 찾는다. 미국의 인적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자 했던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가 전쟁 이후의 국제질서 수립 구상 단계에서 스탈린(Joseph Stalin)에게 좌절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루스벨트의 갑작스런 죽음과 트루먼(Harry Truman)의 등장은 친소(親蘇) 정책의 변화를 가져온다. 특히 스탈린이라는 독재자가 이끄는 소련 공산주의 체제의 실체를 잘 알지 못했던 미국은 조지 케넌(George F. Kennan)의 ‘긴 전문(Long Telegram)’을 통해 냉전질서의 토대를 마련하게 됐다. 저자인 개디스는 이 책을 케넌의 ‘긴 전문’으로 시작해서 ‘긴 전문’으로 끝을 냈다. 그만큼 한 개인의 역할이 냉전질서 수립과 존속에 있어 결정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긴 전문’은 1946년 2월 소련주재 미국대사관 참사관이었던 케넌이 본국 요청에 8천자(字) 넘는 장문으로 소련의 역사와 체제 성격 등을 분석한 보고서다. 여기서 케넌은 미국이 소련의 대외팽창을 막기 위해 물샐 틈 없이 철저히 봉쇄해야 하며, 이를 꾸준히 지속하면 소련은 안에서부터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모두 알다시피 이는 그대로 현실이 됐다.

개디스는 미국의 봉쇄전략(Strategies of Containment)이 대전략으로서 유지되는 가운데 역대 미국 정부에서 거의 10년 단위로 변형 및 응용이 이뤄졌음을 유려하게 서술해나간다.

특히 6.25전쟁에 대한 부분이 눈에 띈다.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루스벨트에게 관철시키는 데 실패한 배경과 그 이후의 성공을 적나라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남침으로 발생한 6.25전쟁은 소련의 대외팽창 야욕으로 힘의 균형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가정을 확인시켜줬다. 미국이 6.25전쟁에 재빨리 참전한 이유, 그리고 휴전선을 넘어 북진하기로 한 파격적 결정과 맥아더 해임으로 드러난 확전 반대 의사 등이 모두 설명될 수 있다.

이러한 냉전질서에서 한국은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방 자유 진영에 확실히 편승함으로써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따라서 국내 학계에 걸출한 성과를 남긴 故김일영 성균관대 교수는 생전에 강규형 교수와 의기투합해 이 책을 언젠가 번역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 교수는 냉전질서로부터 비롯한 한국 현대사를 ‘건국’과 ‘부국’이라는 테마로 엮은 빼어난 학술적 성과(『건국과 부국: 이승만, 박정희 시대의 재조명』, 기파랑, 2010)를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채 2009년 세상을 등졌다.

강 교수는 역자 후기에서 홍지수 작가와 비봉출판사 대표의 노력 덕분에 이 책이 故김일영 교수 10주기에 맞춰 출간될 수 있었다며 감사를 돌린다. 오랫동안 국내 학계 인사들이 번역 출판을 염원해온 이 책이 늦게나마 빛을 보게 된 만큼 일독을 권한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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