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 희곡 <칼리굴라>
‘권력자가 저지르는 가장 큰 범죄는 젊은 영혼과 그들의 미래를 절망에 빠뜨리는 것’
오늘 자유를 빼앗기면 내일은 노예로 살아야 할 뿐
미래를 지키기 위해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

무키우스 : 벌써 3년이야.
귀족3 : 그렇고말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지.
귀족1 : 계속 망설이고 있을 텐가?
귀족3 : 우리는 당신과 행동을 같이 하겠소.
노귀족 : 그는 비열한 자야.
귀족2 : 파렴치한 자야.
귀족3 : 웃기는 자야.
노귀족 : 무능력자야.
귀족4 : 벌써 3년이야. - 알베르 카뮈 <칼리굴라> 중에서.

알베르 카뮈의 희곡 <칼리굴라>의 주인공, 실제 로마의 폭군이기도 했던 칼리굴라는 이 세상에 '평등'을 선물하겠다며 국민의 자유를 빼앗고 사유재산을 갈취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투옥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죽여 버린다. 끔찍한 변덕과 독선과 살인을 일삼는 황제 손에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공포에 떨던 대신들은 참았던 불만을 토로한다. 케레아는 '자기 머릿속 생각밖에는 아무것도' 볼 줄 모르는 독재자, 그 결과 온 나라를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재앙의 근원, 칼리굴라를 암살할 것을 원로의원들과 모의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은 미쳐있지 않아요. 내가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그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칼럼 원고를 거의 다 써놓고 10월3일 개천절, 태극기집회에 다녀와서 새로 쓴다. 2019년의 개천절은 더 이상 기원전 2333년의 어느 하루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4352년 전, 단군할아버지가 나라를 세웠다는 과거를 기억한 날로 기록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인파 속에 섞여본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혼자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나갔는데 국경일, 시내 방향 지하철 승객이 그리 많을 줄 몰랐다. 이분들 모두 태극기 집회 가시는 건 아니겠지 했는데 거의 다 광화문에서 내렸다. 서너 정거장 전부터 앞차와의 간격 때문에 출발이 늦어진다는 기관사의 안내방송이 잇달았지만 그래도 설마,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플랫폼을 가득 메운 인파들, 열차에서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지만 사람들 속에서 꼼짝도 못하고 한참을 역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통치한다는 건 훔치는 거야. 나는 말이지. 노골적으로 훔치는 쪽이야. 이 바보들아. 인간의 생명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돈이 전부라고 보는 이상, 목숨 같은 것은 헌신짝같이 생각해야 마땅한 거야."

막무가내로 세금을 올리고 입맛대로 법을 바꾸고 원로들의 직책도 마음대로 갈아치우는 칼리굴라는 '폭군이란 자기의 이념이나 야심을 위해 백성을 희생의 제물로 삼는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한다. 뻔뻔하기 그지없는 독재자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케레아는 목숨 걸고 앞장서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내가 나서려는 것은 야심 때문이 아니라 이성적인 공포 때문입니다."

궁금하다. 무엇이 휴일의 늦잠과 휴식을 버리고 그 많은 사람들을 광장으로 나오게 했을까. 인파에 섞여 밀고 밀리는 동안 앞에서 뒤에서 친구끼리 가족끼리 나누는 이야기들은 한결같았다.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가 있느냐, 문재인, 조국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다, 국민이 바보인 줄 아느냐?"

온갖 불법을 저지르고도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청문회를 통과하고 임명되는 장관과 관료들. “나는 사회주의자다.”라고 선언해도 법무부장관이 되는 사회. 그 자녀들이 누린 해괴한 불법 특혜들. 그런데도 아무 문제없다며 임명하는 최고 권력자의 독단. 정치, 경제, 안보, 외교를 모두 망가뜨린 후 결과적으로는 대한민국을 북한에 진상하겠다는 붉은 계획.

이대로 나라를 빼앗길 수 없다는 국민의 의무감와 책임감이었다. 지금 여기, 이 나라를 지켜내지 않으면 다음 세대, 대한민국의 미래가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래서 우리 자식들, 우리 자식의 자식들이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할 이 땅을 건강하고 자유로운 상태로 물려주어야 한다는 깊고 뜨거운 내리사랑이 그들을 거리로 나오게 한 것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2016년 권력찬탈을 목표로 사기 탄핵이 벌어지던 광화문, 단두대와 잘린 머리 공차기 퍼포먼스를 벌이던 괴기스럽고 파괴적이고 음산했던 에너지와 달리 이날의 열기는 상생의 에너지, 생명의 에너지로 충만했다. 

다만 국민의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엄청난 힘과 에너지를 지혜롭게 한 데 모아 현명하게 이끌어줄 정치적 리더가 있다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많은 국민을 자신들이 불러 모았다고 주최측들은 착각하겠지만 결코 그들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 내각제 구상이나 총선 재선, 헌금이나 기부금 액수를 계산하며 저마다 대형 스피커를 통해 열심히 호객행위를 했지만 일반 시민의 마음을 얼마나 깊숙이 파고들 수 있었을까. 

청산해야 할 원죄, 사기 탄핵에 대한 사죄와 반성이 없이는 아무리 바른 말을 한다 해도 울림이 있을 리 없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진실이기 때문이다. 거짓에 대한 혐오와 정직에 대한 갈구, 내가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건강한 사회에 대한 열망으로 그 자리에 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기존 정치세력에 의해 세상이 바르게 일어서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내로라하는 정치인과 지식인들의 우매함을 앞질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실을 향해 깨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마치 태풍이 지나가고 먹구름이 걷히며 파랗게 개인 그날의 하늘처럼. 그리고 젊은 세대들!

“너 같은 젊은 영혼을 절망에 빠뜨리는 것은 지금까지 그가 저지른 모든 범죄 이상의 큰 죄야. 맹세코 말하지만 그 이유 하나만 가지고도 그 사람을 죽이고 싶도록 분노하기에 충분해.”

케레아는 젊은 스키피오에게도 반란에 참여할 것을 권하지만 청년은 망설인다. 아버지가 칼리굴라에게 혀가 뽑히고 피를 토하며 죽었는데도 스키피오는 복수는커녕 분노의 감정마저 품지 못한다. 자신의 예술성을 인정해준 은인이라며 오히려 폭군에게 연민마저 느낀다.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있다.”며 케레아가 독려하지만 스키피오는 독재자를 단죄하는 일을 끝내 외면한다. 훗날 칼리굴라의 몸에 결정적 비수를 찔러 넣은 케레아는 옳고 그름의 경계에서 선택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스키피오를 안타까워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젊은 영혼을 마비시키는 죄가 폭군의 가장 큰 범죄’라며 깊이 탄식한다.

세계는 숨 쉴 틈 없이 앞으로 번영하며 나아가는데 우리는 국가의 존립마저 불안한 상태다. 무엇보다 역대 최대의 취업난과 높은 실직률 앞에 젊은 세대의 미래는 고사 직전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법 위에 오만하게 앉아 있는 저들의 숨겨진 목표가 대한민국의 적화라는 것이다.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지금 바르게 선택하지 않으면 절대 잃어서는 안 되는 것들, 자유와 사랑과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나라 없는 국민은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 자유롭게 발을 딛고 살아갈 터전이 없다면 꿈도 이상도 희망도 펼칠 수 없다. 일당독재 치하의 사회처럼 현 정권을 반대하는 목소리,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대로 방치하고 외면한다면 피자도 햄버거도 없이, 와이파이와 인터넷과 스마트폰도 없는 세상에서 살아야 할지 모른다. 여행과 사랑의 자유는 말해 무엇 할까. 

그날, 이 땅의 많은 청년들은 머뭇거리고 포기했던 스키피오와는 분명 달랐다. 모쪼록 2019년 10월3일은 태극기 정신의 바통이 젊은 세대에게로 옮겨간 날로 기록되길 바란다. 오늘의 분노는 과거를 향한 것도 현재를 위한 것도 아닌 오직 미래, 그들 세대를 위한 것이므로! 이 땅이 자신들이 살아가야 할 터전이라는 것을, 이 땅의 미래란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손잡고 함께 걸어가야 할 공간과 시간인 것을 더 많은 젊은 세대가 인식하기를! 지혜로운 젊음, 그들이 이 나라 이 땅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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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라, 개인이여! 일어나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여!

TMTU. Trust Me. Trust You.

*‘TMTU. Trust Me. Trust You.’는 김규나 작가가 ‘개인의 각성’을 위해 TMTU문화운동을 전개하며 ‘개인이여, 깨어나라!’는 의미를 담아 외치는 캐치프레이즈입니다.

*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소설가, 소설 <트러스트미> <체리 레몬 칵테일>, 산문집 <대한민국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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