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삼의 세상만사] 북한 해방-북한 민주화 촉진에 몸 바치기로 약속한 허광일 씨
[김용삼의 세상만사] 북한 해방-북한 민주화 촉진에 몸 바치기로 약속한 허광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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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벌목공에 대한 무대접·푸대접은 익히 들어왔지만, 이번 허광일 위원장 사례처럼 탈북자들을 교묘하게 엮어 구속까지 몰고 가는 것은 지능적 탄압이자 한국에서 살지 말고 북으로 돌아가라는 무언의 압력이다. 이 따위 구속에 겁먹을 허광일이 아니니 힘내시라, 허 위원장.

벌목공 출신 허광일 씨가 지난 6일 구속되었다. 조국 법무장관 사퇴 촉구-문재인 정권 규탄을 위한 청와대 앞 집회 과정에서 폭력 행사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이다.

북한인권운동단체인 물망초 재단을 이끌고 있는 박선영 동국대 교수는 허 위원장이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고, 플래카드 한 장 들지 않았으며 구호조차 외치지 않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구속되었다.

허광일 씨는 단순한 벌목공·탈북민이 아니다. 북한 인권 개선 및 북한 주민을 세습 독재자들의 손아귀에서 구출하기 위해 활동하는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이다. 북한인권운동가다. 그런 상징적 인물을 문재인 정부는 구속했다.

필자는 1990년대 중반, 블라디보스토크, 우스리스크, 하바로프스크 등 연해주와 만주벌판을 미친개처럼 뛰어다녔다. 그곳을 유랑하는 벌목공·탈북자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세상 사람들이 벌목공·탈북자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의 일이다.

당시 러시아는 구(舊) 소련이 붕괴한 후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격렬한 진통을 겪고 있었다. 마피아들이 총 들고 설쳐대는 무법천지, 살벌한 체제 변혁의 소용돌이 과정에서 시베리아 일대 취재는 목숨 건 일대 모험이었다.

시베리아 벌목장에서 일하던 북한 벌목공들이 체제 변혁의 와중에 추위와 굶주림에 방치되었다.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유를 위해 탈출했다. 그들은 천신만고 끝에 블라디보스토크의 한국 영사관에 찾아와 귀순 요청을 했다.

탈북자 귀순 거절한 김영삼, 김대중 정부

그들이 희망하는 나라는 한국이었다. 말이 통하고, 같은 핏줄이라고 믿었으니까.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렇게 선전했고, 헌법에도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고 명기해 놓았으니까. 그들은 대한민국 헌법 조항을 믿고 탈출하여 귀순을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김영삼·김대중 정부는 이들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냉대하고 방치했다. 겉으로 명문화 하지는 않았지만, 탈북자·벌목공은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당시 정부의 확고한 원칙이었다. 그 결과 숱한 벌목공·탈북자들이 한국으로 귀환을 위해 노력하다 북한 체포조에 끌려가 참혹하게 죽었다.

허광일 씨는 1995~1996년 필자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나 취재를 했던 분이다. 허광일 씨 외에 9명의 벌목공이 더 있었다. 이들은 언제 체포조에게 끌려가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극한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연명하고 있었다.

허광일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6일 구속되었다. 그의 구속은 탈북자들에 대한 지능적 탄압이자, 한국에서 살지 말고 북으로 돌아가라는 무언의 압력이다.(사진 연합뉴스 제공)
허광일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6일 구속되었다. 그의 구속은 탈북자들에 대한 지능적 탄압이자, 한국에서 살지 말고 북으로 돌아가라는 무언의 압력이다.(사진 연합뉴스 제공)

블라디보스토크의 한국 영사관은 귀순 요청을 해 오는 벌목공들 중 일부에게 위험한 일을 시키기도 했다. 당시 하바로프스크에는 북한 임업대표부가 있었는데, 이곳으로 다시 들어가 비밀자료를 훔쳐오도록 부추겼다. 그렇게 일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김영삼 정부는 끝내 그들의 한국행을 허가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벌목공을 돕던 사람들의 신상이 북한 측에 알려졌다. 하바로프스크 북한 임업대표부 내의 체포조 사무실에는 ‘남조선 악질반동 목따기’ 서열 10명의 명단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근무하다가 귀순한 벌목공의 증언에 의하면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의 부총영사였던 최덕근 씨가 서열 2위, 필자가 서열 4위였다고 한다.

안기부 소속이었던 최덕근 영사는 북한의 위조 달러 유통 루트를 추적하던 중, 밤에 자기 집 앞에서 북한 공작원의 독침에 맞아 순직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하바로프스크 북한 임업대표부 앞에서 북한 대표 두 사람이 권총에 맞아 살해되었다. 정보의 세계란 그런 것이고, 자기 조직원이 죽었는데 복수를 하지 않으면 그것은 국가 조직이 아니다. 더 이상 이야기하는 것은 국가 기밀에 속하는 사안이니 자세한 이야기를 소개할 수 없는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허광일 씨

허광일 씨와 함께 은신해 있던 벌목공 중에는 인민군 복무 시절 연천에 근무했던 사람이 있었다. 이 분이 자기 근무 당시 휴전선 연천 부근에서 땅굴 굴착작업을 했던 사실을 증언했다. 필자는 그의 증언을 녹음하여 우리 군 정보 관계자에게 사실 확인을 부탁했다. 그 결과 땅굴 굴착작업은 포를 숨기기 위한 갱도 굴착작업으로 판명되었다.

그렇게 오도 가도 못하고 숨죽이고 있던 벌목공 10명을 필자가 숨겨주고 같이 생활했다. 그 중 한 사람이 허광일 씨였다. 그들은 자유를 갈망했다. 한국에 가면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리고 북한 해방을 위해 싸우겠다고, 북한 주민들을 구출하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하고 약속했다.

이 과정에서 필자와 10명의 벌목공들은 북한 해방과 김정일 암살을 위해 의기투합했다. 당시 필자는 과거 켈로부대(KLO) 소속이었던 이연길 씨와 순전히 민간 차원에서 김정일 암살과 북한 해방을 위한 조직을 결성했다. 인원도 몇 명 안 되는 사람들의 천진난만한 발상이었지만, 이름은 거창했다. 북한민주화촉진위원회였다.

북한을 민주화 해야 하는데, 그게 그냥 되는가. 그러니 인위적으로 촉진시키자. 그래서 만들어진 이름이었다. 필자와 이연길 씨는 북한에서 고위층으로 일하다가 탄압 당해 탈출하여 러시아에 숨어 살고 있는 분들과 연계하여 사람들을 접촉했다. 이 과정에서 선양(瀋陽)에서 김덕홍 씨와 만났고, 그를 통해 북한 주체사상의 창시자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를 만났다.

황장엽 망명은 이연길 씨와 필자가 북한 민주화 촉진운동을 진행하다가 얻은 결실이다. 당시 황장엽·김덕홍 씨와 북한민주화촉진협의회는 진짜로 김정일 암살을 위한 심각한 일들을 진행했다. 이 와중에 두 분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어 한국으로 망명한 것이다.

북한 해방, 북한 민주화 촉진에 몸 바치기로 약속

북한 민주화를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북한 출신들이 필요했다. 허광일 씨를 비롯한 블라디보스토크 벌목공 10인방은 북한 민주화 촉진의 대의에 적극 동의하고, 몸 바쳐 일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기 위해 자기들을 한국으로 꼭 데려가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필자는 그 약속을 지켰다. 10명 모두 한국으로 귀환하여 각자 잘 살고 있다.

허광일 씨도 필자와의 약속을 지켰다. 그는 한국에 정착하여 살면서 북한 해방을 위해,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위해,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리고 김정은 정권에 타격을 주기 위해 조용히 활동했다. 그가 얼마나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심각한 위협을 느꼈으면 청와대 앞까지 나와 시위에 가담했겠는가.

얼마 전 탈북해 온 우리 국민이 굶어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허광일 위원장의 구속과 이 사건에 오버랩 되면 뚜렷한 그림이 그려진다. 현 정부는 북한을 ‘주체의 지상낙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정권이다. 그들은 북한을 탈출하여 대한민국 국민이 된 탈북민들을 ‘주체의 낙원’을 탈출한, 배신자들로 보는 것일까?

탈북자·벌목공에 대한 무대접·푸대접은 익히 들어왔지만, 이번 허광일 위원장 사례처럼 탈북자들을 교묘하게 엮어 구속까지 몰고 가는 것은 지능적 탄압이자, 한국에서 살지 말고 북으로 돌아가라는 무언의 압력이다. 이 따위 구속에 겁먹을 허광일이 아니니 힘내시라, 허 위원장.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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