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줄 조사'에 '황당 예측'으로 최고조에 달한 국민 불신
민주주의 위기 초래하는 중대 범죄에 실상 파헤쳐야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이 저렇게 고집불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그 중 하나가 여론조사 지지율이다. 문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서고 있으나 여전히 긍정 평가는 40% 이상으로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야당은 분열되어 있으며 특히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탄핵의 역풍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 정도 지지율만 단단하게 유지되면 잘못된 인사든, 사회주의 정책이든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여론조사 동향에 민감한 것은 이전 정권들도 마찬가지였으나 이 정권은 더 심하다. ‘지소미아 파기’를 선언할 때도 청와대는 거의 매일 이 문제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해 결정의 근거로 삼았다고 밝혔다. 조국 임명을 강행했을 때도 임명 강행으로 인해 일부 지지층이 이탈하더라도 한국당에는 가지 않을 거라는 분석이 있었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만약 여론조사가 민심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왜곡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는가. 여론조사 업체가 정권 입맛에 맞춰 그들이 원하는 대로 결과를 내놓는다면 또 어찌 되는가. 그야말로 혹세무민하는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현 정권 들어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국민들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분열과 극단으로 치닫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 대한 민심의 향방이 다들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을 넘어 ‘여론조사 조작’이라는 의구심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26일 발표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리얼미터 tbs 조사)은 48.5%로 지난주보다 3.3% 높아졌다. 조국 임명 이후 주춤거리던 긍정 평가 수치가 갑자기 올라간 것에 대해 여론조사 업체는 “최근 한미정상회담과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참석 등에 따른 것”이라며 “여론 지형이 급변했다”고 덧붙인다. 트럼프 대통령과 얼굴을 마주한 것밖에 아무 성과가 없는데 ‘여론 지형 급변’이라니 납득 대신 불신감만 남는다.

조국 임명에 대한 찬성 여론이 46.1%이고 반대가 51.5%로 차이가 좁혀졌다는 여론조사(9월 3일 리얼미터)에 대해 세간의 야유가 쏟아지자 해당 업체는 반대와 찬성 의견의 차가 16.1%로 확대됐다는 결과를 바로 일주일 뒤 내놓았다. 이전에도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지지율 격차가 1.6% 포인트까지 좁혀진 것에 대해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이상한 조사”라고 발끈하자 당장 일주일 뒤 13.1% 포인트로 벌어진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국민들을 우롱하는 건가 뭔가.

올해 4월 창원 성산구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 여론조사 업체들은 정의당 여영국 후보와 한국당 강기윤 후보의 지지율 격차를 12.8%에서 최대 24.1%까지 정의당 후보의 일방적 우세로 점쳤다. 그러나 실제 개표 결과는 득표율 0.5% 차이, 득표 차이 504표의 초박빙 승부로 정의당 후보의 당선이었다. 지지율 격차가 큰 것을 보고 아예 투표장에 나가지 않은 한국당 지지자도 있었을 것이다. 잘못된 여론조사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 논란의 중심에 있는 여론조사 업체의 대표에게 직접 물어봤다. 그는 수집된 통계자료를 업체가 임의로 조정하는 ‘마사지’는 없느냐는 질문과, 정부의 하청 여론조사를 따내기 위해 을(乙)로서 정권 눈치를 보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예상했던 대로 모두 ‘노(no)’라고 대답했다. 반면에 여론조사에 참여하는 응답자 중에 문재인이나 더불어민주당 지지자가 실제 비율보다 많다는 점은 시인했다.

현 정권 지지자들이 적극적으로 여론조사에 응답하면 지지율이 실제보다 부풀려져 나올 수밖에 없다. 또한 지지율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청와대나 여당이 인상을 한번 찌푸리면 중소기업에 불과한 여론조사 업체들이 움찔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여론조사를 ‘여론 몰이’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최근 ‘조국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가 과도했는가, 적절했는가’라는 설문의 여론조사(9월 24일 오마이뉴스)가 대표적이다. 검찰이 조국 자택을 압수수색한 다음 날에, 더구나 검찰 직원들이 조국 집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는 ‘가짜 뉴스’까지 좌파들이 퍼트리는 상황에서 이 조사는 ‘과도했다’는 결론을 얻어내 검찰을 옥죄기 위한 의도가 뻔하다. 이 설문은 결국 ‘과도했다’는 응답이 49.1%로 ‘적절했다’는 응답 42.7%보다 앞선 것으로 나왔다. 

사실 한국의 여론조사는 조사업체의 신뢰성과 공정성, 낮은 응답률,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유형무형의 압력, 특정 결론을 얻기 위한 꼼수 설문 등 여러 한계점으로 인해 민심의 지표 삼기에 한참 모자란다.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참고 자료로서 적당한 정도다. 문제의 근원은 여론조사 결과를 앞세워 반대 진영을 제압하려는 정치세력들에게 있다. 특히 문재인 정권은 무능을 가리고 사태를 호도하기 위해 여론조사에 목을 매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지소미아 파기’ 같은 중대한 국가안보 문제를 여론조사로 결정했다는 설명에는 할 말을 잃게 된다. 

이처럼 여론조사 업체에 과잉 권력이 부여되는 사이 이들은 어느새 한국 정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괴물로 커지고 말았다. 정치권은 한편으로 여론조사 업체에 불만을 표시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달라고 아부하고 싶을지 모른다.

여론조사를 못 믿겠다는 유권자들이 크게 늘어났다. 여론조사의 위기인 동시에 민주주의의 위기다. 여론조사 업체의 신뢰성과 공정성에 대한 국민적 의문을 풀기 위해 철저한 수사와 검증이 필요할 때다. 여론 조작이 드러난 업체에 대해서는 당연히 엄중한 처벌과 함께 문을 닫게 만들어야 한다.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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