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샘의 교실 이야기]⑤학년말 교실풍경, '1987' 말고 '1984'!
[유니샘의 교실 이야기]⑤학년말 교실풍경, '1987' 말고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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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다 끝낸 학기말 교실서 영화 ‘카트’ ‘송곳’ 등 감상하는 학생들
학생들 오감만 만족시켜 주다 전체주의의 홍위병 만드는 셈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진도는 다 끝났다. 종업식까지는 두 시간여 남짓 남은 시점. 문제를 풀자고 해도, 지난 단원들을 복습하자고 해도 아이들의 영혼은 가출한 채 도무지 교실로 돌아올 줄을 모른다.

해서 교과서와의 연결 단원을 찾아 시청각 교육을 시도하기도 한다. 물론 고3들의 방황은 좀 역사가 길다. 수능시험 이후 더 이상 수업 같은 수업의 진행은 불가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학년말 ‘특수상황’이다.

이때 실제로 많은 교실에는 영상이 끼어들어온다. ‘e- 지식채널' 등 온갖 영상물이 풀리는 시즌이다. EBS가 제작한 영상물이 교실 안에 들어온 지는 꽤 오래되었다. 정말 교사의 신중한 선택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되는 자료들이 도처에 널려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필요하면 영상물을 간혹 이용할 수는 있다. 요즘 세대가 ‘유튜브 세대’고 ‘뮤직비디오’ 세대가 아니던가. 텍스트보다는 시각과 청각에 더 빠르게 반응한다. 영상을 보여주고 토론을 하거나 소감을 말과 글로 표현하게 하는 것이 교사의 설명보다 효과적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기로 결심하고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영상을 보고 토의하기로 작심하고 활동지까지 만들어 둔 터였다.

"얘들아 ‘1984’보자. 그 영화는 말이지…"
미처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이야기가 터져 나온다.
"샘, ‘1987’ 아니고요? ‘1987’이에요! ‘1987’!"
"워~워~. ‘1987’ 따위의 영화는 안 봐요. ‘1984’라구!"

‘따위’라는 표현에 당황스러워하며 뜨악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 이 선생님이 바로 1987년에 거리에 쏟아져 나갔던 세대며 이른바 ‘87세대’라고 설명하고 그것이 얼마나 민주화란 이름으로 우리사회를 엉망으로 만들어 오고 말았는지의 일장연설을 했다. 이후 이어진 ‘1984’이야기.

"영화 속엔 가상의 나라가 나와. 그리고 어마무시한 텔레스크린이 나오지. 그 엄청난 스크린이 어디엘 가나 다 있는 거야. 얘들아, 전에 샘이 말한 적 있지? 파놉티콘! 정보화 사회 배울 때 나왔었구. 푸코의 이야기 하면서. 상대방을 끝없이 감시하는 체계지. 그 감시가 심지어 내면화되기도 한단 말이거든. 아, 됐고! 그럼 그런 텔레스크린 같은 것이 지금은 뭐에 견줄만 할까? 그렇지, 그래. CCTV! good! 영화 틀면 첫 화면에 나오는 문장이 하나 있을 텐데 그걸 외우는 사람한텐 나중에 사탕 한 개! 오케이?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은 말이지 연애도 못하고 진실을 말할 수도 없어. 끊임없이 과거는 날조되고 개인적인 연애사도 감시당하거든. 역사를 변조하는 곳은 ‘진리국’이고, 사랑을 감시하고 억제하는 부서는 ‘애정국’이라니까? 자, 스포일러 그만하고 이젠 영화보자!"

교과서랑 연결되는 책이라니! 처음에는 시큰둥해하는 듯 하더니 영화가 돌아가자 몰입되는 아이들. 영화를 다보고 아이들은 활동지를 작성하고 소감을 이야기하고 자유롭게 토의가 이어졌다. 나의 교수학습목표가 달성되었음은 물론이다.

‘전체주의적 권력이 어떻게 인간의 자유와 사생활을 억압하며 사고와 기록을 지배하는지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

간혹 고3 교실에서도 당황스런 일은 일어난다. 하루는 교실에 들어갔더니 그날은 이런 영화가 돌아가고 있었다. 평범한 대형마트 직원 가정의 이야기. 아이들을 키우며 할인마트에 가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번 돈으로 어렵지만 화목하게 살아가는 우리 동네 아줌마 이야기. 서서히 영화는 2년만 아르바이트를 계속하면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그 비정규직 직원들을 잘라야 하는 이야기로 급선회한다. 비정규직과 회사의 갈등과 투쟁. 그 와중에 아주 야비하게 생겨서는 형편이 어려운 ‘우리들의’ 비정규직 동네 아줌마를 무자비하게 해고하고, 심지어 구타까지 서슴지 않는 무지막지한 社측과 그 행동대원들이 등장하는 이야기. 영화 <카트>의 한 대목이다.

그 영화뿐이 아니다. 영화들 중 ‘거대기업 대 노동자’라는 대결구도 만큼 영화를 감동적이고 선동적으로 만들 수 있는 소재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자극적이고 감성적인 영화들이 교실을 배회한다. <또 하나의 약속>을 보고 있노라면 거대한 공룡같은 기업 앞에 힘도 없이 나약한 한 개인의 처절함 탓에 보는 이들은 절망을 넘어 분노에 이르게 된다. 이와 유사한 다큐멘터리 영화인 <탐욕의 제국>도 마찬가지다. 영화 <탐욕의 제국>에 붙은 영문 제목은 ‘The Empire of Shame’이다. 수치스러운 제국이다. 인간의 가치 알기를 우습게 알며 온갖 산업재해로 내몬 기업은 덩치만 컸지 아주 수치스러운, 우리나라 기업들의 민낯이 그러하다는 공언이라도 하는 듯하다. 또 종편에서도 그런 아류가 방송되었다. 웹툰이 먼저 인기를 끌었고 그 원작을 토대로 만들었다는 <송곳>. 이러한 드라마에는 하나같이 ‘평범’하거나 턱없이 ‘미미’한 ‘약자’들이 등장해 지극히 인간적이고 당연한 권리를 주장했다는 이유만으로 밟히고 무너져야 하는 상황을 묘사한다. 그것을 지켜보는 보통 사람의 가슴에 울분을 불러일으키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심지어 전의를 느끼게 한다.

이 영화에 묘사된 것들이 모두 거짓은 아니겠지만 이 영화들이 결코 말해주지 않는 또 다른 진실이 있다. 우리의 노동문제가 과거 ‘전태일을 분신으로 몰고 갔던’ 참혹한 현장과는 정말 다르게 변모하고 진화하고 있으며, 과거 ‘공순이와 공돌이’들이 모여 있던 그 시절 구로공단이 아니기 때문에 그때의 문제가 아님을, 그래서 앞으로 노동문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야 함을 말해주어야 함에도 아무도 말하고 있지 않다. 저렇게 치열한 노동투쟁의 이면에는 사실 노사 갈등보다 더 심각한 거대 공룡인 귀족노조가 똬리를 틀고 있음을, 그래서 이것이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심각한 노동문제의 축임을 결코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산업재해로 고통당하는 이웃을 외면하는 기업은 책임을 져야 하고, 민사상 배상 혹은 형사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저러한 산업재해가 마치 모든 기업의 원죄인 듯 표현한다. 그래서 모든 대기업이 괴멸되고 노동자 천국이 되어야 옳은지 되묻고 싶다.

작년이었던가. 사회를 제대로 배우고 익히기도 전에 가슴만 달구어진 학생 하나가 ‘프롤레타리아 레볼루션’을 가슴에 달고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 시위를 하던 충격적 장면을 기억한다. 대체 그 아이의 가슴에 프롤레타리아여야 한다고, 혁명의 주체가 되라고 불을 지른 것은 누구란 말인가!

노동현장의 여건은 꾸준히 개선됐으며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욱 진화를 거듭할 것이다. 나아가 더 많은 기업들이 생기고 커짐으로써 더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래야 노동자들의 삶의 질도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줄 수 있게 된다. 우리의 노트북과 스마트 폰은 누가 만들어야 옳겠는가. 우리의 반도체는 누가 만들어야 하며 또 부품은 어디서 사와야 하겠는가. 모든 세상 이치가 그렇듯 빛과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가 다 함께 노력하여  꼭 필요한 부분부터 그 어둠의 영역을 좁히고 그 음영의 차이를 좁혀 나가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한국교육방송공사’만 달고 있으면 공신력이 보장되기라도 하는 줄 알고, 쉽게 구해지는 영상이면 아이들의 어리광에 선심을 써도 되는 줄 알고 무방비 상태인 학년말. 고약한 영상들이 독가스처럼 퍼지는 동안 교사들이 방관하고 방치하게 되면, 자칭 ‘어린 프롤레타리아’를 부르짖는 철부지만 양산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아직은 교실에서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단계에 따라 자율성을 배워야 하며 근면성과 열등감과 정체성을 배워야한다. 우리의 아이들을 거리로 내몬 것은 다 우리 교사 탓이다. 시청각에 예민한 우리 아이들의 오감만 만족시켜 주며 방치했다가는 모르는 사이에 전체주의의 홍위병이 되고 말 것을, 재미를 따라 반응하는 것에만 동조했다가는 건강한 사고와 영혼까지 오염되고 말 것을 우리 교사들은 망각해선 안 된다. 떠나고 남고 온갖 정리에 모두가 분주하고 정신없이 바쁜 학년말이지만 그럴수록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카트’와 ‘송곳’, ‘또 하나의 약속’을 보고 가슴이 뜨거워 질 때 우리 교사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교사라면 너나없이 뼈저리게 반성하고 반성문을 써야하지 않을까싶다.

조윤희(부산 금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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