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칼럼] 우리가 정말로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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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9.24 10:06:53
  • 최종수정 2019.09.2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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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도, 법무장관도 '황당한 내공' 만만찮은 나라
심성을 파괴하는 이 정권의 수명은 아직 2년이나 남아있다. 끔찍하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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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집에 사는 남녀가 아침에 함께 집을 나선다. 문 앞에서 둘은 사이좋게 하트 표시를 서로에게 날리고 각자 차에 올라탄다. 남편은 법무부로 출근하는 길이고 부인은 검찰청에 조사를 받으러 가는 길이다. 이런 황당한 광경을 우리는 며칠 안에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별로 놀랍지는 않다. 지난 한 달여 조국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생겨서 그렇다. 처음 사노맹 이력이 나왔을 때만 해도 단편 영화인 줄 알았다. 사모펀드, 웅동 학원 이야기가 나오면서 장편이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미니시리즈였다. 딸 문제, 아들 문제는 꼬리를 물며 이어졌고 장관 임명으로 시즌 1이 끝나자 이제 시즌 2로 들어갈 기세다. 참 대단한 사람이다. 국민을 상대로 누가 먼저 속이 터지는지 게임이라도 하는 것 같다. 해서 가끔 그의 내면이 궁금하다. 거짓말이 들통 날 때마다, 새로운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눈만 껌뻑거리는 그 속내가 인내로 버티는 것인지 정말 자기한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전자라면 정신승리의 금자탑이요 후자라면 새로운 도덕철학의 개막이다. 하긴 법자(법무부의 자식이란 뜻으로 수감된 범죄자를 가리키는 은어)가 되어야 할 사람이 태연하게 법무부 장관 짓을 하고 있으니 그 정도 내공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대단하기로는 대통령도 만만찮다. 개업식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보여주겠다고 하더니 정말로 그 약속을 성실히 지키는 중이다. 그게 공포물 아니면 스릴러물 둘 중 하나라고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블록버스터 급인지는 몰랐다(혹시 공포물과 스릴러물의 차이를 아시는지. 시작과 동시에 심장이 벌렁벌렁하면 공포물, 머리가 지끈지끈하면 스릴러물이다). 마차가 말을 끄는 희한한 이론으로 경제를 작살내더니 동맹에 흠집을 내지 못해 안달하다가 이제는 또 다른 동맹과 경제전쟁을 벌여가며 이걸 내년 총선까지 끌고 가겠다는 의지는 칼로 베어낼 듯 단호하다. 하긴 국민과의 약속 아닌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나라를 ‘기필코’ 구경시켜 주겠다고 하신. 대통령의 아내라는 여자도 대단한 걸로는 전례가 없다. 해외여행 못 가 죽은 귀신이 쓰였는지 경우를 안 가리고 남편을 따라 다닌다. 따라다니는 게 지겨웠는지 요새는 종종 앞서 걷기는 하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영부인이라는 자리를 무슨 직책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말한 대로 국민들도 얻은 게 있다. 그 어떤 일을 겪거나 들어도 절대 흔들리거나 붕괴되지 않을 강철 같은 멘탈이다. 이제는 강간범이 여성가족부 장관이 되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병역 비리 브로커가 국방부 장관이 되도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간첩이 국정원장이 되어도...(이건 잠시 멈칫)...뭐 담담할 것이다. 그런데 세상일이란 게 얻는 게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게 있다.

계절 바뀔 때마다 만나는 선배가 있다. 문화 예술에서부터 자연과학까지 얼마나 해박한지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다. 언제부터인가 이 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내 정치 얘기만 하고 사용하는 단어도 거칠고 험악하다(그러고 보니 눈빛과 표정도). 모네니 마네니 하는 이름 대신 정치인, 정치 평론가들의 이름만 줄줄이 나온다. 그것도 대부분 비판 일색이다. 누구는 뭐가 글러먹었고 누구는 어디가 잘못 됐으며 또 누구는 요새 정신을 차린 것 같다는 식이다. 화도 잘 낸다. 누가 약을 올려서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자기가 말하다가 자기가 화를 낸다. 이 비범한 능력에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동호회에서 이 분 닉네임이 ‘봄밤’이었다. 이제는 여름 태풍이나 겨울 칼바람으로 바꿔줘야 할 것 같다. 만나는 게 예전처럼 즐겁지 않다. 듣다 보면 숨이 막혀 내가 죽을 것 같다. 이야기 중에 놀란 게 하나 더 있다. 왼쪽으로 살짝 기운 동생과 명절 때마다 만나는 게 고역이라는데 노무현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이제는 생각이 다른 게 아니라 마치 적이 되어가는 느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선뜩했다. 베트남 전쟁 때 남 베트남이 꼭 이랬다. 부모와 자식이 갈라서고 형제와 자매가 등을 돌렸다. 나중에도 갈라진 틈은 메워지지 않았다. 틀어진 관계는 바르게 펴지지 않았다. 이 정권을 단죄할 때 내란죄와 분노 양산죄 그리고 가족 파괴죄를 꼭 붙여주어야 하는 이유다(법률적으로 없는 죄명이라면 만들어서라도).

시장경제를 파괴하고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동맹을 망가뜨리는 것은 눈에 보인다. 그래서 때마다, 사안마다 우리는 적절하게 분개한다. 그런데 그건 질병으로 치면 일종의 외상外傷같은 거다. 부러진 거면 붙이고 찢어진 거면 꿰매면 된다. 그러나 정말 위험한 병증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피폐하고 강퍅해 진 것은 다시 부드러워지기 힘들다. 정신적인 풍요로움, 느긋함, 여유 같은 것들은 한번 떠나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심성을 파괴하는 이 정권의 수명은 아직 2년이나 남아있다. 끔찍하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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