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리셉션 펜스-김영남 동석 계획했다 보이콧 직면
아베와 정상회담 정면충돌…日언론 외교결례 불만표명
펜스 "文 '대화만으로 北 퍼주기 없다' 보장" 직후 엇박자
통일부, "800만불 대북지원" 보도 부인…與는 대화론 강변

김여정·김영남을 필두로 한 북한 평창동계올림픽 고위급 대표단과의 접촉 과정에서 '북핵'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이 북측의 귀환 직전 "마음과 마음을 모아서 난관을 이겨나가자"고 말한 배경이 의문을 자아낸다.

사실상 목표로 잡은 북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과의 남북 정상회담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내는 국내 자유우파와 미국·일본 등을 "난관"으로 치부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11일 밤 김여정 일행이 북한으로 돌아가기 전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현송월이 주도한 삼지연관현악단 공연 관람 직후의 일이었다.

지난 8일 강원 강릉아트센터 공연에 이은 2차 공연이자 북측 대표단의 11일 귀환 전 마지막 일정으로, 공연은 오후 7시부터 시작돼 1시간 30여 분 진행됐으며 문 대통령은 공연 관람을 마친 시점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의사를 직접 전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은 문 대통령 내외에게 "꼭 평양에 와 달라"고 거듭 타진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앞서 공연 직전에는 김영남에게 "우리가 만난 것이 소중하다"면서 "이 만남의 불씨를 키워서 횃불이 될 수 있게 남북이 협력하자"고 '러브콜'을 보냈고 김영남은 "대통령과 함께 의견을 교환하고 자주 상봉할 수 있는 계기와 기회를 마련했으니 다시 만날 희망을 안고 돌아간다"고 화답했다.

이는 문 대통령이 방한해서도 '한·미·일 3국 대북 공조'를 연신 강조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는 잇단 외교 파열음을 내놓고 정작 '북한하고만 의기투합한 듯한 모양새'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북측 대표단에는 장관급, 미·일 대표단에 차관급 영접을 하면서 자유진영 우방국 홀대 조짐을 보인 데 이어서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국립중앙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을 마치고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남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손잡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국립중앙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을 마치고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남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손잡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청와대는 지난 9일 올림픽 개막식 사전 리셉션에서 '김영남과 테이블에 동석할 수 없다'는 미국 측 의사를 무시하고 좌석 배치를 짰다가, 펜스 부통령이 리셉션장(場)에 예정보다 39분 늦게 입장해 5분 만에 퇴장하는 '사실상 보이콧'에 직면했다. 방한 전부터 대북 '최대 압박'을 예고해 온 펜스 부통령은 전 세계 대표단과 악수를 나누면서도 김영남만은 그 대상에서 제외했다.

아베 총리가 리셉션장 입장 전 펜스 부통령과 동행한 것도 불만을 에둘러 표현한 외교적 제스쳐라는 해석이 나왔다. 같은날 리셉션에 앞서 강릉 용평 블리스힐스테이에서 가진 한·일 정상회담은 이미 아베 총리가 문 대통령에게 '국가간 약속인 2015년 위안부 합의 이행'과 '남북 대화에 있어 미소(微笑)외교 주의'를 당부했으나 일체 공감대를 이루지 못한 자리였기도 하다.

특히 10일 늦은 오후부터는 일본 언론들이 한일 정상회담 도중 아베 총리가 평창 올림픽 기간 직후 한미 연합군사훈련 재개를 요청하자, 문 대통령이 '내정간섭'으로 치부하고 불쾌감을 드러낸 사실을 전하며 11일까지 관련 보도를 전면에 부각했다. 외교 결례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와 함께 문 대통령에 대한 김정은의 방북 요청에 대해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10일 오노데라 이쓰노리 방위상), "미소외교에 눈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11일 고노 다로 외무상) 등 일본 정부의 경고성 언급을 일본 언론들은 타전했다. 

또 12일에는 김여정이 '국빈 대우'를 받았다며 "비핵화라는 원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요미우리 신문), 김여정은 "(북한) 체제 홍보책임자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산케이 신문)는 평가, "젊은층은 정치 주도에 싫증을 느껴 올림픽에 대해 관심이 낮다"는 식으로 국내의 '평양 올림픽' 비판과 궤를 같이하는 분석(마이니치 신문)을 각각 내놓기도 했다.

11일(미국 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전날 펜스 부통령이 에어포스2(부통령 전용기)로 귀국하던 중 인터뷰에서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 경감이나 다른 혜택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을 문 대통령으로부터 받았다"고 못박은 사실을 보도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분명한 조치를 취할 경우에만 북한에 양보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고도 펜스 부통령은 밝혀뒀다. 그는 이때 "북한이 대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대화할 것"이라고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도 일부 열어뒀지만 "최대 압박은 계속될 것이고 강화될 것"이라는 전제 아래여서 노선 변화는 감지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통일부가 이날 그동안 반년 가까이 시기를 저울질하던 '대북 인도적 지원 800만 불(약 86억7000만원)'을 "이달 안에 집행할 계획"이라고 밝혀 미국과의 엇박자를 키우는 모양새다. 미국은 이런 움직임에 이미 틸러슨 국무장관이 지난달 중순 "인도주의적 원조가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제공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다만 통일부는 당일 해명자료를 내 관련 보도에 뚜렷한 논박 없이 "국제기구 대북지원 사업에 대한 공여 시기는 결정된 바 없다"고 부인,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강원 강릉시 쇼트트랙경기장에서 만난 펜스 부통령에게 "북한이 예전과 달리 진지하게 나서고 있다"며 미북 대화를 간접 요청한 것으로도 알려져 공조 균열상은 역력해 보인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미북 대화 관련 "북한 대표단 접견 결과를 미국 측 실무 라인에 설명하고 있다"며 "필요하다면 정상 간 라인이 가동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대미 설득이 되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이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의미 있는 시발점"으로 규정하며 "나라 안팎의 이견과 우려도 있을 수 있지만 분명한 건 평화는 대화로부터 오는 것이고 평화를 원한다면 대화를 반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라고 맹목적인 대북 대화를 강변했다. 

문 대통령이 북측 대표단과 접촉 기회가 네 번이나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도 '북핵'을 일언반구도 않은 데 이어 비핵화 의지에 진정성을 의심받는 언급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북핵 위협에 가장 둔감하게 반응해 온 집권여당이 정작 '대화·평화'를 구실로 대북 저자세 견지에 가장 앞장서고 있다는 모순도 발견된다. 회의록에 따르면 당일 최고위에서 비핵화와 북핵 언급은 단 1회씩에 그쳤고 한미 연합훈련 재개에 관한 입장도 나오지 않았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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