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청구권,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대법원 판결은 조약해석 원칙 위배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국가가 조약에 의해 소멸시킬 수 없다"는 견해와는 무관한 사안
"3권 분립 원칙상 대법원 판결의 집행은 불가피 하다"는 견해의 오류
"과거사 반성 않는 일본에 대한 응징 차원에서 대일보복 취한다"는 견해의 문제점
청구권협정 위반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한일간 합의 도출하고, 모든 무역보복 상호 철회(package deal) 담판 추진해야

최원목 칼럼니스트

조약의 해석에 관한 확립된 원칙에 따르면, 전체적 문맥과 목적에 비춘 통상적 의미(문언)에 따르되, 조약 체결 시의 합의와 교섭기록 등 제반 사정과, 체결 이후 당사국의 실행을 보충적으로 고려해 해석이 내려져야 한다.

한일청구권협정 전문은 “양국 및 양국 국민의 재산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의도했음을 규정하고 있고, 제2조는 양 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음을 확인하고 있다.

또한 양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협정 서명일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해서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모든 청구권”이라는 문구의 통상적 의미상, 보상청구권만 포함하고 배상청구권은 포함하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은 너무 자의적 해석이다. 동 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을 보더라도, 위 문구는 “한국의 대일 청구 요강(소위 8개 항목)의 범위에 속하는 모든 청구”가 포함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8개 항목 중에는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이 포함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때, “기타 청구권”이라는 말이 “보상금”이라는 단어와 구분되어 사용되어 있는바, 논리적으로 볼 때 보상금 이외의 청구권이어야 하므로 배상금 청구권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상식적으로 볼 때도, 협정의 협상 과정에서 보상청구권만 협상대상으로 삼고, 배상청구권은 나중에 처리하기로 의도했다고 보는 것은 반쪽짜리 합의에 불과하므로, 양측이 이를 의도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즉, 협정 및 합의의사록에서 “모든 청구권”, (보상금 이외의) “기타 청구권”이라는 포괄적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청구권협정의 적용범위가 보상청구권에 한정되고 배상청구권은 제외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올바른 해석이 아니다. 협정 교섭기록을 봐도 그렇게 해석되고, 이미 그렇게 해석하면서 우리 정부가 일부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해준 바 있다. 조약체결 이후 당사국의 실행을 보더라도 이를 이미 인정한 셈이다.

그런데도 대법원이 이런 조약의 통상문언, 교섭기록, 당사국의 실행을 무시하고, 새로운 차원에서 조약을 해석해버렸다. 글로벌 한국의 국가기관의 기본책무인 조약의 해석원칙조차 따르지 않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현대적 판결이라 볼 수 없다. 그러면서도 대법원은 현대적 경향인 인권 보호의 최후 보루로서 사법부의 위치를 이야기 하고 있다. 보복의 악순환으로 더 많은 민생에 고통을 안겨주는 계기가 되어, 더 많은 인권이 희생당할 수 있는 측면까지 무시하고 있다.

설령 우리측의 배상청구권은 제외되었다는 주장이 타당하다 치더라도, 양측이 해석이 갈리는 경우에는 협정 3조가 적용된다. 이 조항에 따르면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간의 분쟁이 발생하면, 우선 외교경로를 통해 해결을 시도하되, 해결할 수 없으면 어느 일방체약국의 중재 요청에 따라 국제중재에 회부“되는 것이다. 양측이 30일 동안 중재위원 선임에 합의할 수 없으면 제3국이 선임하도록 위임해야 하는 절차도 의무적으로 진행된다. 지금처럼 우리측 해석만 고집하면서 국제중재 진행을 물리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협정의 절차규정마저 위반함을 의미한다.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국가가 조약에 의해 소멸시킬 수 없다”는 견해와는 무관한 사안

조약으로 개인의 사적권리를 소멸시키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즉, 한일청구권협정이라는 조약의 체결에도 불구하고 강제징용 대상자들의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고 살아있다. 그렇더라도 국제조약으로 개인의 사적인 권리를 소멸시킬 수는 없다는 새로운 사고체계와 본 사안과는 관련이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청구권협정에서 개인의 청구권을 소멸시킨 게 아니고, 일본에 대해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우리 정부가 배상금액을 모두 받았으니, 돈을 모두 건네준 상대방에게 청구할 수는 없도록 한 것이다. “내가 모두 받았고 내가 배상금을 대신 지불해주겠으니, 당신들에게 청구할 수는 없게 하겠다....”는 합의인 것이다. 국내법적 개념으로 치면, 일본측 배상채무를 한국 정부가 인수한 셈이다.

그래서 일본측이 주장하는 바는 그 살아있는 청구권의 행사 대상이 일본정부·기업이 아니고 한국 정부라는 것이다. 지금도 개인의 청구권은 살아 있다. 그걸 일본 정부·기업보고 부담하라고 주장하는데 사용하는 논리적 연결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의 해석이 정말로 맞는지 객관적으로 제3국 중재를 통해 확인하자는 것이다.

만일 우리 정부가 국제중재를 거부하면서 일본 정부로부터 수령한 금액을 다시 일본 정부에 돌려준 후, 강제징용의 불법성을 확인하면서 위자료를 포함한 배상 필요성을 만천하에 선언하면서 지금과 같은 주장을 펼친다면, 최소한의 논리적 설득력은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하는 경우에도 협정의 선 파기 문제, 이자 지급문제 등 복잡한 사안들이 따르게 된다.

“3권 분립 원칙상 대법원 판결의 집행은 불가피 하다”는 견해의 오류

사법부 독립·삼권분립은 국내법상의 개념으로 행정부의 행정권과 사법부의 사법권이 상호 분립·견제한다는 개념이다. 대법원 판결을 행정부가 번복하면 삼권분립에 반하겠지만, 국내 행정권의 상위주체이고 초국가 주체인 국제중재·국제재판에까지 회부할 수 없다는 개념이 아닌 것이다. UN체제 하에서는 국제질서 속에 각국의 국내법 질서가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도 UN에 가입함으로써 국가주권의 일부를 양도한 것이다.

국제법 질서상 국가행위의 국제법 합치성을 상호 합의에 의해 국제중재/국제재판으로 회부하여 해결하는 관행은 이미 확립된 것이고, 국가행위에는 사법부의 최종판결 및 집행행위도 포함된다. 수많은 국제법 판례들이 이를 확인하고 있으며, 미국 법원 판결도 국제사법재판소(ICJ)로 회부되어 그 국제법 합치성을 심사받은 사례가 여러건 있다.

더구나 한일간에는 이미 청구권협정이라는 국제조약을 체결하여 청구권협정의 해석에 관한 분쟁을 외교교섭이 실패하면 국제중재로 회부하기로 합의해놓은 바가 있다. 지금 상황은 누가보아도 외교교섭이 실패한 상황이며(우리 정부가 아직도 외교교섭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객관적이고 국제적으로 볼 때 타당성이 없는 주장에 불과), 따라서 국제중재로 회부하는 것은 조약상의 의무이다. 이미 국제중재로 가기로 국가간 합의한 상황이므로 국제중재절차를 밟는데 협조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우리 헌법을 보더라도 국제조약을 무시하면서 까지 형식적인 삼권분립을 준수하라는 말은 없다. 오히려 헌법 전문은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것을 선언하고 있고, 헌법에 의하여 체결 공포된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일청구권협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니는 것이어서 청구권협약을 위반하며 국제중재로 이행하길 거부하는 정부의 결정이 협약은 물론 국내법을 위반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대통령 또는 국무위원이 국내법을 위반하여 국가이익에 중대한 해악을 미치게 되면 헌법상 탄핵의 요건이 성립한다.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응징차원에서 대법원 판결을 집행하고 대일보복을 취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의 문제점

대일청구권 문제를 위안부 문제와 비교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위안부 문제는 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안이어서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후속적으로 우리가 일본측에 얼마든지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사안이다. 반면, 강제징용 문제는 청구권협정 교섭 및 체결당시 핵심이슈로 치열하게 논의되고 타결된 사항이다. 청구권협정 자체가 정말로 미래지향적으로 보아, 과거의 모든 청구문제는 모두 털어버리고 가자는 취지로 체결된 것이다. 그럼에도 두 문제를 싸잡아서 일본을 비난하며 지금도 일본에 대해 청구할 수 있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비이성적인 것이고 국제적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리 정책의 목표가 일본의 반성을 유도하고 일본을 응징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논리와 수단을 선택해야 한다. 우물안 개구리식 논리, 제 발등 찍기식 맞보복, 국제적 신뢰성만 저하시키는 정책방향으론 목표를 달성하기는커녕 국제사회의 외톨이가 되고, 보복으로 민생만 어려워진다.

더구나 청구권협정상의 3국 중재절차가 지금 정부가 미국에 대해 거듭 요구하고 있는 미국에 의한 중재와 다를 바 없다.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지금이라도 일본측이 주장하는 협정상의 절차를 수용하면 간단히 해결될 일을 가지고, 서로 전략물자 수출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무역보복을 서로 주고받는 식으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미국에 대해서 계속 중재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결국, 문제는 해결하지 않으면서 반일 반미 분위기를 증폭하고 있는 셈이다. 반일 반미 분위기가 ‘조국 사태’ 돌파와 진보진영 결집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 일시적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민의 미래까지 볼모로 잡고 있는 정부는 사이비 정부의 반열에 올려야 마땅하다.

그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청구권협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문제 해결 절차에 대한 한일간 합의를 도출함과 동시에 모든 무역보복 상호 철회 합의 간 패키지 딜(package deal) 담판을 추진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강제수용 대법원 판결 및 집행의 국제법적 합치성을 판단하기 위해 국제중재, 조정, 주선을 포함한 제3국·제3자에 의한 객관적 판정절차를 수용할 것을 선언하고, 판정이 내려질 때 까지 상호 보복 조치들을 잠정적으로 철회하여 대법원판결 이전의 양국관계로 복귀할 것을 일측에 제안해야 한다.

중재의 결과 한국측이 승소하면 일본측은 한국인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불하고, 상호 보복 조치 철회를 영구화하는데 양측이 합의해야 한다. 반면, 일본측이 승소하면, 우리 정부는 대법원 판결의 강제집행을 포기할 것에 상호 합의할 수 있다. 이 경우 우리 정부가 100%출연한 기금을 마련하여 피해자들에 대해 배상하되, 일본측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이와 병행하여 양국간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부문에서 악화된 관계 개선을 위해, 5개년 종합프로그램을 공동 기획하고 추진할 수 있다. 양측 각계각층 여론지도자를 중심으로 ‘관계개선위원회’를 구성하여 각종 협력프로그램의 활성화, 홍보작업을 병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양국간 우호친선협력협정(Treaty of Good Neighbourship and Friendly Cooperation)을 체결하여, 상호 소수민족 권리존중, 문화교류 강화, 젊은 세대 교류 증진 등에 초점을 둔 조항들을 규정하고 실행해나갈 수 있다.

1991과 1992년 독일 정부가 폴란드, 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라루스와 체결한 우호친선협력 협정(Polish-German Treaty of Good Neighbourship and Friendly Cooperation) 사례는 과거의 민족적 앙금의 해소노력은 사회·문화교류 증진이 뒷받침돼야 실효를 거둘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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