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근 칼럼] '부익부'가 '빈익빈'의 원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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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8.02.12 10:50:16
  • 최종수정 2018.02.12 17:06
  •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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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 빈곤의 원천’에 대한 이해 부족
‘빈익빈’과 ‘부익부’의 진실: rich getting richer, poor getting poorer
소득집중도 vs 세수집중도
에필로그: 차이를 인정하되 제도적 불공정을 줄여야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양극화’만큼 분노를 자아내고 사회분열을 초래하는 용어도 없다. 양극화는 말 그대로 중간이 없고 최상층과 최하층만 존재하는 기형적인 경제구조를 의미한다. 이대로라면 중산층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양극화는 ‘가공의 개념’이다. 그럼에도 좌파들은 이를 끊임없이 ‘선전도구화’ 했다. 정권 교체로 이번에는 좌파들이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뜨거운 주제일수록 냉철함을 유지해야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다.

● ‘부와 빈곤의 원천’에 대한 이해 부족

양극화란 용어가 횡행한 데에는 ‘부와 빈곤의 원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이다. 무엇보다 사회에 ‘고정된 양의 부’가 있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만약 고정된 그 무엇을 나눈다면 ‘영합의 상황’(zero sum game)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 더 가져가면 내 몫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경제에서 분배는 주어진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닌 ‘새로 만들어 진 것’을 나누는 것이다. GDP(국내총생산)는 말 그대로 일정기간 동안 국내에서 생산된 ‘부가가치’(value added)의 합을 의미한다. 부가가치는 ‘새로이 더해진’ 가치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부가 다른 사람들에게 빈곤을 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가 잘 돌아가면 모든 사람들의 살림형편이 개선된다. 그렇다면 부를 부자들에게서 빼앗아 그것을 재분배하려고 하지 말고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부의 창출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기회의 균등과 동등한 출발이 ‘결과의 평등’을 가져오지 않는다. 물리적 의미로서의 기회의 균등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자신의 외모와 지능(DNA)을 선택하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자기의지와 관계없이 ‘던져진 존재’(被投性)일 뿐이다. 미제스(Mises)는 이를, ‘자연의 공장문’을 나오는 순간 다시는 같은 것을 두 번 만들지 않겠다는 도장이 찍힌 것으로 은유했다. 누구든지 자신이 던져진 곳에서 출발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출발선 상에 서는 것이 ‘사회적 권리’로 인정되면” 정부는 무한대의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원초적 불평등은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통제 불가능하다. 따라서 경제적 평등이 ‘선이고 이상이라는 도식’을 깨야 한다. 

자유 시장은 “자신의 능력과 의지 그리고 운(luck)에 따라 성공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개인적 여러 차이(지능, 체력, 근로윤리, 정열)로 부의 크기는 달라진다. 그 크기의 차이에 의심의 눈초리를 줄 이유 없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경제적 불평등’은 ‘정치적 평등’이 빚어낸 자연스런 ‘부산물’일 수 있다. 경제적 불평등은 정치적 평등이라는 ‘이상’ 상태에서 발현된 자연스런 결과이다. 

시장에서 근면, 성실, 노력에 대한 대가(代價)가 지불된다고 생각하면 오산(誤算)이다. 시장은 교환의 장(場)일 뿐이다. 스티브 잡스의 노력과 성실함이 보통 사람의 몇 만배이기 때문에 그가 몇 만배 부자가 된 것은 아니다. 그가 성공한 것은 ‘시장기회’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경쟁자들보다 앞서 ‘아이폰’이라는 플랫폼 기반의 새로운 재화를 만들었고, 소비자들은 구매비용 이상의 주관적 가치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지갑을 기꺼이 열은 것이다. 그에게 부를 안긴 것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기회를 깨어있는 경각심(alertness)으로 식별해 냈기 때문이다. 그의 ‘기업가정신’이 부를 축적하게 한 것이다.   

그는 엄청난 부를 축적했지만 그의 성공은 다른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하지 않았다. ‘불평등은 심화되었지만’ 세상은 더욱 살기 좋은 곳이 되었고 기회는 많아졌다. 스티브 잡스의 성공은 새로운 직업 세계를 열었다. 수많은 ‘앱(App) 개발자’는 새로운 소득을 벌 수 있었다. 

● ‘빈익빈’과 ‘부익부’의 진실: rich getting richer, poor getting poorer
 
시기심(jealousy)은 인간의 본성이다. 시기심 때문에 상처를 받지만 한편으론 분발하기도 한다. 인간의 본성은 생산적인 방향으로 돌려져야 한다. 그러려면 현상을 적확(的確)하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빈익빈 부익부’는 인과관계(因果關係)가 아니며 상호독립적이다. 

최근 5년간(2012년~2017년) 글로벌 기업의 시가총액 변화는 지각변동 그 자체다. 2017년 9월 현재 ‘옥스퍼드 메트리카’의 조사에 따르면 시가총액 ‘글로벌 빅 5’는 모두 IT 기업이다. 이들 기업은 G5(gang of 5)로 불리운다. 시가총액 순서로 열거하면, 애플(시가총액 8,479억달러), 알파벳(6,554억달러), MS(5,688억달러), 페이스북(,5008억달러), 아마존(4,713억달러)이다. 6위부터 10위까지는 시가총액 순으로 버크셔헤서웨이(4,466억달러), 알리바바(4392억달러), 텐센트(3959억달러), 존슨&존슨(3519억달러), 엑슨모빌(3252억 달러)이다. 이중 존슨&존슨과 엑슨모빌을 제외하면 빅 10 중 8개가 IT 기업이다. 특기사항은 페이스북, 아마존은 2012년 이후 40계단 이상 상승했고, 알라바바, 텐센트는 기업공개(IPO)를 통해 단숨에 7위와 8위로 뛰어올랐다. G5의 시가총액 합계는 3조 달러에 이른다. GDP가 3조 달러를 넘는 국가는 4나라뿐이다. G5가 된 것은 ‘부자라 부자가 된 것’이 아니다. 삼성전자의 사가총액은 2017. 9월 현재 2,685억달러로 13위에 랭크 돼있다. 경쟁기업들이 몸을 사릴 때 2010년 전후의 대규모 투자가 오늘의 삼성전자를 만든 것이다.  

그러면 누가 패자(loser)인가. 2012년 100대 기업 가운데 28곳이 2017년 리스트에서 사라졌다. 석유와 가스회사 기업가치가 많이 하락했다. 미국 엑손모빌은 2위에서 8단계 하락해 10위에 랭크됐고, 시가총액도 5년 동안 15% 감소했다. 영국 BP는 68위로 추락했다. 폭스바겐, 미쓰비시, 혼다 역시 100위 밖으로 밀려났다. 서브프라임 발(發)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파산직전의 GM 시가총액은 할리데비슨보다 낮았다. 기계 장치 등 고정시설 투자가 시가총액에 반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은 고래(GM) 보다 작은 활어(할리)가 더 비싸게 값이 쳐진 것이다. 승자(winner) 때문에 패자(loser)가 생긴 것이 아니다. ‘변화의 물결’에 올라탔기 때문에 승자가 된 것이고 변화의 물결에 올라타지 못해 loser가 된 것이다. 기업의 세계에서 ‘빈익빈, 부익부’는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 소득집중도 vs 세수집중도 

개인 간의 소득불평등은 심화되는가. ‘피케티’류의 비판의 요지는 상위 1%, 10%의 소득계층의 소득점유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균등분배를 지향하는 피케티식의 해법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예컨대 3사람이 있는 데 산타 할아버지가 300만원을 기부했다고 치자. 일인당 100만원씩 나누면 공평(1/n 공평분배)하다. 산타선물이 아니라면, 개인이 창출한 부이기 때문에 균등 배분할 필요가 없다. ‘사회의 부’는 개인이 창출한 것을 사후적으로 모두 합산해 ‘사회적 부’라고 명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개인적 여러 차이로 개인 간 소득과 부의 크기는 달라지며. 그 크기의 차이에 의심의 눈초리를 줄 이유 없다. 그 차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특별한 방어논리를 동원할 필요도 없다. 

특정 계층의 소득집중도와 세수집중도를 동시에 보아야 균형을 잡을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의 상위 10% 소득계층의 세수집중도를 보면 2015년 현재 한국의 세수집중도는 87%로 미국(69.8%, 2013년) 영국(59.8%) 카나다(53.8%) 보다 높다. 한국의 소득세 집중도가 높은 것은 소득세 면세자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2015년 기준 한국의 근로소득자 면세 비중은 46.5%로 미국(32.5%) 캐나다(17.8%) 일본(15.5%) 영국(2.3%)보다 훨씬 높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따라 간 것이다. 이것이 경제정의다. 

관련해 2가지 점에 유의해야 한다. 2017년 세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과표 5억 이상의 최고소득세율 구간이 신설되고 소득세율도 40%에서 42%로 인상되었다. 지방세 10%를 합하면 5억 이상 소득에 적용되는 최고세율은 46.2%이다. ‘밀튼 프리드만’은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생산된 결과물의 사회화’ 간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설파하고 있다. 국가가 소득의 절반을 가져간다면, 생산수단의 절반을 사회화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상위 10% 소득계층의 구성원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농경시대에도 3대 가는 부자 없다고 했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어느 사회, 어느 시기라도 상 상위 10%를 구획할 수는 있지만 구성원은 늘 변한다. ‘누가 부자가 돼서 누가 가난해 진다’는 주장은 예단일 뿐이다.  

● 에필로그: 차이를 인정하되 제도적 불공정을 줄여야 

최상위 계층의 소득비중은 통계에 따라 달리 계측된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지난해 2월 ‘2015년까지의 최상위 소득 비중’ 보고서에서 국민계정 통계를 바탕으로 “임금 최상위 1% 집단이 총임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9년 7.4%에서 2015년 8.2%로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소득불평등이 최근까지 심화되고 있다는 결론이었다. 분모(전체 소득)는 한국은행 국민계정, 분자(상위 1% 임금)는 국세청 국세통계연보 자료를 기준으로 분석한 것이다. 분자와 분모 모두 국민계정이 아닌 국세청 소득세 자료를 쓰면 정반대 결과가 나온다. 상위 1%의 근로소득 비중은 2010년 7.44%에서 2016년 7.13%로 감소했다. 상위 10% 소득 비중 역시 같은 기간 33.88%에서 32.01%로 하락했다. 대신 하위 50%의 근로소득의 비중은 16.1%에서 19%로 증가했다.(“한은과 통계청의 소득집중도 차이”, 중앙일보, 2018.1.19자 한애란기자) 끝으로 최근 경제적 독립을 위한 일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일인가구는 그렇지 않았을 때에 비해 가구 소득분배를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된다.

시장경제는 ‘자신의 삶은 자신이 책임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노령, 질병, 사고 등으로 노동력을 상실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각자도생’의 삶을 살아야 한다. 따라서 불평등의 원천으로서의 ‘차이’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제도적 불공정’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적 평등이 ‘도덕적 이상’인 이유는 그것이 경제적 번영과 경제적 역동성의 기초이며 ‘공정성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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