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공재 칼럼] 불안은 행동을 잠식한다
[최공재 칼럼] 불안은 행동을 잠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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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9.10 10:05:06
  • 최종수정 2019.09.10 20:53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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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공재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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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링링’이 남긴 것!

내무부장관(아내)님과 산행을 시작했다. 사람에 치이는 산보다는 (불)완전한 혼자가 되는 바닷속을 더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별로 내키지 않는 동행이었지만 아내의 간곡한 명령으로 간만에 집 뒷산인 ‘안산에 오르게 됐다.

오르는 산길 곳곳에 나무들이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인해 부러져 있거나 뽑혀져 있어 위태로운 모습이다. 덕분에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아 필자는 좋았는데, 아내는 산행 내내 불안한 듯 필자 옆에 꼭 붙어 산을 올랐다.

그러면서 산이 무서운 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한다. 그런 아내에게 아무 생각없이 한마디를 내뱉았다.

“뭐가 무서워? 팽목항 바닷속으로 다이빙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구만.”

겁에 질린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 무심코 던진 말이었지만 말을 던지고 나니 가슴 한 켠이 허해진다.

누구는 하루 세끼 따뜻한 쌀밥에 갈비 뜯으면서 ‘정의’만 외치다가 수 억원씩 받아먹고 있는데, 시신이라도 건져보겠다며 죽을 거 뻔히 알면서도 들어간 다이버들의 죽음과 함께 조류에 휩쓸려 아무도 없는 바다 한 가운데서 배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불안해하는 아내를 다독이며 산행을 계속하던 중 링링으로 인해 부러진 세 그루의 나무가 보인다.

연리지처럼 뿌리가 붙은 세 그루의 나무가 마치 바나나 껍질 벗겨지듯 부러져 있었다.

그 부러진 나무를 보면서 문득 지금 우파에게 필요한 것은 ‘링링’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력한 한방이 필요한, 말 그대로 일타삼피(一打三皮)의 절대무공!

내게 문재인-조국보다 더 무서운 존재.

하지만, 하루가 지나지 않아 그 절대무공이 시전된 곳은 슬프게도 아군이 아닌 적진이었다.

조국 임명. 당연히 될 줄 알았음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우파의 공격이 살아나는 듯해서 내심 기대를 했었지만 그게 필자에겐 가장 큰 착각이었다. 그래, 아직 우파에겐 그들의 무한질주를 막을 내공이 없었다는 것을 잊었다.

자신들이 가진 내공과는 상관없이 조국의 임명에 정신승리하는 우파진영을 보면서 굳이 필자까지 가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리고, 솔직히 그 속보를 접하면서 떠오른 인물은 조국도, 문재인도 아닌 ‘김정숙’이었다는 것을 솔직히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코링크로 대변되는 사모펀드 보도를 접했을 때도 필자가 떠올린 인물은 누구도 아닌 ‘김정숙’이었다. 필자가 왜 그 푼수떼기 아줌마를 떠올렸는지 이해할 사람은 아마 단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오로지 정치적 시선에만 함몰되어 있고, 문화에 대해선 관심도 없는 우파진영에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시킬지 고민하다가 ‘돈 문제’로 풀어보고자 한다.

사모펀드가 향후 조국의 대선자금 확보 차원이라고 말들을 한다. 마치 엄청난 자금이 될 것처럼 말을 하는데, 만약 그것보다 더 안전하고 더 큰 판돈이 걸린 것이 있다면? 그 자금은 사모펀드처럼 기록에 남는 것도 아니고 흔적도 없으며 흔히 말하는 ‘현찰박치기’의 추적 불가능한 자금이라면?

문화산업시장 중에서 가장 큰 시장은 출판이나 영화가 아닌 패션과 함께 ‘미술시장’이다. 미술시장은 그 시장의 규모가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폐쇄적이다 보니 정치자금이나 비자금 확보 용도로 많이 사용되고 있고, 그것은 영화의 단골소재로 자주 사용될 정도다.

그런 미술시장이 문재인 정부 이후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미술시장은 규모의 특성상 거대자본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유명작가의 작품 하나가 수천 억대에 이르기도 한다.

가장 비싼 거래로 기록된 폴 세잔의 ‘카드 플레이어’는 2011년 카타르 왕가가 한화 2,880억 정도에 구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 한 작품으로……

이 외에도 프란시스 베이컨이나 잭슨 폴락, 피카소 등 한 작품당 1천억대를 호가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수두룩하다.

경매나 공식거래를 통하는 가격이 이 정도라면 개인간 거래는 얼마나 될지 가늠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미술시장은 거대자본이나 큰 손들의 개입이 없이는 불가능한 시장을 형성하게 되는데, 한국에서는 그 역할을 삼성이 해 왔었다.

세계적인 미술관인 ‘리움’은 삼성 홍라희씨가 운영하는 미술관이었고, 고가의 작품들을 많이 구입하기도 하고 한국의 작가들을 발굴해 세계적인 작가로 키우기도 하는 등 한국 미술시장을 선도하던 곳이었다.

그런 한국 미술시장의 선두주자인 홍라희씨가 박근혜 탄핵사태에 물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고나서 곧바로 리움관장직에서 사퇴를 한다. 한국미술시장은 곧바로 충격에 빠지고 술렁였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등장 이후 다른 큰 손이 한국 미술시장을 장악했다. 미술시장에선 그 큰손이 ‘김정숙’이라는 말은 소문이 아니라 사실로 굳어져 있고, 문준용을 비롯해 손혜원 등 미술계와 연관된 징후들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그 중 단연 압권은 올해 6월에 중국에서 열린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과의 대화’라는 한중문화교류전이었다.

[사진 출처-주중한국문화원]
[사진 출처-주중한국문화원]

이 전시회가 이상한 것은 추사 김정희의 가짜 작품들이 대거 전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 유인택 예술의 전당 대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을 비롯해 장하성 주중대사 등이 중국측과 함께 했다는 것은 한중합작 내지는 그 이상의 뭔가가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 사건(?)은 미디어펜을 비롯해 몇몇 언론에서 다루었지만 우파내부에서는 회자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사건의 흔적 속에서 김정숙의 이름이 보이기도 한다. 한국 미술시장을 키웠던 리움미술관의 홍라희 사퇴 이후 벌어진 한국 미술시장의 촌극이다.

자, 그럼 다시 계산해보자.

그게 얼마든 기록으로 남아 확인되는 사모펀드와 얼마인지 확인 불가능하고, 현찰 박치기로 추적도 불가능하고, 가짜 작품으로 사기쳐 엄청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미술 시장을 비교했을 때 어떤 곳이 비자금 확보에 더 매력적일까? 그리고 미술시장 한군데만 해도 이런데 거기에 출판과 영화, 음악 시장까지 싸그리 장악해 돈을 돌린다면 그 금액이 과연 조국의 사모펀드만도 못할까, 넘을까?

그래서 필자는 사모펀드 대선자금 운운할 때 ‘김정숙’이 생각난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보다, 조국보다, 김정숙보다 더 무서운 존재는 따로 있다.

그저 정치에만 함몰되어 주변을 보지 못하는 우파 내부가 그래서 더 무섭다. 정치라도 제대로 잘 알면 모를까, 에효~

불안한 영혼은 행동을 잠식한다.

조국의 임명발표 이후 필자는 그래서 아주 간만에 극도의 무기력감을 느꼈다. 원래 약속했던 칼럼 게재일을 늦출 정도로 할 말을 잃었는데, 그 저변에는 이제 문화계는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MB정부 때만해도 98% 좌파장악이라며 그나마 퍼센테이지라도 따졌지만, 지금 현재는 그냥 몇 명 남았냐고 물어보라는 자조 섞인 반론을 하는 현실에서 문재인정부에 새롭게 등장한 新문화권력의 만행이 눈에 선해 보였기 때문이다.

대중적 파괴력을 가진 문화산업 시장을 장악한 그들과의 싸움은 이제 끝났다고 볼 수 있다는 자괴감에 빠진 필자는 이 글을 쓰느니 차라리 이 판을 떠나고 싶을 정도로 절망에 빠졌다.

20년 가까이 문화전쟁을 벌이면서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공포감이 내 의지를 초토화시켰다. 이 기분은 얼마전 재판의 항소심에서 벌금 1,500만원을 받고 나와 그 거대한 권력 앞에 초라한 내 모습을 느꼈던 그 연장선상이었다.

일개 딴따라 주제에 뭘 하겠냐는 자학부터 난생 처음으로 아버지를 잠시 원망해 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확실히 필자에겐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보여주는 데에는 완벽히 성공했다. 그런 생각에 이르자 산행에서 핀잔을 줬던 아내에게 미안해졌다. 하나의 현상에 대한 크기를 떠나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은 분명 그 이상의 현상에 대한 두려움과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마도 지금 조국 사태를 바라보는 우파의 심정이 다들 그러할 것이다. 욕설도, 싸우다 죽자는 외침도, 저러다 자멸할 것이라는 정신승리도 이젠 아무 의미없음을 우파도 마음 속으로는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벗어나기 위해 한번도 해보지 않은 행동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세상을 막기 위해 한번도 해보지 않은 행동을 해야 할 시간을 놓친 자들의 자업자득이다.

그렇게 불안해진 우파의 영혼은 결국 행동을 잠식할 것이다.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직접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우파가 보여주는 문화전쟁에 대한 무지는 그것을 필자에게 확신시켜줄 뿐이다.

그래道, 삶은 계속된다.

필자가 사랑하는 조카가 가장 무서워하는 말이 있는데, ‘그래도’라는 말이다.조카와 대화를 하다가 항상 마지막에 필자가 하는 말이, “그래도 해야지!”라거나 “그래도 가야지.”였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작은 아빠가 힘들어할 때 힘내라며 만들어준 목걸이 펜던트에 ‘그래도’라는 글자를 새겨줄 정도다. 그것은 문화운동을 할 때도 후배들에게 자주 하던 말이다.

아무 것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뭔가 일을 벌일 때 그걸 왜, 어떻게 하려고 일을 벌이냐는 질문에 늘 내가 하던 대답은 ‘그래도 해야지!”였다.

‘내’가 할 수밖에 없고, ‘내’가 해야만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영웅도, 리더도 부재한 혼돈의 시기에 결국은 그렇게 내가 행동해야만 하는 시대. 그렇기에 오늘의 무기력함을 딛고 어떻게든 일어나야만 한다.

영웅이나 리더를 기다리지 말자. 박제가 되어버린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은 이제 없다. 슬피 운다고, 세상을 저주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광화문에서 트럼프에게 경례한다고 달라지는 것 역시 없다.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친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 자유를 물려주기 위해 싸운 사람들이 있었노라고 말할 수 있도록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 움직여야만 한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고, ‘그래도’ 아직 목숨은 붙어 있으니…!

모든 개인들의 건투를 빈다.

최공재 객원 칼럼니스트(영화감독 / (주)작당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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