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잔치 하는 동안 한국 경제는 불황과 고물가가 병존하는 아르헨티나형으로 변해갈 것이다.

김정호 객원 칼럼니스트

물가가 떨어진다고 야단들이다. 8월 소비자물가지수가 1년 전에 비해 0.04%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물가가 떨어진 것은 1965년 소비자물가지수 작성 이후 처음이다.

물가가 떨어지면 소비자들에는 좋다. 같은 돈으로 더 많은 것을 살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언론이 D(Deflation)의 공포라며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일본형 디플레의 악순환 고리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디플레이션의 악순환 고리의 시작은 소비를 미루는 일에서 시작된다. 물가가 계속 떨어지니까 값이 더 떨어질 때가지 소비를 뒤로 미루게 된다. 그 결과 현재의 소비가 줄어들게 되고 그것은 더욱 큰 불황을 초래한다. 임금이 낮아져 소득도 덩달아 낮아지고 소비도 줄어든다. 가격은 더욱 떨어진다. 디플레이션 불황은 이렇게 계속 이어질 수 있다. 이런 것이 디플레의 순환고리다. 즉 가격이 낮아져서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결국 소득도 줄고 생활수준 자체가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은 디플레이션 악순환을 겪은지 오래 되었다. 1990년대 버블 붕괴라는 현상이 나타난 이후 줄곧 물가는 낮았고 소득도 낮아졌다. 일본 근로자의 1인당 명목임금은 1997년 360만엔에서 2014년 313만엔으로 12.9%나 줄었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1990년대 1.5%에서 2000년대 0.6%로 주저 앉았다.

 

한국도 당장의 겉모습은 일본을 닮아 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낮아지다가 급기야 마이너스 대로 진입했다. 불황이 매우 심해져서 성장률은 2% 밑으로 떨어질 것 같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나 정부의 재정 팽창 정책에 대한 요구가 커진다. 일본 아베정부가 정확히 그 정책을 써왔다. 일본의 기준금리는 마이너스 0.1% 이다. 돈을 빌려 가면 중앙은행이 이자를 붙여주는 격이다. 정부는 매년 막대한 재정적자를 내며 돈을 풀어낸다. 그렇게라도 해서 디플레이션의 함정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도이지만 수십년간 디플레이션은 계속되고 있다. 실업률이 줄었을 뿐 경제성장은 0%를 겨우 면할 정도에 머물러 있다. 앞서 말했듯이 임금은 오히려 줄었다. 새로운 산업도 생겨나지 않고 있다. 디플레이션의 함정은 돈을 풀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일본의 사례가 잘 말해준다.

문재인 정부도 아베정부처럼 하고 싶어 몸부림이 났다. 당장 2020년 예산 513조원은 사상최대의 수퍼예산이다. 문재인은 국가부채의 묵시적 한계였던 GDP의 40%선마저도 무너뜨릴 태세다. 이런 무모한 정책들이 디플레 탈출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나빠진 경기가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과는 달리 돈을 마구 풀면 경제가 위험한 지경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한국 경제가 일본과 결정적으로 다른 측면이다. 일본은 돈을 풀어도 물가가 오르지 않아 왔다. 하지만 한국은 풀린 통화가 물가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아르헨티나에 가깝다고 본다. 일본의 물가상승률은 거의 0% 수준이지만 아르헨티나의 물가상승률은 무려 55%에 달한다(2019년 7월 현재). 이 나라는 일본보다도 더 심각한 불황을 겪고 있다. 2018년 GDP 성장률은 –2.5%이다. 아르헨티나는 지독한 불황과 동시에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것이다.

국내 물가의 움직임은 외국 화폐에 대한 환율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외화에 대한 자국화폐의 가치가 높아지면 국내 물가는 하방압력을 받는다. 자국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면 국내 물가는 상승 압력을 받기 마련이다.

다음의 그림을 보자. 달러에 대한 엔화의 환율은 1년전 110원에서 올해 9월 106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즉 엔화의 가치는 높아졌다. 그만큼 일본 국내 물가가 낮아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아르헨티나 페소의 미국달러에 대한 환율은 1년 전 40페소에서 올해 9월 60페소 수준으로 올랐다. 페소의 가치가 그만큼 하락한 것이다. 국내 물가가 거의 같은 비율로 오른 것이 자연스럽다. 실제로도 같은 기간 아르헨티나의 물가는 50% 이상 올랐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의 물가수준이 낮아진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물가가 떨어진다는 것은 원화의 가치가 높아졌다는 말인데 환율에 반영된 원화의 가치는 떨어졌기 때문이다.

달러에 대한 한국의 원화 환율은 1년 전 1118에서 2019년 9월 현재 1200원대로 높아졌다. 원화의 가치가 낮아진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 물가가 높아지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실제로는 마이너스 상태로 진입했다. 이런 현상은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일시적 현상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한국 경제는 조만간 물가 상승 국면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실들을 고려했을 때 우리나라는 일본과 같은 불황대책을 쓰면 안된다. 즉 재정적자를 늘리고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돈을 마구 풀어내는 정책은 한국 경제를 인플레이션에 빠뜨리게 될 것이다. 통화의 남발과 재정적자는 일본과 미국처럼 자국 통화가 안전자산으로 인정받는 나라만의 누릴 수 있는 특권인 셈이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오래지 않아 아르헨티나처럼 고율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헬조선’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불황대책은 정공법일 수밖에 없다. 구조조정을 통해 사양산업들을 신속하게 정리하고 새로운 산업이 등장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 그래야 불황에서 탈출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되는 것이 없다. 구조조정은 노조의 저항에 발목이 잡혀 있고 새로운 산업은 기득권 노동자들에 의해 싹조차 틔우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이뤄지는 것은 일본형 재정팽창 정책뿐이다. 그렇게 돈 잔치를 하는 동안 한국 경제는 불황과 고물가가 병존하는 아르헨티나형으로 변해갈 것이다. 어찌해야 한국 경제의 자살을 막을 수 있을까.

김정호 객원 칼럼니스트(김정호의 경제TV 대표, 전 연세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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