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연 칼럼] 대학입시, 무엇이 우리를 분노케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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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9.04 09:21:07
  • 최종수정 2019.09.04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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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무시험 대학전형정책, 그 결과는 무엇인가?
제도를 거짓으로 악용한 사람을 놔두고 제도 탓을 하는 것은 좌파들의 습관적 남 탓
현 대입제도를 권력으로 악용한 당사자를 방치하면 교육은 무너져
평등, 공정, 정의의 대학입시 방법은 학력고사 시대로 돌아가는 것
황승연 객원 칼럼니스트

‘대입제도 전반을 재검토하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고나서, 교육부는 "대입 제도 개편을 위한 논의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교육부는 학생부 종합전형을 “국민이 왜 믿지 못하는 것인지, 청년들이 본인들의 기회가 박탈된다고 느끼는 부분이 무엇인지 검토 중이었다"고 했다. 병주고 약주는 경우이다. 고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한다며 비교육적인 것만 골라서 정책으로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검토 중이었다고 한다.

대학입학시험 합격에 뒷받침이 되는 핵심요소는 ‘할아버지의 재력’‘과 ’어머니의 정보력‘ 그리고 ’아버지의 무관심‘이라는 말이 회자된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재력이란 원래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많아 돈 걱정 없는 가정에서 자랐다는 뜻이다. 모든 것에 돈은 기본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세상을 어느 정도 경험한 철이 든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자녀가 비록 대학입시에 성공하지 못해도 사회에 나와서 만회할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고, 또 노력으로 쌓은 실력만이 살아가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실력이 아닌 요령과 꼼수로 대학을 가면 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별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인생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자수성가형의 아버지들도 많다. 그래서 ’아이에게 뭔 과외니 논술이니 경시대회니 입시컨설팅이니 하는 쓸데없는 것들을 시키냐‘고 말한다면, 이는 새마을운동하던 시절에나 통할,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는 아버지의 얘기여서, 자녀의 입시 전략을 수행하는데 방해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대학 진학에 도움이 전혀 안되는 아버지의 간섭이 진학지도전문가의 비싼 지도에 제동을 걸기 때문에, 차라리 관심을 끊어주면 자녀의 입시에 더 도움이 된다는 그런 의미로 돌아다니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대학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아버지들이 자녀들의 입시문제에 관심을 갖고 여기에 가세하여 권력과 교수라는 지위를 이용하면 자녀들의 대학입시에서 실질적으로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드러나자, 그런 아버지가 되지 못한 혹은 그런 아버지를 두지 못한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다. 어머니의 정보력이란, 어느 과외 선생님이 어느 과목의 점수를 얼마나 올려줄 수 있고, 어떤 선생님이 입시 지도를 잘하고, 어디를 찾아가야 스펙을 쌓을 수 있고, 어느 학교에 어떤 전형이 새로이 생겼고, 그 전형의 특징과 추세가 어떤지, 그런 정보를 꿰고 있는 사람들이나 입시전문가들을 많이 알고 있는 어머니의 치맛바람을 뜻한다. 자녀를 대학에 보낸 후 전문적인 입시 컨설턴트로 나선 어머니들도 있다한다. 이것이 학교 교육 정상화를 목표로 한 지난 20년간의 교육개혁의 결과이다.

경쟁이 없으면 인간은 퇴보하고, 경쟁 없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 산업화 세력이 만든 모든 것들을 부정해야하고 평등지향의 그들만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치명적 자만’이 교육을 망치고 젊은이들을 좌절에서 헤매게 한다. 경쟁 없는 사회는 없다. 위선일 뿐이다. 경쟁의 한 방법인 시험은, 누구나 수긍하는 절차와 방법에 따르고 정당한 노력의 결과가 반영된다면 발전의 좋은 계기가 된다. 대학입시는 젊은이들에게 늘 민감하고 중요한 주제이다. 늘 공부와 시험 준비를 반복하는 생활 속에서, 노력 끝에 얻는 보람은 시험의 과정이 납득할만해야 얻어질 수 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학교 교육을 정상화 한다는 좌파정부의 오만은, 이전의 교육은 입시 위주의 파행적이고 비정상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이러한 오만은 아마추어적인 입시정책을 낳았다. 우리 사회를 학벌위주에서 실력위주의 사회로 전환한다는 그들의 의도는 좋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계획에는 항상 ‘기대치 않은 결과(the unanticipated consequences)‘가 나타나게 마련이라, 그들의 바람은 불행히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입시가 실력위주보다는 개인의 노력이 아닌 자녀의 학벌을 위한 부모의 노력과 조부모까지 배경으로 등장하는, 마치 조선시대 과거시험과 같은 시험으로 변하고 말았다. 언제부터 대학 입시가 이렇게 난장판이 되었나?

경쟁 교육은 ‘비정상’이라 단정하는 오만함이 가져온 아마추어 교육개혁의 결과

‘입시지옥의 해소’와 ‘인간중심의 교육개혁’이라는 정책은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소위 5.31개혁이라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당시의 대학 입시 개혁방안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인성과 창의성을 기르는 방향으로 운영되도록 다양한 대학입학 방법을 자리 잡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국공립대학의 국영수 중심의 대학별 시험을 없애고, 사립대학은 학생 선발 방법을 자율화하였다. 또 이를 위해 ‘종합생활기록부‘라는 것을 만들어서 학생 개개인의 다양한 적성과 능력 그리고 학교생활을 종합적으로 기록해서, 학생들의 능력을 다양한 기준으로 총체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하고, 능력사회 정착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목표였다. 이렇게 시작된 교육개혁은 1998년 김대중 정부 첫 교육부 장관에 취임한 이해찬 장관에 의해 수정, 보완되고 그리고 과감하게 실천되었다. 특히 고교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개혁으로 특기 하나만 있으면 대학에 갈 수 있도록 대학전형을 무시험으로 바꾼다고 하고,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 월말고사, 학력고사, 모의고사 등을 전면 폐지하였다. 이렇게 바뀐 제도와 문화 속에서 공부하고 대학입시를 준비하였던 학생들을 우리는 단군 이래 최저학력이라는 ’이해찬세대‘라고 부른다.

이때 만들어 진 것이 대학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제도인데, ’교육개혁추진우수대학 재정지원제도’라는 것도 그러한 제도 중에 하나였다. 대학들이 정부의 교육개혁에 발맞추어 개혁안을 만들어 내면 이를 평가하여 재정지원을 한다는 것이고, 이 재정지원 정책은 지금까지 크게 확대되어 계속되고 있다. 대학이 정부에 완전히 종속되는 계기가 된 것은 이 때부터였다. 최근에 교육부는 대교협(한국대학교육협의회)을 통해 2022년도 대입전형 기본사항을 발표했는데, 이를 560억 규모의 국고사업인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과 연계한다고 하였다. 그 내용으로 수시는 70% 이내에서 학생부로, 정시는 수능위주로 치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재정지원으로 대학들의 입학 전형의 전부를 교육부가 완전히 통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교육현장의 교수들에 의한 학생선발에 대한 고민이나 논의는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다. 오로지 지시와 실천과 평가와 재정지원이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설령 그들의 의도는 좋았다고 하더라도 현장에서 벗어난 정책이라 늘 실패하기 마련이다.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 한다는 각종 대학입시 방법들

정부의 방침에 따라 입시에서 다양한 기준으로 평가를 한다는 것은, 공부가 아닌 개성과 소질을 살린다는 많은 입학 전형방법을 만들어 내는 것이고, 그 전형방법의 숫자가 평가의 기준이 되었다. 각 대학마다 학생들의 폭넓은 적성과 특별한 재능을 수용하기 위한 여러 가지 특별전형은 어느 한 학교가 시행하면 다른 학교들도 본받아 따라하곤 했다. 평가에서 가능하면 더 많은 입학전형방법을 실시하는 학교들이 교육개혁평가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때 만들어진 전형으로는, 재외국민과 외국인 특별전형, 농어촌학생 특별전형, 특기자 특별전형, 독립유공자 자손 특별전형, 효행자 및 선행자 특별전형, 학교장 추천 특별전형, 국제화 추진 전형, 자기소개서 특별전형, 해외입양자 특별전형, 아동복지시설 출신 특별전형, 사회헌신봉사 공무원 자녀 특별전형, 전문자격증 소지자 특별전형, 발명가 특별전형 등등.

당연히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독립유공자 손자녀에게 입학 기회를 제공한다 하였으니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보다 할아버지나 증조할아버지의 항일운동 흔적을 찾아보게 된다. 후에 이 독립유공자 손자녀 특별전형을 국가유공자 자녀에 까지 확대적용하자 많은 문제들이 생기게 되었다. 효행상이나 선행상을 받으면 특별전형에 지원할 수 있는 제도는 처음에는 장관상 이상을 받은 학생이 대상이었으나 해당자가 적어 제도가 유명무실해지자 광역시장, 도지사의 효행상 수상자까지 확대 적용하게 되었다. 아무 배경이 없는 평범한 학생이 선생님의 눈에 띄어서 도지사가 수여하는 효행상이나 선행상을 받게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이렇게 되니 효행상이나 선행상을 받는 것을 목표로 행동하게 되고, 여기에 작전이 개입하게 되고 이런 것을 기획하는 입시 컨설팅이 관여하게 된다.

특기자 전형에서의 문제점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문학, 어학, 과학, 미술, 음악, 무용, 서예, 바둑, 도예, 연기, 공연, 체육, 취재 등의 실로 다양한 분야에서 특기자를 선발하였는데, 이 때문에 없었던 수많은 경시대회가 만들어지고, 경시대회 전문가들은 대회의 권위를 더 높이기 위해서 외국에서 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낯설지 않은 일이 되기도 하였다. 결국에 돈이 좌우하게 되는 대학입학제도로 바뀌게 된 것이다. 농어촌학생 특별전형을 위해 농촌으로 이사를 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게 마련이다. 우리나라는 도시화 비율이 높아서 농촌과 도시의 구분 기준이 특별히 있지 않다. 면소재지에 살면서 도매 할인매장의 사업자의 자녀도 주소지 때문에 농촌학생 특별전형에 지원을 할 수 있었다. 국제화추진 전형에 사용되는 토익성적을 잘 받기 위해 외국생활을 해본 학생이 유리함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특별히 문제가 더 되는 것은 자기소개서 전형인데, 전문가가 잘 써주는 자기소개서를 보고 사실여부를 가리는 것이 면접이라면, 이것이 올바른 학생선발 방법이라 할 수 있는가? 정직하면 손해를 보는 일이 있지 않겠는가? 발명가 특별전형이라는 것은 특허나 실용신안을 출원하여 취득한 자나 학생발명전시회에서 입상한자를 대상으로 하였는데, 이를 위해 자녀들을 특허를 받게 한다거나 실용신안을 출원하게 하는 것이, 열심히 노력하여 수능점수를 올리는 것보다 쉬운 일이어서, 정보력이 뛰어나다면 노려볼만한 전형방법이 되었다. 자녀를 과학영재로 만들기 위해 많은 교수들이 전문 학술지에 기고하는 자신의 논문에 자녀의 이름을 공저자로 올리거나 혹은 공동명의로 특허를 출원하는 것이 유행인 적이 있었다.

이것이 문제가 되자 논문이나 저서에 미성년자나 고교생 공동저자 여부를 가리는 일이 대대적으로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러다보니 저자의 약력에 신분이 인턴이나 고등학교 재학 중인 사실을 숨기는 일도 발생하였다. 어느 대학에서 열린 문학 특기생을 뽑는 문예백일장에서, 그 대학 교수의 친구가 원장이라고 소문난 국어학원의 선생님이 평소에 연습해보라고 준 시의 제목들 중 하나가 실제로 백일장에서 제목으로 제시되자, 투서가 접수되고 대학에서 진상조사위원회가 열리는 등 문제가 되기도 했다. 특기자 특별전형을 위해 동구권 국가나 유럽 어느 국가에서 열린 대회에 수상 실적을 제출하는 학생들을 보고, 교수들은 ‘이 상은 1억 정도 들었겠다, 이 상은 3억 짜리다’라고 평가한다고 한다. 권위와 역사를 자랑하는 대회들도 있지만 이름뿐인 대회들도 얼마든지 있고,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그 많은 대회를 다 알 수도, 파악할 수도 없는 맹점을 이용하여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충분히 이른 시기부터 입시 컨설팅을 하는 전문가들과 함께 대학입시를 준비한다면 좀 더 쉽게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시대가, 또 이를 위해 요령과 반칙을 체계적으로 연구해야하는 시대가 김대중 정부 교육개혁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본다.

논술시험이 필요한가?

대학입시에 논술시험이 등장한 것도 오래 전의 일이다. 지금은 대학마다 별도의 논술특별전형이라는 것도 있다. 논술시험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어 전 수험생들이 논술시험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필자는 전국의 대학교수 29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2007년의 일이었다.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44.5%는 논술시험이 공정하고 일관된 기준으로 채점되지 않는다고 대답했고, 26.9%의 응답자만 채점이 공정하다고 했다. 비슷한 비율로 논술시험이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적합한 방법이 아니라 답변했다. 멋있고 고상한 문제를 만들려는 각 대학들의 노력으로 논술시험의 너무 높은 난이도도 심각한 문제였다. 교수들도 쉽게 답하지 못할 논술시험에 채점은 더 큰 문제였다. 논술시험이 교육에서 순기능을 갖고 있는 면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 조사는 수능과 내신이 모두 등급제라서 변별력이 없는데, 채점자의 주관이 많이 들어가는 논술점수의 1, 2점이 입시에 당락을 결정하게 되는 모순을 지적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합격시키고 탈락시키는 변별력만을 위해 논술시험을 치르게 되면, 교육의 목적은 사라지고 출제하고 채점하는 과정만 남게 된다. 차라리 ‘논술 채점을 등급제로 하거나 혹은 논술로 정원의 2-3배를 선발해놓고 그 학생들 중에서 1, 2점의 차이가 의미가 있는 객관적인 점수인 수능이나 내신 점수로 최종합격자를 뽑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했다. 필자가 이 조사 결과를 발표한 후 언론에서 큰 관심을 보이자, 교육부는 학교에 심하게 항의했는지 학교의 보직자는 필자에게 ’왜 그러한 조사를 학교와 상의 없이 발표했냐’고 질책했다. 당시 학교가 논술채점에 관한 교육부 감사를 받을지 모른다는 얘기가 돌아다녔다. 필자는 다시는 이러한 조사를 할 수가 없었다.

논술시험은 취업을 못한 운동권출신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만든 제도라는 떠도는 얘기가 있었다. 당시에 많은 운동권 출신들이 입시학원에서 강의하는 일로 그들의 생계를 이어갔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들을 위해 논술시험을 강화했다는 얘기들도 있었다. 당시에 새롭게 등장한 논술 시장은 입시시장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면서 호황을 누렸다. 언론에서 매일 등장하는 논술에 대한 기사를 볼 때,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논술을 위해 별도의 과외를 받아야하는지 고민하며, 정보도 돈도 없어 불안해했을 수험생들의 혼란과 박탈감을 생각하면서 교수로서 자괴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에서 독서교육도 제대로 안되는데, 웬 사치스러운 논술시험인가’라는 생각과 논술로 겁박하여 동화책도 논술동화책이라고 해서 팔아먹고 논술 문학전집이라고 광고하며 새로운 시장을 연 발빠른 상인들의 순발력에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교육목표와 현장 사이에 괴리가 생기면 많은 모순이 생기고 그로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이 생긴다.

입시시장은 요령과 반칙이 난무하는 거대한 난장

대학입시는 고교교육의 전부를 규정한다. 교육부장관이 바뀔 때마다 입시정책에 손을 대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혼란에 빠진다. 공부를 잘해서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사라져 버렸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으로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그런 시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학생 혼자서 이해하거나 감당하지 못할 그런 수백, 수천가지 입시방법이 존재하면서, 교육현장의 교사도 학부모도 다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해서, 입시 방법들을 분석하고 연구하여 학생들의 대학진학 방법을 다자인해주는 입시컨설팅이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 큰 호황을 누리고 있다. 대학입시와 관련된 문제는 젊은이들에게 매우 민감한 문제이다. 특히 입시의 방법이 복잡하고 공정하지 못하다고 여겨지면 상대적 박탈감이 커서 제도 탓, 남 탓을 하게 되고 세상을 원망하게 되며 자신의 부족함에 대하여 받아들이지 않고, 반성하지 않게 된다.

공부가 아닌 다른 어떤 하나만이라도 잘하면 대학을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만든 입시제도가 많은 학생들을 거짓과 위선과 좌절에 빠지게 만들었다. 지금 대학생들은 열심히 교과서와 참고서 갖고 공부만 열심히 하던 그런 시대를 알지 못한다. 4시간 잠자면 합격하고 5시간 잠자면 불합격한다는 4당5락이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따라서 공부를 잘하는 동료들을 존중하고 인정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인정이 안된다. 대학입학시험이 공부보다는 요령을 익혀야하는 것으로 바뀌다보니, 고등학교 교육이 정상적일 리가 없다. 특별히 매년 바뀌는 대학입시의 요령을 잘 알고 있어서 이를 통해 직업적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면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는 전형방법들이 너무 많다. 전문가가 아니면 용어해석도 힘들다. 복잡한 입시방법들을 들여다보는 부모들도 죄책감부터 앞서 주눅이 들고 만다. “다른 부모들은 이것들을 다 알고 자녀들 입시를 준비시킨다는 말이지?“하고 말이다. 그러니 전문가를 찾게 된다. 소위 요령과 반칙을 설계해주는 ‘입시컨설턴트’, ‘진로진학전문가‘라는 사람들이다. 입시컨설팅은 대단히 큰 시장이다.

대학들도 입시를 좋은 수입원으로 생각한다. 입시와 관련된 파생시장이 많이 열린다. 입시 박람회도 있다. 심지어 수시박람회와 정시박람회가 따로 열린다. 신문에도 입시 지면이 따로 꾸며지고, 신문사에 입시 전문 기자가 따로 있고, 신문사들이 경쟁적으로 논술시장에 뛰어들어 논술책자를 팔기도 한다. 자녀를 대학을 보내는 모든 부모들은 이렇게 입시와 관련된 시장에 인질이 되어 있다.

자신의 노력만으로 준비하고 댓가를 얻을 수 있는 단순한 시험으로 가야

대학들은 여러 가지 입시 방법을 시도하다 부조리함을 지적받게 되면 또 다른 새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한다. 한 때 문학 특기자 전형을 위해 대학교에서 백일장 대회를 열어 입상자들을 합격시켰는데 ‘심사가 공정한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자 자기 학교의 백일장 입상자는 입시전형에서 제외하게 되고 타학교 백일장 입상자만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백일장을 열어 입상자들을 자기 학교에서 뽑지 못하고 타학교를 입학시키는 기회를 열어준다는 넌센스에 직면한 대부분의 대학들이 백일장을 없애게 되었다.

입시 방법들이 매년 바뀐다. 바뀐 방법들을 다 아는 것이 불가능하고 다 알 수도 없다. 입시 방법에 공정성에 시비가 걸리면 수정한다. 수정된 입시 방법에 입시전문가들은 대책을 세워 대응한다. 그러면 제도는 또 도망간다. 또 새로운 대책이 생긴다. 그러다보니 입시방법은 누더기가 되고 말았다. 이 제도를 늘 돈벌이에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보는 교수들도 적지 않다.

옛날에는 예비고사라는 것이 있었고 그 후에는 학력고사가 있었고 그 후에 수능시험으로 바뀌었다. 예비고사, 학력고사 시절에는 성적만 좋으면 대학에 갈 수 있었다. 이렇게 배출된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세계 11-12위의 경제대국으로 만드는데 함께 해왔다. 당시는 적어도 학생들이 학교에 잠자러 온다는 지금과 같은 교실은 아니었다. 자신의 땀과 노력으로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살았다. 그럼에도 과거를 부정하려고만 하는 정치인들의 오만과 그 잘난 도덕적 자만심 때문에 교육현장은 ‘인간중심 교육’이라는 위선과 거짓이 난무하는 쓰레기통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모두들 이를 두고 ‘고교 교육의 정상화’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는 그 비정상의 전형을 보고 있는데도 말이다.

황승연 객원 칼럼니스트(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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