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연 도중 촛불 모아 만든 일명 '평화의 비둘기' 연출
일부 관중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위때 등장한 전기촛불 등 들고 호응
文대통령, 외빈 참석한 사전 리셉션 환영사에서도 '촛불찬양'
IOC 헌장 "어떤 종류의 시위나 정치적 종교적 인종차별적 선전도 금지"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문화공연 중 촛불을 든 사람들이 무대 중앙에 모여 일명 '평화의 비둘기'를 연출했다.(사진=연합뉴스)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문화공연 중 촛불을 든 사람들이 무대 중앙에 모여 일명 '평화의 비둘기'를 연출했다.(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집권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촛불 혁명'을 강조한 가운데 결국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개막식에서도 '촛불을 모아 만든 비둘기 형상'이 등장했다. 일부 관중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시위가 한창일 때 등장한 종이컵 촛불·전기 촛불을 들고 호응하는 모습까지 나타났다. 한국에서 '촛불'은 정치적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어 전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에서 정치적 논리를 배제하고 정치적 의사 표현을 자제하라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규정을 위반했다는 논란이 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9일 오후 8시부터 강원도 평창올림픽플라자 내 개·폐회식장에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열렸다. 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의 환영 연설이 있은 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의 요청을 받아 문재인 대통령이 "제 23회 동계올림픽 대회인 평창동계올림픽의 개회를 선언합니다"라고  말했다. 본부석엔 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북한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정은 여동생' 인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내외,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한정 중국공산당 상무위원 등이 자리에 있었다.

한국 봅슬레이 간판 원윤종과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북한 수비수 황충금이 공동기수를 맡아 이른바 '한반도기(旗)'를 들고 입장했다. 반면 독일 선수단은 독일 국기와 개최국인 한국의 태극기를 나란히 손에 들고 입장했다.

이날 개막식 공연은 'Peace in motion'(행동하는 평화)라는 주제 아래 한국 전통문화 정신인 '조화'와 현대문화 특성인 '융합'을 바탕으로 총 3000여명의 출연진이 연출했다.

대부분 공연은 '평화'의 메시지를 강조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가수 전인권, 이은미, 하현우, 안지영이 무대에 올라 존 레논(John Lennon)의 '이매진(Imagine)'을 부르는 가운데 일명 '평화의 비둘기'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관중석 등에서 촛불을 들고 나온 사람들이 비둘기 모양으로 공연장 중앙 바닥에 촛불을 늘어놓으면서, 비둘기 형상이 된 것이다. 이 공연에는 9개국 27인의 거리 음악가가 함께했다. 관중석의 참석자들이 공연 분위기에 맞춰 촛불을 흔드는 모습도 그대로 연출됐다.

사진=MBC 캡처 및 연합뉴스
사진=MBC 캡처 및 연합뉴스

앞서 여타 공연에서도 '평화 메시지'가 반복된 탓에, 흡사 반전(反戰)시위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 국민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현 정권의 집권과 무관하지 않은 촛불시위와 유사한 모습마저 나타나면서 노골적인 정치색을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계 방송과 관련 보도를 접한 소셜미디어 등에서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무리한 탄핵에 거부감을 가진 시민들이 대거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개막식에 앞서 각국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사전 리셉션에서도 '촛불'이란 말이 등장했다. 문 대통령은 리셉션 환영사 도입부에서 "세계와 마찬가지로 한국은 지금 공정한 사회를 꿈꾼다"며 "우리는 지난겨울,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위해 촛불을 들었고 이번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공정함에 대해 다시 성찰하게 됐다"고 거듭 촛불을 '찬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강원도 용평 블리스힐스테이에서 열린 올림픽 개회식 리셉션에서 환영사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도 "촛불" 언급으로 사실상 집권 당위성을 강조했다.(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강원도 용평 블리스힐스테이에서 열린 올림픽 개회식 리셉션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도 "촛불" 언급으로 사실상 집권 당위성을 강조했다.(사진=연합뉴스)

한편 IOC는 올림픽 헌장 50조 등에서 '어떤 종류의 시위나 정치적 종교적, 또는 인종차별적 선전도 금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스포츠와 선수의 정치적 상업적 남용을 반대한다는 규정도 있어 이번 개막식에서의 '촛불'은 논란의 소지가 적지 않다.

최근만 해도 지난 3일 남자 아이스하키 한국과 카자흐스탄 평가전에서 주목받은 한국 대표팀 골리 맷 달튼 선수의 헬맷 디자인이 정치색 논란으로 교체된 바 있다.

왼쪽에 푸른색, 오른쪽에 붉은색을 넣어 태극마크를 표현하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그림을 새겼다. '임전무퇴'의 정신을 담아 특별 제작된 것이었으나, 이를 두고 IOC가 달튼의 행동에 정치적 의사가 들어가 있다고 판단함에 따라 교체됐다.

당시 아이스하키협회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면서도 규정에 대해서는 철저한 IOC와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헬멧을 교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6년 전인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박종우가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플래카드를 들었다가 IOC로부터 시상식에서 동메달 수여를 보류당했으며, 경기가 끝난 뒤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못 하는 불이익을 받은 적이 있다.

이달 25일까지 17일간 열리는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은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 이래 우리나라에서 30년 만에 다시 열리는 올림픽이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윤희성 기자 uniflow84@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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