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증거의 법정 아니었다, 선입견과 억측의 법정이었다. 반과학이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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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8.30 11:05:25
  • 최종수정 2019.08.30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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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의 증거들만 청취되었을 가능성, 공동모의가 없는 공동정범 말이 되나
판사들조차 기록 다 못읽었을 것, 변호사조차 못구하는 사회, 로펌 들 다 도망갔다
대법관들도 머릿속에서 울리는 선입견과 악측에 지배당했다
묵시적 청탁은 청탁이 없었다는 반증, 그것으로 처벌에 이를 수 있나
세월호, 태블릿 피시 등 재판과정서 사라진 허구의 사다리들
탄핵 근거였던 강요죄가 부정되었다, 헌재는 무엇으로 탄핵했나
인민 재판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
정규재 대표 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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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은 거대한 허구와 상상이 빚어낸 거짓의 산(山)이었다. 어제 대법원의 최종 판결까지 2년 5개월을 끌어온 재판은 유죄를 구성하기 위한 재판이었을 뿐 범죄의 귀납적 진실을 찾아가는 그런 ‘과학의 법정’, ‘증거의 법정’, ‘진실의 법정’이 아니었다.

하나의 범죄에 대한 고발은 다음 범죄로 넘어가는 사다리 구실에 불과했고 다음 범죄를 추궁하는 혼돈의 와중에, 거기까지 왔던 사다리들은 슬그머니 치워졌다. 진실은 사라졌다.

검찰과 법원은 무죄의 증거는 배제하거나 도외시했고 유죄의 증거만으로 범죄를 재구성했다. 재판은 졸속이었고, 마녀를 화형시키라는 거대한 인민의 함성은 대중과 선동기관들과 국회와 정치가 조작해낸 것들이었다. 공포의 마왕이 지배하는 가운데 변호사들조차 꽁무니를 빼고 달아났다.

피고는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고, 인민재판의 사악한 기운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압도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무법의 국가요, 반(反)과학 사회이며, 전직 대통령의 인권조차 무력화되는 철저한 절망의 국가, 집단 최면의 국가라는 것이 박근혜 재판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결론이다.

대법원, 헌법재판소를 짓밟았다

1. 사라진 파면 결정문

2년 전인 2017년 3월10일. 탄핵 재판부는 준엄하게 그들의 결정문을 읽었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그들은 헌법 제 7조를 끌어와서 거창하게 말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사익에 눈이 멀어 미르, k스포츠 재단에 다수의 기업들이 출연할 것을 강요하고--”

헌법재판소는 그런 주문을 읽은 다음 실로 생소하게도 “대통령 파면!”이라는 충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어제 대법원의 최종적 판결이 있었다.

“기업들에 대한 재단출연 강요는 무죄!”로 결정이 났다. 대법관 1명이 마치 죽여야 할 것을 살려준다는 표정으로 “강요는 유죄!”라는 별개 의견을 발표했을 뿐이었다.

대법원의 결정은 헌법재판소 결정의 골격을 부정하는 판결이었다. 지금 아무도 기억조차 하지 않는 그런 엄청난 범죄는 그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헌법재판부는 바로 이 대목을 핵심적인 파면 결정 이유라는 점을 분명히 했었다. 그들은 “대통령이 기업의 사적(私的) 자치와 재산권을 침해했다”고 짐짓 준엄한 얼굴을 하고 재판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엔가 마술처럼 사라졌다. 헌재는 이 문제에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 지금 어느 학교엔가 가서 석좌 교수라는 이름으로 법학을 강의를 하고 있다는 당시의 재판관들을 답해야 한다.

마술적 장치, 그리고 사라진--

2. 태블릿 PC

태블릿 PC는 온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최순실은 그 태블릿 PC로 드레스덴 연설문을 수정하지도, 심지어 읽어보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재판에서 드러났다. 그러나 그 치열하게 숨 가빴던 재판에 방청석에 와있던 그 어느 기자도 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아니 태블릿 PC라는 단어 자체가 보도 금기어였다.

누구라도 태블릿 PC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반(反)인민이며, 반탄핵이며, 정치적 반대진영에 속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종의 금지어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태블릿 PC 역시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태블릿 PC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나면 역시 연기처럼 사라졌다. 마술이 일어났다.

3. 세월호

세월호 역시 그런 가공의 관념이었고 상징어였다. 세월호는 노란 리본이 말해주듯이 하나의 시대의 상징물이요 그 언어다.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조작된 풍문들은 지금도 광화문을 지배하고 있다. 그것은 군중을 거친 분노로 이끌어 대통령을 탄핵 재판으로까지 끌고 가는데 기여하자마자, 적어도 법정에서는 어느새 완벽하게 사라진 단어가 되었다. 검찰도 법원도 “그것 없이도 유죄”라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은 지금 그런 재구성된 적개심과 증오심으로 가득찬, 무정형의 사악함이 이끄는 대로 좀비처럼 이끌려 다니는 군중의 나라가 되고 말았다. 그 사악함이 대법원마저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제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태블릿 PC나 세월호는 다음 단계로 건너가기 위한 마술가의 장치물이었다. 헌법재판소니 대법원이니 검찰이니 특검이니 하는 그럴듯한 근대적 장치들은 마술사가 피워내는 그림자의 드러남과 사라짐을 가리는 위장막의 장치들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 뒤에서 진짜 마술이 일어났던 것이다.

선입견이 법정을 지배했다

1. 공동정범

이제 사실상 소위 뇌물 문제만 남았다. 우리는 어제 ‘공동정범’이라는 단어를 들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공동정범의 형법적 성격에 대해 공동실행 의지 따위의 장황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나 최순실 박근혜 사이에 어떤 공동정범적 모의가 있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공동정범이면서 공동의 범죄모의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된다는 것인가. 뇌물의 공동정범이 일반적 상식에 부합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뿐이었다. 일반적 상식이란 그러나 김명수의 머리 속에 존재하는 선입견을 말하는 것일 뿐이었다.

상식은 이미 진리가를 획득한 보편성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지만, 김명수의 대법원은 뇌물 공동정범의 어떤 증거도 제출하지 않았다. 그들은 말하지 않았다. 김명수의 두뇌 속에는 그런 가정과 억측, 그리고 선입견과 예단이 존재할 뿐이었다. 이는 검찰조차 그랬다.

검찰은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말했다. 그러나 차고 넘치는 것은 언론보도였고, 언론보도는 돌고 도는, 그래서 자기가 자기의 증거를 제출하는 재귀적 자기 확신 밖에 없었다. 대법원은 증거로 판단하지 않았고 예단으로 판단했다. 예단과 선입견은 증명되어야할 것이었지만, 그들은 귀신은 귀신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므로 존재한다는 식의 원시적, 주술적 주장을 되풀이 했다.

2. 사라진 말 3마리

말들은 뇌물로 선언되었다. 이 항목에서 재판관들은 9대4로 갈렸다. 김명수의 최고 심복으로 알려진 모 재판관도 “뇌물 아니다” 편에 섰다. 이재용 측은 처음에는 뇌물이 대통령 측의 ‘강요’ 때문에 불가피하게 바치게 된, 그래서 자신은 피해자라는 전략을 취했다. 그러나 1심에서 무참하게 무너졌다. 이재용은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2심에서 변호사를 교체하고 피해자 논리를 접고서야 말을 두고 벌어졌던 허둥지둥한 회사 측 실무자들의 행동의 전모가 드러났다. 소유권 논란이 벌어졌고 결국 “뇌물 아니다”로 결정 났던 것을, 어제 대법원이 3마리 모두 뇌물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김명수는 사용자와 주인의 구분을 고의로 어지럽혔다. 그는 처분권을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았다. 사용권을 처분권과 혼동하는 것처럼 보였고, 최순실이 그 모든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뇌물!”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증거를 모두 청취하지 않았다. 고등법원까지의 과정에서 증거들은 최순실 이재용에게 불리하게 재구성되었다. 예를 들어 2015년 당시 정유라가 임신 출산의 과정이었기 때문에 말을 탈 수 없었다는 등의 증거들은 처음부터 배제되었다. 말을 탈 사람이 모두 6명이었다는 증언도 전혀 법정에서 들을 수 없었다. 재벌 기업들의 일반적인 스포츠 지원의 관례들과 이 사건 말이 어떻게 같고 다른 지도 검토되지 않았다. 오로지 박근혜와 이재용의 유죄를 만들어 내기 위한 재판이었다.

3. 묵시적 청탁 

법정은 유무죄를 가리는 과정이다. 그것은 유죄의 증거를 모으는 과정만이 아니라, 무죄의 증거를 모으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유죄의 증거와 무죄의 증거들이 논리적 틀 속에서 ‘귀납논리의 전쟁’의 벌이는 프로세스인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이재용 재판은 유죄의 증거만 채집하는 과정으로 전락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묵시적 청탁이라는 신조어였다.

“그놈을 죽여 버릴까요?” 하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면, 이는 분명 무언의 지시다. 그러나 뇌물에 대한 무언의 합의나 모의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은 부인되었다.

대법원은 무엇으로 이재용이 묵시적으로 대통령에게 승계를 청탁하였다고 말하는 것일까? 역시 답은 “상식에 비추어--”였다. 이재용이 말한 적이 없고, 대통령이 그 사실을 질의한 적도 없고, 중개자(안종범)가 혹시 논의가 있을 수도 있는 해당기업의 현안을 정리한 메모조차 증거능력이 없다면, 재판부는 무엇으로 무언적 청탁의 내용을 추리할 수 있었는가?

역시 언론보도로 형성된 선입견이다. 권력과 재벌이 만나 무언가의 은밀한 기회를 엿보고, 특혜로 정의될 수밖에 없는 밀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소위 싸구려 법률가들이 만들어 내는 자기들 머리 속에서 만들어진, 속삭이는 귀신들인 것이다.

그렇다. 그들의 머리 속에 귀신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귀신의 속삭임을 너무도 확실하게 청취하고 있다. 칩 비슷한 무엇인가가 내 머리 속에 심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대법관들은 대체 무엇으로 묵시적 청탁을 추정하고 단정하였는가.

4. 그들이 말하는 상식

‘김명수와 그들’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 검찰은 그러지 않아도 삼성바이오 상장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탈법적 시도였다는 예단 아래 온갖 형태의 증거들을 강제 채집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껏 수십 회의 압수수색과, 아마도 수백명에 이르는 사람들에 대한 출국금지 등의 자유제한 조치를 취하고도 여태 증거의 일단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선후를 바꾸어 계산하는 억지조차도 아귀가 맞는 가설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대법원은 그 사건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인가. 대법관들의 머릿속에 울리고 있는 그 속삭임은 머릿속에 심어진 어떤 칩들이 내린 명령어들인가. 법정이 유죄로 처벌하려면 명확하게 진리가 드러나야 한다. 어렴풋이 그럴 것 같다는 심정만으로 처벌 할 수 없다는 것은 근대 법정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러나 이재용은 그런 추정에 따라 어제 추가로 ‘50억원 뇌물죄’로 선언되었다.

5. 판사조차 기록을 다 읽었을까? 이건 재판도 아니었어!

대통령은 재판을 포기 혹은 거부하였다. 놀랍게도 대통령은 변호사를 구할 수가 없었다. 국가 기관들이 총력전을 펴면서 대통령의 유죄 입증에 매달리고 있는 터여서 대한민국의 내로라는 로펌들은 모두 종적을 감추고 도망을 쳤다. 공포가 지배했다!

대통령의 순수함도 지금 보면 실패의 요소였다. 대중들에게 호소하고, 재판비용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대통령은 거부했다. 그 분은 한국의 법정을 신뢰하였다. 그러나 아니었다. 로펌은 물론, 이름깨나 있는 변호사들은 모두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었다. 재판 경험도 일천한 개인 변호사가 유일한 변호사였다.

그리고 6개월간 1주일에 4차례나 재판은 내달렸다. 이건 재판도 아니라는 피고의 호소는 묵살되었다. 6개월을 버티면 된다는 변호인의 전략은 검찰이 국정원 특활비를 새로 걸고 구속기간을 연장하면서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변호인도 순진하기 짝이 없거나, 능력의 부족이거나, 자원의 부족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재판과 이재용 부회장은 동일한 혐의였다. 김명수 대법원은 박근혜 대통령 뇌물은 별도로 분리해 판결했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분리된 다음, 이재용 뇌물 사건과 병합해 처리했어야 한다는 것으로 나아갔어야 했다. 두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분리되었다. 그것부터가 잘못된 것이었다. 판사들조차 저쪽 방에서 무슨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다. 모두가 각자 정해진 결론으로 치달아갔던 것이다.

전직 대통령의 재판도 이런 지경이었다. 대한민국 사법제도의 부끄러운 실상이다. 무려 18개 혐의에 대한 속도전으로 내달리는 재판을 감당하는 것은 한 두 개 로펌을 전부 동원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단언컨대 담당 판사조차 증거기록, 사건기록, 증언기록들을 모두 읽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결코 민주주의 재판이라고 말할 수 없는, 그것은 인민재판이었다.

정규재 대표 겸 주필 jkj@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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