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을 평화로 포장한 유화론자들의 '실패의 교훈'
처칠 "호랑이 입에 머리를 집어넣고 어떻게 협상하겠는가"
자유가 전체주의·공산주의보다 많은 기회·혜택 제공
리더의 지력과 신념, 국민 의지가 뒷받침 해줘야

황성욱 변호사, 법무법인 에이치스 대표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

최근 입소문을 타고 있는 영화가 있다. 조라이트 감독의 다키스트 아워(the darkest hour)가 그것. 1940년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전격전으로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를 침공한 뒤, 프랑스-벨기에 국경의 프랑스 방어선을 돌파했다. 유럽대륙으로 파병된 영국군은 이에 밀려 프랑스군과 함께 프랑스 북부인 덩케르크 항구에 고립되었다. 영국정부는 고립된 30여만 명의 장병을 구해야만 했다.

당시 아서 네빌 체임벌린(Arthur Neville Chamberlain) 수상은 히틀러와의 굴욕적인 평화협상의 치명적 결과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져야했고 조지 6세(George VI)는 그 후임으로 윈스턴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 Churchill)을 전시내각 수상으로 임명한다. 처칠이 수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체임벌린은 그의 수하 핼리팩스(Edward Wood, 1st Earl of Halifax) 외무부장관과 함께 끊임없이 처칠에게 히틀러와의 협상을 요구한다.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이 낡은 정치적 구호는 이미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도 있었다.

처칠은 단호히 거부한다. 그는 굴욕을 평화로 포장한 유화론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호랑이 입에 머리를 집어넣고 어떻게 호랑이와 협상을 하겠는가?(You cannot reason with a Tiger when you're head is in it's mouth.)”

윈스턴 처칠은 대국민연설을 통해 국민을 독려하고 작전을 실행한다. 일명 다이나모 작전(Operation Dynamo). 이 작전의 핵심은 민간어선을 동원하여 병사들을 영국본토로 철수시키는 것이었다. 1940년 5월26일부터 같은 해 6월 4일까지 총 9일동안 860척의 민간어선이 영국공군과 협력하여 병사들을 후퇴시켰고 33만명이 넘는 병사들이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었다. 영국 국민들은 ‘덩케르크 정신’의 국민적 저항의지로 전쟁을 치렀고 미국과 함께 결국 전체주의자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필자가 주목한 것은 처칠의 신념과 의지다. 국민들을 현혹하는 달콤한 말로 그를 공격하는 끊임없는 정적들 앞에서 그는 어떻게 국민들의 신뢰를 얻고 국민들에게 목숨을 희생하라고 요구할 수 있었을까.

처칠은 상류집안 출신이다. 고급교육을 받았기에 처칠은 결국은 문장가로 자랄 수 있었고(서민집안이었으면 그는 그렇게 자라지 못했을 것이 확실하다) 먹고 사는 걱정은 이미 벗어났기에 어릴 때부터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일찍 배울 기회가 있었다. 자유체제가 전체주의나 공산주의 체제의 어떤 국가보다 국민에게 더 많은 기회와 혜택을 준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쳤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단순히 이런 개인적 위치가 그를 리더십 있는 지도자로 만들었을까?

영국의 왕족은 사관학교를 들어가야 하고, 처칠도 사관학교를 삼수 끝에 기어이 들어간다. 전쟁터를 갈 준비가 항상 되어있는 청년기를 거쳐야만 국가리더가 될 수 있는 '귀족'의 보편적 역량을 영국과 영국민은 인정한다. 처칠은 보어전쟁에 종군기자로 참여했고 포로가 된 경험도 있다. 이렇듯 영국은 미래의 리더(Leader)를 키우기 위해 단지 지력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사명의 경험을 요구한다. 지력 위에 신념은 이렇게 다져진다.

위 영화에서 처칠은 덩케르크에서 33만 명의 장병들을 철수할 시간을 벌기위해 인근 칼레에서 방어선을 치고 있던 영국군 4천명의 옥쇄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지시한다.

처칠이 군대의 옥쇄를 지시할 수 있었던 것은 만일 그 군대에 자기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 명령을 받아들일 수 있는 떳떳함을 갖추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물론 처칠의 이와 같은 결정에 대해, 그것이 부당하다고 울부짖고 히틀러에게 항복하자며 천막부터 치는 국민이 없었다는 것은 요즘의 대한민국에 사는 필자에겐 매우 낯설다.

지도자를 항상 개천의 용에서 찾는 경향이 있는 우리와 달리 이 영화에서 나타난 영국의 리더들은 우리의 지도층에게는 낯선 위와 같은 보편적 양성과정을 거친다는 것이 부럽다. 처칠의 이러한 결단을 뒷받침 하는 조지 6세는 어릴 때 말더듬이(이를 다룬 영화도 있다)에 왕위계승을 두려워할 정도의 나약한 심성을 가졌다고 평가됐었으나 보편적 리더양성과정을 거친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처칠을 지지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개천의 용은 특수한 신념은 강할지 모르나 보편적 신념은 상대적으로 약할 수 있고 신념의 단련기간은 짧을 수밖에 없다. 개천의 용 인생은 결국 자기 개인성공의 역사지, 공동체운명에 대한 고민의 인생이 아니라는 약점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국민의 자유에 대한 의지가 이러한 지도자를 만든다고 해야할 듯 하다. 아무리 리더가 지력과 신념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따르고 수호할 국민적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다이나모 작전의 정치적 결단과정을 그린 위 영화에서도 묘사되지만, 처칠이 국민들에게 없던 용기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공포 속에 잠시 잠들어있던 영국 국민들의 의지를 처칠이 일깨웠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언론은 자유를 향한 리더의 용기와 신념을 국민들에게 정확히 전달했다.

우리는 2차 세계대전 과정 속에 영국이 어떻게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고 자유를 쟁취했는지 역사를 통해 배웠으면서도 여전히 채임벌린과 처칠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러나 처칠의 말은 우리에게 어떠한 선택을 할지 명확하게 알려준다.

“We shall NEVER Surrender!”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법무법인 에이치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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