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 ”日에 배상 요구 않겠다”는 말이 그리 하기 싫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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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8.28 09:25:34
  • 최종수정 2019.08.28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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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효적 방안 외면하고 연속 惡手로 국가에 치명상
한일협정으로 경제 발전 얻은 만큼 우리가 징용 문제 맡아야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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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지소미아 파기’까지 가버렸다. 일이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돼 가고 있다는 건 외교를 모르는 보통 사람들도 직감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소미아 파기와 관련해 “한국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더 파국적인 사태가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불길한 공기가 우리 주위를 감싸고 있다.

실타래가 복잡하게 꼬여 있으면 처음 엉킨 데부터 살펴보는 게 해결의 순서다. 이번 일의 출발점은 1965년 한일협정이다. 대법원은 징용 문제에서 이 협정의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조항과는 달리 일본 기업의 책임을 인정했고 이 판결을 문재인 정부가 수수방관하면서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스러운 현 국면에 이른 것이다.

1965년 한일협정에 대해 우리 국민들은 어떤 공감대를 형성해 왔는지 한국사 교과서를 통해 찾아보고 싶었다. 현 한국사 교과서는 좌(左)편향 교과서로 오랜 비판을 받아 왔다. 이들 교과서가 한일협정을 어떻게 다루고 있느냐를 보면 좌파 진영도 수긍하는 일반적인 인식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책은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전국역사교사모임, 2002년)다. 이 책은 정식 교과서는 아니고 전교조 교사 등이 만든 ‘대안 교과서’로 좌편향 역사교육 논란에 불을 붙인 원조 격인 책이다. 이 책의 한일협정에 대한 기술은 ‘한국 정부가 앞으로 더 이상 일본에게 배상을 요구하지 않기로 하고, 일본이 무상 3억 달러, 정부 차관 2억 달러, 민간 차관 1억 달러를 주기로 합의하였다. 이 협정은 35년간의 식민 통치로 인한 우리 민족의 고통을 외면한 굴욕이었다’고 되어 있다.

두 번째 교과서는 금성출판사가 펴낸 정식 교과서인 ‘고교 한국근현대사’(2006년)로 좌편향 역사교육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집중 포화를 받은 바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적었다. ‘한일 회담에서 국민들은 일제의 침략과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정부는 비상계엄과 휴교령으로 반대 운동을 억눌렀다. 한일 국교정상화의 결과 동북아시아에서는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한미일 공동 안보체제가 형성되었다. ‘굴욕 외교’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서둘러 일본과 국교 정상화를 한 것은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본의 획득을 명분으로 한 것이었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노무현 정권 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장을 지냈으며 문재인 대통령의 역사인식과 밀접한 관계성을 보여 온 강만길 교수의 서술이다. 그는 ‘한국현대사’(창작과비평사, 1984년)에서 ‘한일협정은 외자(外資)경제 전개과정에서 하나의 획기를 이루었다. 이 협정은 상업차관 등 일본 자본을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써 과거 식민모국으로서의 일본 자본이 해방 후 20년 만에 다시 침투하는 길을 열어놓았고, 종전의 미국 일변도 외자 도입선을 서독 영국 프랑스 등 선진자본국에 개방하는 계기가 됐다. 그뿐만 아니라 한일협정은 상업차관 도입의 전성기를 이루는 계기가 됐다’고 쓰고 있다.

따라서 한일협정에 대한 이들의 인식은 ▲‘굴욕 외교’였으며 ▲우리 측의 배상 요구를 포기한 대가였고 ▲이로 인해 한미일 공동 안보 체제가 구축됐으며 ▲경제 발전을 위한 외국 자본을 유치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로 정리할 수 있다. 장기적인 국익을 위해 긍정적 측면이 더 많았던 이런 시각은 교과서를 떠나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인이 갖고 있는 한일협정에 대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대법원 징용 판결 문제도 이런 상식선 위에서 풀어갔더라면 별 문제가 없었으나 문재인 정부는 의사 결정의 순간마다 악수(惡手)를 거듭했다.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온 지난해 10월 30일부터 일본의 수출 규제가 시작된 올해 7월초까지 8개월 동안 일본의 해결 요구에 대해 줄곧 ‘사법부 독립성’만 되뇌었다. 대법원에서 그렇게 판결했으니까 정부는 어쩔 수 없다는 논리였으나 국가 간 외교에서 자국의 법원 판결을 책임 회피의 사유로 내세우는 것은 국제적 따돌림을 자초하는 일이다. 상대방 국가로부터 “그건 너희 내부 사정이지”라는 반발을 부를 게 뻔한 이치 아니겠는가.

시급히 풀어야 할 중대 사안을 놓고 모래밭에 머리를 파묻듯 외면해버린 것은 이 정권의 두드러진 특징인 무능 그 자체였다. 이번 사태의 또 다른 원인인 위안부 협상 문제에서도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협상에게 돌을 던지기만 했지, 새로운 해결을 위한 아무런 대안도 갖고 있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이후 일본의 수출 규제가 나오자 정부는 사전에 예상을 못했던 듯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처음 며칠은 ‘전략적 침묵’을 내세우며 커튼 뒤에 숨어 있다가 ‘정면 대결’을 선언했으나 그 방향 또한 오락가락이었다. ‘다시는 지지 않겠다’며 반일(反日)을 내세워 국민들을 부추겼다가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에 영감을 얻었는지 인류애와 평화공존, 사해동포주의를 거론하며 감정적인 대결을 하지 않겠다고 말을 바꿨다.

여기서라도 멈춰 섰으면 그나마 차악(次惡)이라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 변화가 없자 ‘지소미아 파기’에 ‘독도 훈련’까지 단숨에 내달려 버렸다. 상대방을 괴롭힐 수만 있다면 내가 아무리 손해 보더라도 갈 데까지 가보자는 증오의 분출을 보는 것 같다. 이참에 한미일 공조체제를 깨버리고 북한 중국 러시아와 같은 편이 되겠다는 속셈이 아니라면 말이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선서에 명시되어 있는 ‘국가 보위’의 책무를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해법도 한일협정을 다시 살펴보는 일에서 나온다. 지금이라도 일본에 대해 더 이상 식민지 배상을 받지 않겠다는 ‘배상 포기 선언’을 하는 것이다. 1937년부터 1945년까지 8년간 중일전쟁을 벌인 중화민국(대만)과 중국은 각각 1952년과 1972년 일본과 국교정상화 협정을 맺을 때 배상을 포기했다. “덕으로 원한을 갚는다”는 ‘이덕보원(以德報怨)’을 내세웠다. 한국은 당시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 아닌 일본의 식민지로 규정된 반면 중국은 승전국으로서 배상권 면에서 우리보다 월등한 우위에 있었다.

현재 대만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5000달러, 중국은 9000달러 수준으로 우리가 이들보다 잘 사는 나라다. 한류 열풍 등으로 한국은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한국이 일본에 때마다 돈 내놓으라고 손을 벌리는 모습은 그만 보여줄 때가 됐다. 한일협정은 우리가 배상을 포기한 대가로 이뤄졌으며 경제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됐다는 좌파 교과서와 국민 인식에 부합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이젠 우리 내부의 힘으로 징용 피해자들을 충분히 다독일 수 있다.

현 정부도 이 방법을 모를 리 없겠으나 “일본에 배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말이 하기 싫은 것이다. 그 이유의 하나는 일본에 대해서는 무조건 강하게 나가야만 지지율이 올라간다는 포퓰리즘이다. 또한 그렇게 되면 대법원 징용 판결을 구실로 전 대법원장을 ‘사법 농단’으로 잡아넣은 기본 틀이 무너진다는 정치적 계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내부지향적으로 오기를 부릴수록 냉엄한 국제 현실에서 나라는 치명적으로 멍들어 간다. ‘문재인 보유국’ 국민들이 당하는 비극이다.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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