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삼의 현대사 추적] 박정희, 피노체트, 그리고 2020 대한민국
[김용삼의 현대사 추적] 박정희, 피노체트, 그리고 2020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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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심이 살아 있는 국군이라면 국체변경의 사태가 진행될 경우, 이를 초연하게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후대에 모진 비난·비판·모욕, 감옥행을 감수하며 피노체트, 박정희의 길을 걸을 것인가? 과연 이 나라에 애국심이 살아 있는 군인이 남아 있기는 한 것인가? 1973년 칠레의 사례가 귀한 교훈이 될 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1. 1961년 5월, 한국

1960년 4월 학생들이 의거를 일으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었다. 하지만 그 대안으로 들어선 장면 내각은 문자 그대로 ‘혼란 정권’이었다. 장면 정부 국무위원들의 평균 재임기간이 두 달에 불과했고, 거리는 시위대로 넘쳐났다.

민주당 정부 10개월 간 가두데모는 총 2,000건, 데모 참가 연인원은 100만 명. 매일 평균 7~8건의 데모가 서울 거리에서 일어났다.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파워를 갖게 된 학생들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거리로 뛰쳐나갔다.

이를 진압해야 할 경찰은 4·19를 계기로 숙청의 칼날을 맞았다. 경찰서장 81명을 포함하여 경찰관 1만 7,000명이 해직됐고, 전체 경찰관의 80%를 근무지를 변경시켰다. 민주당 정권 9개월 동안 경찰업무를 관장하는 내무장관이 다섯 번이나 바뀌었다. 그 중 네 명은 각각 한 달 간씩 재직했을 뿐이다.

민주당 집권기간 중 범죄가 두 배로 늘었지만, 범인 검거율은 이승만 정부 시절의 90%에서 65%로 낮아졌다. 경찰력이 허약해진 틈을 타고 깡패와 조직폭력배가 활개를 쳤으나 장면 정부는 공권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그렉 브라진스키 지음·나종남 옮김, 『대한민국 만들기 1945~1987』, 책과 함께, 2012, 186쪽).

사회 혼란은 공산혁명의 꽃동산이 된다. 장면 정부가 혼란의 통제에 실패하면서 사회 곳곳에 공산분자들이 대거 침투하여 체제변혁의 드라이브를 강력하게 걸기 시작했다. 이미 이 나라 유권자들은 6·25 포성이 멎은 지 3년 밖에 지나지 않은 1956년 대선에서 진보당 후보 조봉암에게 200만 표가 넘는 표를 몰아준 바 있지 않은가.

1960년 11월 초에 결성된 서울대의 민족통일연맹은 창립대회에서 공산당이 참여하는 전 한국 보통선거를 주장했고, 1961년 5월에는 남북학생회담을 제안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1961년 1월에는 사회대중당, 혁신당, 사회당, 통일사회당 등 4개의 혁신 정당을 비롯한 16개 정당 사회단체들이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를 결성하고 반외세 민족주의, 즉각적인 남북협상, 중립화 통일을 주장하고 나섰다.

장면 총리는 정치력, 행정력, 카리스마 등 지도자에게 필요한 자질이 결여된, 유약하고 소극적인 리더십의 전형이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철학과 가치관이 없었다. 장면 정부의 리더십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장면 총리 취임 몇 달 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7%만이 정면을 지지할 정도로 민심이 이반됐다. 제2공화국은 자유민주주의 정부이기 이전에 무능한 정부였다.

1960년 11월 22일 미 행정부가 작성한 「한국의 전망」이라는 보고서는 한국에서 향후 몇 년 동안 리더십 변화와 세력재편이 일어날 것이라면서 한국이 사회주의화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1961년 3월 초에는 「한국의 전망」보다 더 비관적인 「팔리 보고서」가 등장했다. 팔리 보고서는 “장면 정부가 4월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며, 이 사태를 방치할 경우 한국에서는 공산혁명이나 그와 비슷한 사태가 일어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김일영, 『건국과 부국』, 기파랑, 2012, 307쪽).

1961년 박정희의 5·16 쿠데타는 ‘반공을 국시(國是)’로 한 쿠데타였다. 이것이 대한민국 공산화를 막아낸 것이다. 5·16 이후 박정희는 강력한 반공정책, 자유민주주의 수호, 시장경제 강화를 통한 근대화 정책을 통해 한국을 살려냈다. 만약 1961년 5월에 군인들이 나서지 않았다면 한국은 어떤 상황이 전개되었을 것인가?

1996년 필자가 칠레를 취재 갔을 때 칠레의 정치인·지식인·군부 인사들은 “칠레가 공산화의 마수에서 깨어나 자유민주주의로 돌아설 때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 정책은 대단히 중요한 참고가 되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칠레를 환골탈태시킨 힘의 원천이 박정희였음을 그들은 확실하게 인정했다.

하지만 박정희는 혁명적 위업에도 불구하고 “적폐의 원조”로 지탄 받고 있다. 반공정책 강화 과정에서 처벌받고, 불이익 당하고, 피해를 본 사람들이나 그 후예들이 권력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 친공·용공·주체사상 흠모 등은 국가반역 죄가 아니라 ‘민주화 운동’이 된다. 그에 대한 조사·수사 과정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인권탄압’에 해당한다. 박정희가 그토록 우려했던 세상이 오고야 만 것이다.

쿠데타를 일으켜 공산주의 아옌데 정부를 타도하고 칠레를 공산화에서 구해낸 피노체트 장군.
쿠데타를 일으켜 공산주의 아옌데 정부를 타도하고 칠레를 공산화에서 구해낸 피노체트 장군.

 

#2. 1970년 칠레

남북 길이가 4,329km나 되는, 지구상에서 가장 긴 나라가 칠레다. 그런데 지구상에서 공산혁명이나 쿠데타 방식이 아닌, 일반 국민들의 선거에 의해 공산화 되었던 특이한 나라가 칠레다. 칠레 국민들은 아옌데라는 공산주의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했고, 그 대통령이 기업 국유화 정책, 무상몰수 방식의 토지개혁 등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 칠레를 공산국가로 탈바꿈 시켰다.

흥미로운 점은 공산주의자가 집권하는 과정이다. 1970년 칠레 대선에서 좌파들은 아옌데로 단일화에 성공한 반면, 우파들은 분열했다. 그 결과 불과 36.2%를 득표한 아옌데가 어부지리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분열은 패망이고, 단일화는 권력 획득이다. 아마 내년 4월 총선에서 우파 후보들이 분열할 경우 칠레의 사례와 거의 똑같은 결과를 얻을 것이 거의 분명하다.

미 CIA는 쿠바가 아옌데의 선거 운동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내년 총선이나 차기 대선에서 한국에 종북·친중 주사파 정권의 존속을 위해 북한이나 중국이 이런 행위를 하지 말란 법은 없을 것이다. 이런 행위를 막기 위해 만든 조직이 국가정보원, 경찰 대공팀, 검찰 공안팀인데, 오늘날 이들 기관의 활동목표나 존재가치는 확실하고 분명하게 유명무실화 되었다. 

공산주의자가 대통령에 당선된 칠레가 갈 길은 뻔했다. 자기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한 급진적인 공산화 정책이 요원의 불길처럼 칠레를 변혁시키기 시작했다. 아옌데 정부는 외국인들이 투자한 구리광산과 은행을 무상몰수 방식으로 국유화했다. '경제적 불평등 해소'라는 슬로건 하에 무상교육, 무상급식, 공공근로사업을 통한 일자리 제공을 실시했다.

토지개혁을 추진하여 1,300여 명의 대토지 소유자로부터 토지를 몰수하여 이를 농민에게 분배했다. 이와 함께 노동자의 임금인상을 통해 소득 재분배 정책을 적극 시행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과 거의 똑같은 정책이 이미 48년 전, 칠레에서 원없이 실시된 것이다.

이 와중에 제 세상 만난 극좌 무장운동단체가 의적 행세를 하며 부자들을 공격했고, 공산주의자들은 자기 세력 불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옌데의 급격한 사회주의 개혁정책은 기득권층과 중산층들의 엄청난 반발을 가져왔다.

당시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등 자유민주국가들은 쿠바와 외교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는 미주기구협약을 맺고 있었다. 아옌데는 미주기구협약을 걷어차고 1971년 쿠바와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피델 카스트로 쿠바 대통령은 한 달간 칠레를 방문하여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고, 아옌데 대통령의 경호를 쿠바가 담당했다.

아옌데 정부가 미국 등 글로벌 기업이 투자한 구리광산 등을 무상몰수 방식으로 국유화하자 국제사회는 경제제재로 보복을 가했다. 당시 인구가 1,200만에 불과하여 거의 모든 공산품·생필품을 수입에 의존하던 칠레였기에 그 충격은 대단했다. 이 와중에 칠레의 주요 자원이자 수출 주력상품이던 구리 가격이 폭락하면서 칠레는 직격탄을 맞았다.

1971년부터 1973년까지 실질 GDP는 매년 5.6%씩 줄어들었고, 인플레가 만연하여 물가가 폭등했하자 아옌데 정부는 가격 통제를 강제했다. 이렇게 되자 상점에서 생필품, 식량이 사라지고 지하 암시장에서 비싼 값에 거래되었다. 아옌데 정부가 무너진 1973년 인플레율은 500%를 찍었다. 경제 폭락을 견디다 못한 아옌데 정부는 국제 채권자와 외국 정부에 채무 디폴트를 선언했다.

무능한 정권의 무능한 리더가 집권하면 가장 먼저 외교가 무너지고, 경제가 붕괴되며, 치안이 파탄난다. 이후 정치적 격변이 회오리친다. 칠레는 그 전형적인 과정을 답습하며 무너져갔다.

아옌데의 시대착오적 외교정책과 공산화 경제사회 정책은 중산층을 붕괴시켜 극빈층으로 전락시켰고, 서민들을 기아선상으로 내몰았다. “민중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하여”를 목표로 한 급진정책은 가장 먼저 민중들의 삶을 파탄 낸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칠레는 그 살아 있는 전형이었다. 건설은 지극히 어렵지만 파괴는 순식간이다. 특히 그것이 국가일 경우 더욱 그렇다. 아옌데가 칠레라는 건실한 국가를 거덜내는 데는 3년이면 족했다.

국민이 원해서, 유권자의 투표로 공산주의자를 선택했으니 누가 누굴 원망하겠는가. 선거를 통해 공산화 된 칠레는 선거를 통해 다시 자유민주체제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입법·사법·행정은 물론 언론과 노동계, 시민사회, 종교계, 문화계 등 제도권을 장악한 공산주의자들이 선전선동으로 국민들을 세뇌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라 망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구경만 하는 것이 최선인가? 칠레 군부는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공산주의의 사악한 손아귀에 목줄 잡힌 조국을 구하기 위해 칠레 육해공군과 경찰은 1973년 9월 11일, 피노체트 장군의 지휘 하에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리고 쿠데타는 성공했다.

아옌데 대통령은 쿠데타의 와중에 대통령궁에서 카스트로 쿠바 대통령이 선물한 AK47 소총으로 머리를 쏘아 자살했다. 아옌데는 두개골이 쪼개지고 뇌가 마루와 벽에 흩뿌려진 채 죽었다고 한다.

피노체트 장군은 쿠데타 직후 공산주의자들을 체포하여 산티아고 시내의 공설운동장에 가두고 무자비하게 처형했다. 칠레의 민중가수로서 ‘저항의 상징’이었던 빅토르 하라도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쿠데타 발생 5일 후인 9월 16일, 기관총으로 총살당했다. 이런 식으로 산티아고 공설운동장에서 처형된 공산주의자가 3,000여 명, 실종자가 1,200여 명이었다.

피노체트는 아옌데의 공산화 정책을 단숨에 깨부수고 시카고대 출신들을 경제 일선에 포진시켜 과감한 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했다. 국영기업, 광산 등을 민영화했고, 거의 모든 규제를 철폐했으며, 무역 장벽을 무너뜨렸다. 이때 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실시한 사람들은 ‘시키고 보이즈(Chicago Boys)’란 이름을 얻었다. 칠레는 단숨에 빛나는 경제성장의 대열에 합류하여 중남미에서 가장 건실한 발전을 이룬 나라가 되었다. 한국과 가장 먼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나라가 칠레였다.

유권자들의 한 순간 잘못된 판단이 나라를 망가뜨렸고, 그러고도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지 못하자 군부가 나섰다. 피노체트도 박정희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군사독재니, 피의 독재니 하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인권탄압’의 업보를 치르느라 그의 말로는 순탄치 못했다. 하지만, 칠레를 번영의 길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튼 프리드먼은 그를 ‘칠레의 기적’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3. 2020년 4월, 대한민국

문재인 정부의 집권 과정은 1970년 아옌데 정부의 답습이었다. 한국도 선거에 의해 좌익 정권이 들어선 것이다. 좌익 정권이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집권했으니 대한민국이 갈 길은 명약관화했다. '개혁'이나 '정의구현'이니 '민주화'의 탈을 쓴 사회주의화, 공산화의 길이었다. 여러 정책도 아옌데 정부의 완벽한 복사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집권 이후 한국은 그가 예고한 대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향해 전력질주하고 있다.

우선 세계사의 주류세력으로부터 이탈하는 외교 파탄이 그렇다. 의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 징용문제 배상 판결, 한일군사정보보보협정(GSOMIA) 연장 거부, 사드 배치에 대한 중립적 입장(사실상 반대), 한미 군사훈련의 형식적 유지(사실상 폐기)….오죽했으면 니어재단과 조선일보가 공동 주최한 '표류하는 한국의 외교·안보' 토론회에서 "한국이 스스로 애치슨 라인 밖으로 나가고 있다"고 경고했겠는가.

미중 간 신냉전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소용돌이의 한복판에서 문재인 정부는 내놓고 친중·친북·반미·반일 외교정책을 선언했다. 이러한 선언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는 바보가 아니면 다 안다. 조만간 경제제재부터 당해 1998년의 IMF 외환위기보다 더 충격적인 경제폭망의 어두운 그림자가 덮쳐올 것이다.

경제위기로 중산층과 서민 일자리가 붕괴되면서 실직자가 양산되고, 취업률이 곤두박질 치자 문재인 정부는 포퓰리즘의 극치에 달하는 정책을 연발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을 명목으로 문재인 정부는 세금을 퍼부어 공공기관 주변 청소, 아동안전 지킴이, 교통안전 지킴이, 골목길 담배꽁초 줍기 등 세금 일자리를 100만개나 만들었다고 자랑한다. 이러한 단기처방 땜질 정책은 아옌데의 ‘사회주의를 향한 칠레의 길’과 이름만 다를 뿐, 방법론은 거의 동일하다.

칠레는 사회 혼란이 가중되면서 아옌데의 공산화 정책을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으로 나라가 두 쪽으로 갈렸다. 내전을 방불케 하는 격렬한 충돌이 급기야 군부와 경찰의 쿠데타로 폭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또 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 공정한 대통령,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 소통하는 대통령, 겸손한 권력을 약속했다.

지금 현재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나? 그가 세금 퍼부어 서민을 살리겠다고 드라이브를 건 정책은 기승전결의 말로가 어떻게 될 것인지…. 모두가 우려하는 가운데 총선이 8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내년 총선에서 문재인 정부가 패배하여 소수파로 전락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내년 총선이 자기들에게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순간, 문재인 정부가 정황을 반전시킬 카드는 얼마든지 있다. 김정은 서울 답방, 트럼프-김정은 회담, 무지막지한 포퓰리즘 정책, 박근혜 석방으로 우파 분열…. 내년 총선에서 대한민국 수호세력이 패배할 경우 곧바로 헌법 개정, 낮은 단계 연방제 선언, 대한민국 소멸, 개인의 자유가 말살되고 전체주의 체제 지향 절차가 백주에 중인환시리에 합법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애국심이 살아 있는 국군이라면 국체변경의 사태가 진행될 경우 이를 초연하게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후대에 모진 비난·비판·모욕, 아니면 감옥행을 감수하며 피노체트, 박정희의 길을 걸을 것인가? 과연 이 나라에 애국심이 살아 있는 군인이 남아 있기는 한 것인가? 칠레의 사례가 귀한 교훈이 될 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김용삼 펜앤드마이크 대기자 dragon00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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