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칼럼]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 문 정권의 촛불은 국민 속이는 사이비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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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8.22 10:48:58
  • 최종수정 2019.08.25 21:57
  •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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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급진적 인텔리겐찌야의 혁명지상주의
사회구조 개혁이라는 당위 앞세워 도덕적, 인격적 파탄
문재인 정권이 부르짖는 '촛불혁명', '적폐청산'...아름다운 구호로 국민 속이는 사이비 사회주의
조국 법무장관 임명 강행...문재인 정권의 정체 보여줄 것
이인호 객원 칼럼니스트

러시아에서 혁명 열기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1909년. 급진적 인텔리겐찌아 세계에서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러시아 1898년에 사회민주노동당(마르크스주의 정당) 창당선언문을 집필했던 스트루베를 포함한 혁명운동의 거두 7명이 [향방표식]이라는 논문집을 발간하여 급진적 인텔리겐찌야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후에 철학자로 세계적 명성을 누리게 된 베르쟈예프를 위시한 7인은 각기 다른 주제로 논문을 썼지만 공통된 지적이 있었다. 러시아의 혁명운동이 그때 가지 걸어온 그 길로 계속 간다면 기존의 전제체제가 무너진 다음에 권력은 이상주의적 혁명가들이 아니라 권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서운 사람들 손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인민을 위한다는 이타적 영웅심에서 출발한 혁명은 결국 인민을 더 큰 고통으로 내 모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경고였다.

베르쟈예프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혁명운동에 투신한 사람들은 정의에만 목 말라 하지 진리에는 관심이 없고 따라서 진리와 허위, 진실과 위선을 가릴 줄 몰랐다. 외래의 신사조에만 휩쓸릴 뿐 스스로 냉정하게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은 기르지 못했다. “혁명적 허무주의”라는 제목의 논문을 쓴 프랑크에 따르면 인민대중을 위해 혁명이 필요하다고 결론 낸 급진적 인텔리겐찌야는 혁명지상주의에 휘말리면서 살인과 파괴를 미화하는 도덕적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었고 도덕적 감각을 완전히 상실했다. 키스챠코프는 악법과 투쟁을 하다 보니 법이 있어야 인권이 보호될 수 있다는 것 까지 망각하게 되었다고 지적했고 이즈고예프는 어른들이 정치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다 보니 어린 학생들이 민중의 대변인, 구세주를 자처하고 나서게 되었고 결국 러시아 사회는 정신적 어린이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개탄했다. 성직자의 아들로 청년기에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가 “경제의 철학”이라는 논문을 쓰면서 사회학자와 정교신학자로 후에 이름을 날리게 된 불가코프는 사회제도와 인간의 정신적, 도덕적 자세 사이의 관계문제를 강조했다. 사회구조나 제도를 혁신하는 것 만으로 정의로운 세상이 되는 것은 아니며 인간 개개인의 도덕적, 인격적 품성이 중요한 변수였다. 편집 책임자였던 게르쉔존은 혁명적 파괴만 일삼아온 인텔리겐찌야는 경찰 같은 질서수호 전문가들의 역할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가를 깨닫고 인정할 줄을 모른다면서 혁명가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고 호소했다

레닌의 입장에서 본다면 초년 동지들의 이러한 충정 어린 비판은 용서할 수 없는 “배반”이었고 가차없는 반격이 시작되었다. 사실 러시아 혁명운동의 혼탁한 물결은 이미 지식인 거두 몇 사람의 힘으로 거슬르기에는 너무 거세었다. 혁명은 [향방표식]의 필자들이 예언했던 대로 권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추구하는 세력의 승리, 곧 레닌의 공산당 일당독재체제, 스탈린의 “개인숭배” 체제로 귀결되었고 러시아는 전체주의적 독재체제 아래서 70년의 역사적 시간을 상실하며 후진국으로 전락하는 혹독한 대가를 지불했다.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우리 대한민국이 파괴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 [향방표식] 필자들의 우려가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만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을 창출해낸 사람들은 자기들 나름대로는 “혁명가”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다. “촛불혁명”을 내세우지 않았는가? “적폐청산”을 말로만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정치적 표적들은 곧 바로 “법”의 이름으로, 약자 보호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응징하는데 그들 만한 신속함과 단호함을 보인 정권이 있었는가? 그런데 참으로 어이 없는 일은 2017년의 대한민국은 여러 가지 부족함을 안고 있기는 했었지만 그보다 백년 전의 러시아처럼 혁명으로밖에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있던 나라는 결코 아니었다는 점이다. “촛불혁명” 주체들은 자기들이 목표로 하는 것이 통상적 의미의 혁명, 곧 주권의 주체와 국가의 이념을 전복시키는 행위임을 솔직하게 대한민국 국민에게 알리고 대중의 동의를 얻는 적이 없었다. 문재인 정권은 시발점부터 “제왕적 대통령 권력”의 불식과 “강자의 횡포 및 부패척결”, 남북간의 “평화관계 수립”등 이름다운 구호로 국민을 속임으로써, 다시 말하면 수단과 방법을 자리지 않고, 권력을 장악 한 것이지 자기들 주사파의 좁은 테두리나 갑작스런 “민주화 보상금” 지급에 혼을 빼앗긴 국민 일부 이외에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절대다수로부터 자기들이 의도하는 친북 또는 사이비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명백한 동의를 얻고 지지기반을 구축한 것이 아니었다.

정치인들에서 “도덕적”으로 행동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부터 무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임을 자부하는 나라에서 문재인 정권처럼 당당한 자세로 삼권분립체제를 무시하고 표리부동과 정치적 이중성을 드러내며 적반하장으로 상대방을 몰아세우는 정권을 보기는 쉽지 않다. 오직 자유언론이 사라지고 정권의 나팔수들만이 힘을 쓰며 “적폐청산”의 명분아래 일종의 공포정치가 펼쳐지고 있는 나라에서나 그런 정권이 유지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요즘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장관 임명문제를 둘러싸고 일고 있는 부패 논란은 문재인 정권이 얼마나 철저하게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정권인가를 드러내주는 사례일 뿐 놀랄 일도 아니다. 어느 부처이고를 막론하고 장관이란 그 분야의 최고 책임자요 최고로 유능한 공복이어야 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전세계의 상대역과 맞서서 힘을 겨룰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의 어느 공직자 한 사람이라도 국민 전체 가운데서 그런 최고의 실력자라고 선 뜻 나설 사람이 있는가? 끼리 끼리 “해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인 듯 여기는 풍조가 이제는 집권여당은 물론 야당이나 국민전반에까지 만연되어 있기 때문에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수월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줄을 잘 선 덕분에 요직을 차지하는 것이 현실이며 그런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사람들이 나라 살림을 맡아 하는 한 대한민국이 점점 더 기울어져 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의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하다면 문재인 정권의 정체가 무엇이며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지는 더 물을 것도 없이 자명해진다. 공수처 법을 만들어 대한민국을 경찰국가로 만들고 내년 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수를 장악한다면 곧 바로 연방제 개헌으로 나가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정권의 영구집권의 꿈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 지지는 않을 것이다. 설사 국민을 다시 한번 속이는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미국이나 일본이 그대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며 북한도 중국도 러시아도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예측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문재인 정권이 기가 꺾이거나 축출되지 않고 지금의 길로 그대로 나간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물론 남북한 동포 모두가 끔찍한 불행으로 빠져들 것이라는 점이다. 불과 3년전 까지만 해도 우리 대한민국은 미국의 동맹국이요 일본의 우방으로서 많은 세계인들이 흠모의 눈으로 주목하는 나라였지만 이제는 국제정치에서 치지도외시 당하는 외톨이가 되었다. 우리가 미국의 굳건한 동맹으로 남아 있었다면 북한도 일본도 우리를 지금처럼 업신여기지 못했음을 몰론 미국과 중국의 경제대결에서 발생하는 어부지리가 우리 몫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역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눈 밖에 난 문재인 대통령과 동일시 되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안위는 미국의 대중 또는 대북 정략에서 거의 고려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그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날 수도 있는 것이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전통적, 적대적 관심일 것이다.

북한과 경제력을 합치면 일본의 경제력을 능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망언을 하고 조국 같은 부도덕한 인물을 법무장관으로 기용하겠다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국민은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대가를 모면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 이제 남아 있는 선택이란 어떤 방식으로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 그나마 가장 희생이 덜 할 것인가 하는 것 뿐일 것이다.

이인호 객원 칼럼니스트(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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