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샘의 교실이야기 37] 친일과 반일 사이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유니샘의 교실이야기 37] 친일과 반일 사이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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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8.19 16:39:14
  • 최종수정 2019.08.20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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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의 신뢰가 외교의 관건이며 외교력이 국력
미래의 세대는 미래를 바라보자
역사는 시간이 아닌 시각의 축적, 시각을 제대로 갖도록 돕는 것이 역사교육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일본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조심스럽다. 그러나 조심스럽다고 피하기만 할 수는 없는 주제가 또한 일본이다. 여름방학식을 전후로 이미 일본에 대한 문제는 시작했고 불매운동이야기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방학식을 하는 날 해외여행이 예약되어 있는 사람은 사전에 이야기 해보라고 말하자 한 아이가 조심스레 손을 반만 들고 쳐다보고 있었다. 

 “선생님 가족 여행 가는데요. 저기….”

다 말하지 않아도 무엇 때문에 아이들의 눈치를 보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 가까운 곳에 가는 모양이구나. 좋은 곳에 가네! 잘 다녀오렴. 좋겠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치자 아이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어쩌자고 이웃 나라인 일본에 가족 여행 가는 것도 친구들의 눈치를 봐야 한단 말인지. 대체 아이들을 조심스럽게 만들고 가족 여행을 가는 것도 죄인인 것처럼 주눅 들게 만드는 것이 누구의 잘못이라는 말인지 가슴이 답답해왔다.

 사실 일본과의 감정 대립이 불거지기 시작할 때 그와 관련된 수업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신문 자료를 이용해 일본과 관련된 수업을 한 내용을 일부만 소개 하자면 다음과 같다. 다만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스스로 자료를 찾아보게 했고 제대로 찾지 못하는 부분에 한해서는 약간의 도움을 주기도 했다. 

 불매운동을 검색하니 말할 수 없이 많은 사례과 욕설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일본을 그렇게 증오하게 된 것은 오로지 일본의 잘못 때문이라고들 이야기 한다. 우리에게 무역보복을 해서 일본이 밉고, 우릴 식민지로 정복하고 짓밟아서 밉고, 우리 젊은 처녀애들을 잡아다가 성노리개로 던져서 이가 갈리고, 강제로  끌어다가 노동자로 부려먹고 배상도 해주지 않아서 열이 받는다는 것. 한 눈은 감고 한 눈만 뜬 채, 국가 대 국가의 관계를 감정적으로만 몰아가는 현상을 조금 더 차분하게 따져보자고 이야기 하며, 짚어보기로 했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서로 아무 일도 없었는데 일본이 우리에게 ‘무역 보복’을 했는지 따져봐야 할 일이었다. 

고등학교 교실 안에서 상세하게 거대한 외교 사안을 다 점검할 수야 없는 일이지만 간략 하게 나마 검토해 보기로 했다.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문제에 대한 검토가 우선 살펴 볼 주제였다. 우리나라의 대법원이 강제징용을 실시한 신일본제철의 국내자산을 압류하라고 최종 판결을 내림으로써 한국 국민들의 손을 들어주자 일본은 과거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이미 끝난 사항이므로 판결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뜻을 한국 정부에 전달하기에 이른다. 물론 사법과 행정이 분리되어 있기는 하나 한국 정부(행정)가 사법부의 판단에 관여할 수 없다고 대답하면서 대법원의 판결에 따르겠다는 이야기는 국가 대 국가의 차원에서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 일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2005년 노무현대통령 시절 ‘1965한일협정 연구관련 민관위’를 구성(이해찬, 문재인민정수석 위촉됨)하여 당시 논의 결과, 민관위에서는 1965년 합일 협정에 개인청구권은 포함되어 있지 않더라도 명부 등이 불완전하여 당시에 실행하기 어렵고, 한일협정당시 일본정부가 3억 달러를 지원한 것에 강제징용 내용이 포함되었다는 것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그 뒤 실제로도 노무현 정부는 피해자에게 6,184억원을 지원(해당내용 이해찬, 문재인 서명)함으로서 ‘배상’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도 있었다. 물론 이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고 이로 인해 우리 사회가 지금 분열의 골이 깊어져가고 있음을 지적해 주었다. 

아울러 배상과 보상에 대한 것도 잠시 언급을 해야 했다. 일반적으로 (손해)배상은 위법한 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손해를 피해자 이외의 자가 채워주는 것이고, (손실)보상은 적법한 원인으로 인하여 생긴 손해내지는 손실을 채워주는 것으로 되어있다. 한일협정 당시 일본이 우리에게 한 것은 배상이나 개인에게 하는 보상은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들이 논점이 되고 있지만 그 또한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중론임도 전달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 ‘협정’이 국가 대 국가의 결정이라는 것과, 이미 종료가 된 사안임을 주목해야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뒤집힐 수 있는 문제로 돼버릴 경우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신뢰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될 것이라는 점 역시 지적해야 했다. 정권이 바뀌면 국가 간의 협약도 뒤집힐 수 있는 나라라고 지목된다면 향후 그 어떤 나라가 우리나라와 중대한 협상이나 협의를 하려고 하겠는가.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외교관계는 바닥에 이를 것이라는 것을 깊이 새겨야 하는 것이다. 외교가 되었던 일상이 되었던 신뢰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약속이란 것이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임 외에도, 누구의 주장을 채택할 것이냐가 중요한 문제가 되는걸 보면 역사란 지나간 시간의 축적이 아닌 시각과 관점의 축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일본과 친하면 안 되는가, 미래를 보자

‘깨진 약속’ 앞에 누구의 잘못이 먼저인가 깊이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감정에 먼저 불이 붙었다. 네가 감히 보복을? 역사 청산도 없이? 그럼 나도 좌시하지 않겠다! 네 물건 안사!

이렇게 시작되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서 일본 여행도 안 되고, 일본물건도 안 된다고 앞을 다투어 누가 누가 애국심이 강한지 내기라고 하는 모양새였다. 아이들이 하는 장난이 아니라 어른들이 앞장섰다.

왜 우리가 식민지가 되어야 할 만큼 나라는 허약했으며, 그로 인해 국제 관계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결국 한 나라의 식민 지배를 받아야 했는지 치욕스럽게 생각하고 절치부심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가 밟혔다는 현상만 보고 분노에 부르르 떠는 것만이 우리가 할 전부로 알고 있는듯했다. 누가 도장을 찍었느냐고, 누가 나라를 팔았냐고 이완용만이 매국노였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이런 식으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갑내기 지도자가 자신의 나라를 동북아의 맹주로 만들겠다고 기염을 토할 때, 한 지도자는 주변의 외세를 동원해 나라를 보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얕은 꾀에 몰입하는 모양이라니! 주변을 이용해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도 어느 정도 국력이 뒷받침 될 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결국 우린 식민통치를 받았고 슬픈 역사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 과거사가 부끄러울수록 우리가 미래를 어떻게 이끌고 나가야 하는지 시선을 앞으로 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뼈를 깎는 반성은커녕 분노에만 머물러 있는 모습은 과거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모양새였다.

사실 동북아에서 자유 시장 경제 질서를 지키며 우리와 대화하고 수준을 맞출 수 있는 나라라 해봐야 일본과 대만 정도 인데, 대만은 현재 우리와 공식적 외교 관계를 수립한 나라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우리와 격이 맞게 외교를 논할 수 있는 자유주의 국가가 일본이다. 그런데 그 국가와 계속 날을 세우고 불편한 과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적으로 돌려가면서.

작년 이맘때,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해, 그들이 만든 역사박물관을 갔었다. 그들의 역사를 보았고,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 하려는 듯한 그들의 무서운 노력도 보았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국제 정세를 읽고 있었고, 그 국제정세가 자신들을 어떻게 몰아가는지 느끼고 대응하고 있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일본의 입지를 국제적 판세 속에 올려놓고 보이지 않게 조금씩, 숱한 전쟁을 치르며 일본이 왜 그래야 했는지를 조곤조곤 기록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두려움도 느껴졌고 부러움도 일었다. 무조건 일본을 터부하고 악마로만 몰아간다고 우린 천사가 되고 승리자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진짜 일본을 넘어서고자 한다면 지금은 무턱대고 거부하고 원수로 만들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었었다.

일본은 꿈쩍도 않고, 한국 한 나라를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해 세계적인 나라를 향해 비상할 준비를 구석구석에서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일본의 진실, 일본의 현재. 그리고 미래를 향해 꿈꾸고 있는 일본.

더 이상 과거에만 사로 잡혀선 세계를 향해 함께 미래를 꿈꾸며 일본의 현재와 미래를 따라잡을 수 없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외교력은 국력이다

한나라의 국력은 경제력과 국방력으로 가늠할 수 있다. 우리와 일본, 그리고 북한을 비교한 통계를 잠시 살펴보자.

표 1. 한국과 일본과 북한의 지표 비교
표 1. 한국과 일본과 북한의 지표 비교

일본의 경제규모는 우리를 훨씬 능가한다. 그런 나라가 이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비굴하게 굽신 거리기나 해야 할 만큼 우리나라의 위상이 낮지도 않은, 이젠 우리 위상도 국제무대에선 수준급이다. 그런 우리가 이웃과 해야 할 일은 협력을 통해 ‘윈-윈 전략’을 계획하고 시너지를 발생시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외교는 국토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고, 시장을 확장하여 경제영토를 넓게 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외교력은 국방력에서 비롯되며 막강한 군사력 뒤에 외교력이 뒷받침되는 것이니 그 둘 사이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표2. 한국과 일본의 국방력 비교 (출처 국방백서)
표2. 한국과 일본의 국방력 비교 (출처 국방백서)

최근의 전쟁이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한 해군력과 공군력이 주를 이룬다고 본다면 일본의 군사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임을 직감할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이 혈맹을 자처하며 뒤에서 버티고 있다. 외교력이 곧 국력이라는 사실을 직감한다면 우리가 이웃과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도 충분히 생각해볼만하다고 이야기 하며 수업을 마쳤다.

지나간 세대의 묵은 원망(怨望)은 지나간 세대가 지고 가고, 미래는 미래 세대의 원망(願望)을 품고 감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어찌하여 구세대의 원망(怨望)을 미래 세대에게 지울 것인가 말이다. 미래는 미래세대의 것으로 남겨주는 것이 선배세대의 도리일 것이다.

조윤희(부산 금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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