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의 지적 단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성숙의 기회와 시간 탕진해
사노맹은 민중주의적 독재 정부 세우자는 것...민주화 운동으로 슬쩍 둔갑시키는 말장난
부끄럽지 않다는 조국!...부끄러움 모르는 것은 지식인이 빠져드는 악덕

<조국 아, 나의 부끄러운 조국이여>

종교를 과도하게 신앙하는 사람들과는 동업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자기가 잘못한 일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거나 ‘운명적 무언가의 탓’으로 돌려버리면 잘잘못에 대한 인간들의 책임소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잘 한 것은 자기 탓이고 잘못한 일은 절대자가 주는 시련이 되어버리고 만다면 동업의 책임소재는 마치 미지근한 개숫대 물처럼 모두 손가락 사이를 빠져 달아나 버리고 만다.

조국은 14일 자신의 젊은 시절 행적에 대해 "28년 전 사노맹 활동, 자랑스럽지도 부끄럽지도 않다“고 말하면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비가 오면 빗길을 걷겠다. 눈이 오면 눈길을 걷겠다“는 논평가적 언어를 동원해 방어막을 쳤다. 문제는 세상의 일이라는 것이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눈이나 비처럼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눈도 뿌리고 비도 내리는 것의 상당부분은 다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다. 혁명운동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인간은 그 점에 있어서 자기책임을 느끼고, 책임과는 또 다른 의미로 자기 자신을 책망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 덧붙일 것은 부끄러움은 도덕의 근저에 있는 가장 중심적 개념이어서 인간을 새로운 자각으로 나아가게 하는 궁극의 힘이 된다. 조국아!

조국은 청년시절의 일에 대해 자랑스럽지도 부끄럽지도 않다고 말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조국은 아직 내심의 사노맹이요 거짓으로 전향한, 스스로를 은폐하고 있는 시대착오의 혁명가가 된다. 다시 말해 조국은, 그 실질이 아시아적 후진성에 불과한 민중 혁명적 세계관을 아직도 내면깊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사노맹 활동을 부끄럽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당시의 조국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조국이 그때의 어설픈 이념을 여전히 내심에 수용하고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젊어서 사회주의가 아니면 가슴이 뜨겁지 않다는 것이요 늙어서도 사회주의라면 머리가 나쁘다’는, 조국이 신봉할 것같은 이 말도 실은 틀린 말이다. 아마도 조국은 널리 오해되고 있는 이런 통속적 레토릭에 숨어서 젊은 시절을 변호하고 싶은지 모르지만 이는 아직도 일정한 지적 수준에 올라서지 못한 자들의 부끄러운 말장난이요 추한 추억의 옹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조국은 아직도 모르고 있다. 그것을 모른다는 것은 아직도 조국은 대학생일 당시의 지적 단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말이 된다.

개인이 아닌 사회와 집단의 차원에서도 그렇다. 우리사회가 조국의 이 어설픈 논변을 받아들인다면 대한민국의 지적 수준 전체가 대학생 시절의 사고체계와 수준을 정당화할 지경이라는, 그래서 한국 사회가 아직도 저차원의 사회라는 증명서에 불과한 것이다. 조국이 지금 자기도 모르게 하고 있는 일이 바로 그런 것이다.

정상적인 지식인이라면 청년시절의 그 방황이 수없는 지적 성숙의 기회와 시간을 낭비와 탕진으로 몰아갔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반성하게 된다. 그것은 더 높은 단계에 이른 자만이 비로소 알게 되는 그런 새로운 지적 영역이다. 때문에 자신이 청년기의 좌충우돌 과정에서 놓치게 된 그 아까운 시간과 지적 미성숙, 그리고 그것에 대한 집착에 대해 미련과 후회와 책망을 갖는 진정한 성숙의 과정을 눈물로 절감하게 된다.

조국의 경우라면 남의 논문이나 짜깁기하는 그런 수준의 표절 논문이 아니라 더 수준높은 창의적 논문을 발표했을 것이고, 세계 독서계와 법학계를 놀라게 할 만한 그래서 지식의 긴 역사에서 반열에 오를 만한 책을 썼을, 그런 수많은 아까운 시간을 바보처럼 그냥 흘려보낸 일들에 대해 조국은 전혀 자책도 부끄러움도 없다는 것이다. 그져 대중의 관심이나 끌려는 얄팍한 관종적 에세이들로 논문목록을 채울 수는 없지 않나, 조국아!

지금 조국이 지나간 시간들이 부끄럽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아직도 28년 전의 사고체계와 사고 수준에서 전혀 도약과 돌파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웅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장관 후보자가 되고 나니 과거 독재 정권에 맞서고 경제민주화를 추구했던 시절이 돌아왔다“는 말도 거짓이다. 이는 28년 동안이나 조국의 지적 성취가 전혀 없다는 또 다른 증거다. 사노맹 활동은 혁명정부, 다시 말해 민중주의적 독재 정부를 세우자는 것이지, 박정희 혹은 전두환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자유민주 정부를 세우자는 것이 전혀 아니다. 조국이 차마 이를 구분하지 않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적대세력인 소위 인민 혁명정부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다. 반독재라는 언어 속에 사노맹의 독재를 민주화 운동으로 슬쩍 둔갑시키는 언어의 장난질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은 지식인이 빠져드는 악덕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악덕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에게는 다른 어떤 미덕도 그 약효를 잃고 만다. 이제 그 조국이, 정의를 다투는 '정의부'의 장관이 되려는 순간이다. 대한민국은 지적 도덕적 분야에서 전혀 근대적 돌파를 이루어내지 못한 것이다. 아, 한국인들이여! 조국이여!

정규재 대표 겸 주필 jkj@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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