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패망 하루 전’, 죽창론과 일억옥쇄(一億玉碎) [김원율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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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8.14 10:16:40
  • 최종수정 2019.08.1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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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일본과의 싸움에서 패하는 날 청와대 앞뜰에서 자결할 의지라도 있는가?
김원율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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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 전 오늘(8월 14일)은 일본 역사상 가장 길었던 날로 기록될 듯하다. ‘일본패망 하루 전’은 원제 ‘일본에서 가장 길었던 날’로서 패전을 앞두고 일본 군부의 움직임을 실록처럼 기록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1945년 8월 14일, 패전을 하루 앞두고 광기에 휩싸였던 당시 군국주의 일본의 실상을 분, 초 단위로 기록하고 있다.

일본의 호전적인 제2차 세계대전의 확전과 군국주의의 팽창은 청년장교들이 주도한 결과였다. 청년장교가 주동이 되어 노구교 사건을 일으키고 진주만 공격 등 승산없는 전쟁을 시작하면서 300만 이상의 군인과 민간인이 죽었으며 미국의 공습으로 온 국토가 초토화되었다. 또한 일본은 본토결전을 앞두고 이른바 일억옥쇄를 부르짖으며 총궐기 태세에 돌입하였고 여학생들이 죽창을 찌르는 훈련을 교정에서 행하는 등 전쟁의 광기는 패전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7월 27일 포츠담 선언의 수락여부를 둘러싸고 내각회의를 열었으나 천황제 수호 등을 이유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두 차례의 원폭 투하(8월 6일 히로시마, 8월 9일 나가사키)와 소련의 참전으로 완전히 전세가 기운 다음 이루어진 어전회의에서도 3:3으로 결론을 내지 못하자 당시 총리가 이른바 ‘성단(聖斷)’ 즉 천황의 결단을 요구하게 된다. 그리하여 천황이 “본토결전에 임하면 일본민족은 절멸하고야 만다. 선조로부터 이어온 이 나라를 자손에게 전하는 것이 나의 임무다”고 하여 항복을 결정지었다. 그러나 일본 군부 강경세력의 광기는 끝을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청년장교 등은 2천만 가미카제 특공대 파견이 전세를 되돌릴 수 있다며 전쟁을 계속할 것을 주장하였다.

8월 14일 청년장교가 주동이 되어 근위병 사단장을 사살하고 동부군을 중심으로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이른바 천황의 ‘옥음(玉音)방송’이 녹음된 테이프를 없애고자 NHK 방송국을 습격한다. 그러나 녹음테이프는 궁내대신이 보관함으로써 파괴를 면하고 드디어 15일 정오에 방송될 수 있었다. 이들은 아나미 육군대신의 지휘를 받아서 쿠데타 반란을 획책하였으나 15일 새벽에 아나미 육군대신이 자결하고 동부군 사령관의 반란군 진압명령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만약 청년장교의 반란이 성공하였더라면 일본은 그야말로 일억옥쇄(一億玉碎), 민족절멸의 위기에 처했을 것이다.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하여 한일갈등은 증폭되고 있고 마침내 죽창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죽창은 일본 패망을 앞두고 가가호호 죽창을 만들어서 미군이 상륙하면 민족절멸의 위험성까지 감내하면서 ‘일억옥쇄’, ‘최후의 일인까지’ 결사 항전하겠다는 일제군부 강경파의 무지몽매한 구호를 떠올리게 한다. 경제계의 한 인사는 일본의 소재생산을 따라잡으려면 반세기가 걸린다며 승산없는 전쟁으로 국민을 내모는 정부의 몽상적이고 막가파식 대응을 나무라고 있다. 우리나라의 휴대폰, 자동차, 정밀화학 등에서 일본의 핵심부품, 소재가 없으면 생산이 불가능하다.

동학 농민봉기 당시 농민군은 소수의 포수들이 임진왜란 당시 쓰였던 화승총을 제외하면 대부분 죽창으로 무장하였었다. 결과는 농민 2만6천명 희생에 일본군은 단 한명 전사라는 비참한 결말로 끝났다. ‘두 번 다시 일본에 지지 않겠다’고 외치는 국가의 수반을 보면 일억옥쇄를 외치며 전쟁의 광기로 일로매진하였던 일본의 청년장교를 보는 듯하다.

강제징용자 배상판결은 3권분립 체제아래에서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국가 간의 협약을 대법원 판결로 뒤집어엎는다면 앞으로 국제조약은 성립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징용노동자 판결에 대해 심사숙고하던 전 대법원장을 사법농단으로 구속하는 등, 재판 결과를 배상하는 쪽으로 유도해놓고서 삼권분립을 핑계되는 것은 속 보이는 짓이다. 위안부 합의 등 국가 간의 약속을 파기하고 밝혀서는 안 될 이면합의마저 까발린 것은 제대로 된 국가라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노릇이다.

여기서 한 가지 떠올릴 것이 있다. 일본의 청년장교들은 전쟁에서 패전이 결정되자 황궁 뜰 앞에서 자결하였다. 비록 무지몽매한 군국주의의 졸개였을지언정 그 열정과 결기는 놀라운 것이다. 이순신의 배 12척을 인용하면서 사즉생(死卽生)의 대일 항전의사를 밝힌 문재인은 일본과의 싸움에서 패하는 날 청와대 앞뜰에서 자결할 의지라도 있는가?

김원율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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