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언론인의 처세술 [유태선 시민기자]
혁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언론인의 처세술 [유태선 시민기자]
  • 유태선 시민기자
    프로필사진

    유태선 시민기자

    이메일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최초승인 2019.08.12 15:22:33
  • 최종수정 2019.08.12 15:27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랑스는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얼마 안 되는 나라들 중 하나이다. 아름다운 국토, 높은 문화 수준, 여유로운 생활 방식 등 아무리 까다로운 사람도 프랑스에서 자신의 마음에 드는 점을 몇 가지는 발견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이하 존칭 생략)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들의 프랑스에 대한 관심이 우리나라 현대사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던 사례가 종종 있었다.

예컨대 박정희는 드골이 통치하던 위대한 프랑스에 영감을 얻어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을 참고로 하여 유신 체제를 수립한 후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다. 노무현은 오랜 갈등 끝에 좌파와 우파가 평화롭게 공존하게 된 프랑스 - 우파 대통령 시라크, 좌파 총리 죠스팽 - 를 부러워 하면서 당시 제1야당이던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에게 대연정을 제안했다.

그런데 문재인은 현직 대통령임에도 같은 시대의 프랑스가 아닌 역사책 속 과거의 프랑스를 사랑한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 문재인을 프랑스 혁명에 심취하게 한 요인이 그의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인지 아니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대한 막연한 반감인지는 불분명하다.

2018년 10월 16일 문재인은 파리 방문 중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에게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 바 있다.

"프랑스 혁명사는 저 멀리 한국 국민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었다. 프랑스 혁명의 정신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들었던 촛불 하나하나에서 혁명의 빛으로 되살아났다."

조선 시대의 많은 유생들이 스스로 단군 조선이 아닌 기자 조선의 후예라고 생각했듯이 문재인은 자신이 프랑스 혁명의 아들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한자를 이해하는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조선인들을 중화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 일부 프랑스 학자들이 문재인과 로베스피에르 또는 조국과 생쥐스트를 비교해 볼 수는 있겠지만 - 프랑스인들이 대한민국의 촛불 정변이 프랑스 혁명을 계승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프랑스 혁명 당시의 문필가들과 현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언론인들의 행태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프랑스 혁명 발발 후 1년이 지난 1790년 11월 1일에 출판되어 그 이후의 경로를 가장 잘 예측했던 영국의 정치인 에드먼드 버크의 저서, 프랑스 혁명에 대한 성찰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은 당시 프랑스 문필가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우선 변호사, 문인, 언론인 등의 속성을 생각해 보면 이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마음껏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수 있다는 점에서 기득권층의 주류를 형성하는 정치인, 관료, 기업인과 매우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전자는 변화에 따른 부작용을 수습하여야 할 책임이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되므로 명성을 얻기 위하여 자신의 아이디어를 검증 없이 발표하고 혁신과 진보를 소리높이 외치는 반면 후자는 새로운 계획이 실패할 경우 이를 수습해야 할 책임을 져야 하므로 기존 관행을 유지하려는 보수적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강력한 군주 태양왕 루이 14세의 치하에서 프랑스 문인들은 국왕을 위하여 일하면서 유럽 전역에 명성을 떨쳤으나 루이 15세의 시대에 들어오면 궁중에서 일할 기회를 찾기 힘들어진다.

이들은 처음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Académie Française)라는 학술단체에서 일거리를 찾으며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다가 디드로와 달랑베르를 중심으로 함께 백과전서 (Encyclopédie)를 편찬하면서 서서히 자신감을 회복한다.

이들의 동료였던 몽테스키외, 볼테르, 루소 등은 신이 아닌 이성에 의한 인류의 무한한 진보를 신봉하는 계몽사상가로 자처하는데 자신들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배타적이고 오만한 모습을 보이며 - 심지어 중상모략까지 하면서 - 프랑스 문예와 학술 분야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제 계몽사상가들은 타인의 재산과 생명에 대하여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나머지 외국의 전제 군주들과 공모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지만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예컨대 볼테르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를 통하여 부와 권력을 누리고자 했지만 프로이센 국왕은 그를 통하여 프랑스 사상과 문화를 충분히 이해했다고 판단하자 경제적 지원을 중단했다.

부와 권력을 갈망하던 프랑스의 문필가들은 재정적자의 급증과 국가부채의 증가에 따라 그 영향력이 증대되고 있던 자국 내 금융업자들을 위하여 일하면서 기존 체제의 핵심이던 부르봉 왕조와 카톨릭 교회를 맹렬하게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들에게 선동된 민중들이 루이 16세를 타도함에 따라 혁명정부가 들어서게 되는데 그 후 수년간 프랑스 전역에 걸친 혼란이 계속된다. 결국 혁명정부는 재정난 해소를 위하여 교회의 재산을 압류하여 매각하게 되는 단계까지 나아가는데 이 과정에서 금융업자들이 교회가 소유하던 토지를 헐값에 인수하면서 막대한 이득을 얻는다.

이제 시선을 대한민국으로 돌려보면 국내 문인들과 언론인들은 전두환 정권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 [창작과 비평] 창간 및 복간을 통한 자력갱생, 진보라는 이름 하의 오만과 독선, 중화인민공화국 및 북한에 대한 예찬, 촛불 시위 선동이라는 프랑스 혁명 당시의 문필가들과 유사한 역사적 경로를 밟아 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박정희 정권 기간 언론인들은 국가안보에 대한 불안감과 소속 언론사의 막대한 은행 차입금을 의식하여 정권을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내는 것을 자제하였다. 여기에 1980년 허문도가 주도한 언론 통폐합에 의하여 수많은 반정부 성향 기자들이 해직되자 완전히 사기가 꺾인 대다수의 언론은 전두환 정부의 보도 지침에 순응했다.

1988년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자 백낙청 등이 문예 및 사회 비평 잡지 [창작과 비평]을 복간하고 동아일보 해직기자들이 [한겨레 신문]을 창간하면서 그 동안 소외되었던 문인들과 언론인들이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는 길을 찾아냈다.

대다수의 지식인들이 외교, 국방, 경제 문제에 몰두하고 있었기에 [창작과 비평]과 [한겨레 신문]을 매개로 조직화된 문필가들이 대한민국 문화계를 장악해 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자신들의 성과에 도취된 이들은 스스로 진보 세력을 자처하며 당시 최고의 소설가와 기자로 평가되던 이문열과 조갑제를 극우 인사로 규정하는 독선적인 모습을 보인다.

백낙청을 중심으로 한 이들 그룹은 문화계 밖에서도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보하고 싶었는지 대한민국보다 낮은 발전 단계에 있지만 강력한 지도자가 통치하던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다.

중국에 대한 흠모를 공공연히 드러냈던 대표적인 인물로 [8억인과의 대화]의 저자 리영희를 들 수 있다. 그는 젊은 시절 미군 부대에서 목격한 부조리에 대한 개인적 반감에서 모택동의 중국 공산당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에 대하여 끊임 없이 분노했던 리영희가 일생 동안 중국에 대하여 우호적이었던 이유가 현장답사보다 문헌연구를 중시하는 학자들 특유의 순진함에 기인한 것인지 내심 중국 정부의 지원을 기대했던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자칭 진보적 문인들이 자신들의 입지를 확보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미국, 유럽, 일본이 아닌 중국에 집중했던 것은 개인적으로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할 것이다.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고난이 동시에 존재하는 국가를 칭송하는 외국의 지식인은 그 자질에 관계 없이 해당국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백낙청이 서정주를 능가하는 시인이라고 평가했던 고은은 미국을 비난하고 중국을 예찬하면서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유럽인들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

자국 내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로 결심한 소위 진보적 언론인들은 2012년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를 개최하여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하지만 민주노총 산하의 언론노조가 장악한 주요 언론들이 광우병, 세월호, 국정농단 등 대국민 선전을 지속한 결과 2017년 문재인이 집권하자 그들은 마침내 대한민국의 중심세력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언론인들은 향후 어떤 방식으로 촛불 정변 이후의 시대에 적응해 나갈 것인가?

과거 프랑스 혁명 당시의 언론인들은 나폴레옹이 혼란을 수습하고 황제가 되자 일제히 "황제 만세"를 외치다가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패배라면서 몰락하자 "코르시카의 살인마"로 부르며 맹렬하게 비난했었다.

소위 진보 지식인들은 가족들의 뇌물수수 의혹으로 인하여 검찰조사를 받게 된 노무현을 몰아세우던 과거의 행태를 문재인 퇴임 이후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일부 언론은 문재인을 옹호하고 다른 언론은 그를 비난하는 방식으로 좌우 양 진영이 대립할 것인가?

어느 경우에도 우리 언론인들이 현직 대통령보다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비판에 몰두하며 사실관계 확인보다는 국민정서에 영합하는 악습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 할 것이다.

유태선 시민기자 (개인사업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