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새 버전의 이승만·박정희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송대성(前 세종연구소장), 김태우(前 통일연구원장), 신원식(前 합참 작전본부장), 박휘락(국민대 정치대학원장)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송대성(前 세종연구소장), 김태우(前 통일연구원장), 박휘락(국민대 정치대학원장), 신원식(前 합참 작전본부장), 김형철 (前 공군참모차장)

지금 이 나라는 먼저 보는 자가 임자다. 주변의 강대국들이 먼저 차지하려고 군침을 흘렸던 구한말 대한제국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7월 23일 중국과 러시아기들이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유린했고, 이어서 러시아의 공중 조기경보기는 휴전협정 후 처음으로 우리 영공을 침범했다. 우리 전투기가 영공 침범에 대응하기 위해 발진하는 동안 일본은 불난 데 부채질하듯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전투기를 출격시켰다. 북한이 대한민국이 무주공산이 되어 버린 이 상황을 놓칠 리가 없다. 북한은 지난 5월부터 지금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신형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중‧러에게 항의 한번 하지 않으면서 일본과 맞짱을 뜨자고 국민을 선동하고 있다. 당면한 안보위협이거나 향후 안보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는 나라들을 상전으로 모시면서 정작 안보협력을 해야 하는 나라는 적으로 내모는 자충수를 두고 있다.

문 정부 못지않게 기가 막힌 것은 미국 정부의 태도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대남용(對南用)이라고 큰소리를 치면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본토는 안전하니 괜찮다고 화답한다. 동맹국 미국의 대통령이 한국의 안위는 물론 주한 미군과 그 가족을 포함한 주한 미국인들의 안전조차 무시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동맹 허물기에 앞장선 한‧미 대통령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각 당사국은 상대 당사국에 대한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공통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 절차에 따라 행동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북한의 탄도 미사일과 방사포 발사가 한국만 위협하는 도발이라 하더라도 미국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소리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마이클 폼페오 국무장관까지 나서 미국 본토만 안전하면 상관없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문 정부는 미국에 강력한 이의를 제기하기는커녕 북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국민은 문 정부가 미국으로 하여금 한미동맹을 포기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그게 오해가 아니고 사실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은 “울고 싶은 문재인 정부의 뺨을 때려 준 것”이 된다. 최근 문 정부는 국가 간 약속으로 일단락 된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한‧일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한‧미‧일 안보협력 구도의 근본을 파괴하고 있다. 3대 연합훈련도 중단했고, 전시 작전통제권의 조기 전환도 서두르고 있다. 모두가 북한이 오랫동안 추구해왔던 평양 정권의 숙원사업들이다.

미국이 고립주의를 택할 때마다 한국은 亡國 위기

고립주의는 자국의 안보나 이익에 직접적 관련이 없는 경우 타국과 동맹을 맺거나 개입을 꺼리는 대외정책이고 개입주의는 이와 반대되는 정책이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적극적 개입주의를 표방한 힐러리 클린턴과 달리 도널드 트럼프는 고립주의를 천명했고 대통령이 된 후 이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2018년 4월 이라크 주둔 미군기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해온 세계경찰 역할을 ‘호구(suckers)’라는 표현으로 비하하면서 수혜국들이 비용을 내지 않으면 중단하겠다고 경고했다. 최근 우리에게 방위비 분담금의 5배 인상을 요구했다는 보도는 그의 경고가 말뿐이 아님을 보여준다.

미국의 고립주의는 5대 대통령인 제임스 먼로가 유럽 열강의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개입을 거부하고자 1823년 12월에 의회에 제출한 연두 교서에서 밝힌 소위 ‘먼로주의(Monroe Doctrine)’로 공식화되었다. 이 원칙은 미국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일시 후퇴했으나 전쟁이 끝나자 미국은 다시 고립주의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계기로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는 개입주의로 변경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개입주의는 역내(域內)균형 전략과 역외(域外)균형 전략을 통해 나타난다. 역내균형 전략이란 해당 지역에 지상군 배치를 포함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적극적 개입전략이며, 역외균형 전략은 해‧공군을 활용해 지역 밖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소극적 개입전략으로 미국의 대외기조가 고립주의 쪽으로 선회할 때 나타난다. 과거 미국이 한반도를 역외 균형전략의 대상으로 삼았을 때마다 한국은 절체절명의 망국(亡國)의 위기에 직면했었다.

이승만과 박정희가 돌파한 제1, 2차 망국 위기

첫 번째 위기는 1950년 1월 미국이 극동방위선을 한국과 대만을 제외한 알류샨열도-일본-필리핀으로 하는 애치슨 라인을 선언하면서 일어났다. 구 소련의 위협으로부터 유럽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던 미국은 태평양 지역에서 힘을 절약하기 위해 한반도를 역외균형 전략의 대상으로 선언한 것인데, 북한은 이 틈을 이용하여 6‧25전쟁을 도발했다. 정전(停戰) 후 미국은 애치슨 라인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이승만 대통령의 혜안과 결기로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고 미군이 우리 땅에 주둔하게 되었다. 참혹했던 6‧25 전쟁의 대가로 한국은 역사상 처음 역내균형 전략의 대상이 되었고, 그 덕에 지금까지 평화와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위기는 1969년 7월 발표된 ‘닉슨 독트린’으로 촉발됐다. 미국은 아시아 국가들과 조약을 지키고 핵우산은 제공하겠지만 베트남 참전과 같은 군사 개입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만과 월남을 버리고 한국에서 미 7사단을 철수하는 조치가 이어졌다. 1977년 취임한 지미 카터 대통령은 한술을 더 떠서 주한미군 전부를 철수시키려 했다. 역외 균형전략으로 완벽하게 회귀하겠다는 뜻이었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핵개발과 자주국방이란 승부수를 통해 미국을 돌려세웠고, 결국 연합사 창설(1978)과 주한미군 철수 백지화(1979년)를 받아냈으며, 중화학 공업과 국군 현대화를 일궈 냈다. 모세가 홍해를 가른 것에 뒤지지 않을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이다.

세 번째 위기는 현재 진행형

세 번째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고립주의의 또 다른 표현이며, 설사 개입을 하더라도 역외균형 전략에 따라 선별적‧소극적으로 개입하고 관련국이 비용을 내게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런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지금은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군사력 복원 등으로 전 세계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군사·경제적 비중이 축소되고 있는데다 세계 경찰 역할을 위해 피를 흘리고 돈을 쓰는 것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거부감도 커진 상태이다. 쉘오일 개발과 함께 석유에너지의 자립이 가능해짐에 따라 석유 확보를 위해 개입할 이유도 상당부분 사라지고 있다. 전략환경도 이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의 대외정책 수단이 외교‧군사 외 통상‧금융 분야로 확대되었고, 해‧공군의 비약적 발전으로 역외 균형전략의 효용성도 커졌다. 즉, 지상군을 파병하여 돈을 쓰고 피를 흘리지 않으면서도 다른 지역에 개입할 수 있는 수단들이 다양화된 것이다. 현재 미국은 800여 개의 해외기지에 약 20만 명을 배치하고 있지만 향후에는 이를 축소하면서 외교‧경제적 수단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며, 유사시 군사 개입은 해‧공군 위주로 하면서 동맹국의 지상군을 최대한 활용하려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문재인 정부의 취임 이래 탈미(脫美)·반일(反日)·친북(親北)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핵을 가진 북한 앞에 대한민국의 안보위상이 나날이 위축되고 있어도 문 정부의 친북 기조에는 흔들림이 없고, 정부의 홍보기관이 되어버린 방송언론 및 여론기관들은 ‘문 정부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세 번째 망국 위기를 맞은 대한민국이 매우 위태로워 보인다.

그래도 살길은 동맹과 자강(自强)

모든 것을 종합하면, 현재로서 안전과 번영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는 길은 ‘동맹과 자강’ 뿐이다. 한‧미‧일 안보협력 구도를 파괴하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불참하면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에 동참하기 위해 기웃대는 정부의 현 기조는 재앙으로 가는 길이다. 미국이 애치슨 라인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하고 중화(中華)질서 속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 길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독재와 가난 그리고 수백만 명의 희생을 강요하는 킬링필드일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오천 년 민족사의 계속성을 유지하고 당당히 살아가려면 한반도가 미국의 역내균형 전략의 대상으로 남도록 해야 하며, 그러면서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고립주의로 회귀할 것에 대비해 스스로 안보역량을 키워야 한다. 과거에도 한국은 베트남전 참전으로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정책을 뒤집었다. 지금은 인도-태평양 전략 참여, 한‧미‧일 안보협력 복원, 항행의 자유 작전 참가, 중국에 제공한 ‘3불(不) 약속’ 폐기 등으로 트럼프를 돌려세워야 한다. 중요한 이웃인 중·러와의 비적대적 우호 관계나 북한과 화해 협력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하더라도, 중심은 어디까지나 ‘동맹과 자강’에 둬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최강국과의 동맹을 성사시켜 경제를 일구겠다는 이승만과 같은 지도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한미군 철수를 몸으로 막으면서 연합사 창설이라는 가장 확실한 개입 약속을 얻어낸 박정희와 같은 지도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국민은 새 버전의 이승만·박정희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다.

공동기고 : 신원식(前 합참 작전본부장), 송대성(前 세종연구소장), 김태우(前 통일연구원장), 박휘락(국민대 정치대학원장), 김형철( 공군참모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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