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관계 개선'이 곧 '韓美동맹 이완'이라는 문정인, 김대중 정부 이후 좌파정권 대외정책 모두에 개입한 핵심 인물
월스트리트저널 "한국 정부의 비밀병기"라 소개...미국에서 딴 박사학위로 교수됐지만 김정은에 찬사보내고 중국에 고문 역할해 줘
지난해 5월 미국 애틀랜틱(The Atlantic)과 인터뷰서 "한미동맹 종식 바란다"며 좌파정부의 금과옥조인 ‘균형자 외교’ 내세워
'동맹 관계' 부정하는 문정인, 南北美 상호불가침 해결된 이후 '주한미군 철수' 밑그림 그려
NLL 영토선 인정 안하고 北의 천안함 폭침도 부정..."북한이 저질렀다는 ‘확신’이야말로 형이상학 영역 속해"
야당은 한미관계 '이간질'한다며 문 특보 해임 요구...文대통령 "정부 내 다양한 의견 표출 있을 수 있다"며 거절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차기 주미(駐美)대사에 입성하지 못한 것을 두고 설왕설래 얘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南北관계 개선이 곧 韓美동맹 이완이라고 주장해온 인물이 과연 주미대사에 적합하느냐는 논란과 함께 그의 과거 발언들도 새삼 조명됐다. 최근까지 ‘주한미군 철수’를 중장기적 과제로 꼽기도 한 문 특보는 NLL 영토선 주장과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실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나타낸 바 있다.

문 특보는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좌파정부의 거의 모든 외교정책 수립에 영향력을 발휘한 인사다. 지난해 8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문 특보를 “한국 정부의 비밀병기”라 소개했다. 문 특보에게는 한미 양측의 입장을 꿰뚫고서 한국 좌파정부의 입장을 미국 정부에 설득력 있게 전달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문 특보는 사드(THAAD)배치를 반대했다. 무기성능에 신뢰성이 떨어지고 주변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그는 2017년 6월 16일 워싱턴DC 우드로윌슨센터에서 “사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미동맹이 깨진다는 인식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게 무슨 동맹이냐”며 “사드가 동맹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충분히 재검토해볼 수 있다는 발언이었다.

사드배치를 놓고 한미 간 입장 차이가 벌어진 시점에서 나온 이날 문 특보의 발언은 상당한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의 사드 배치 논란에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국무부는 톤을 낮춰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닌 문 특보 사견으로 본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청와대는 문 특보에게 주의 조치를 내렸으나 문 특보는 특보직이 “급여를 받고 일하는 것도 아닌 명예직인데다가 학자로서 발언했던 것일 뿐”이라며 수긍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문 특보의 거침없는 발언과 왕성한 활동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문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의 핵심인사 거의 모두가 문 특보를 상당히 신뢰하며 내밀히 소통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실제로 문 특보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등에 관련해 총론적인 방향 제시를 하면 현실로 이뤄지는 경우가 빈번했다. 일례로 문 특보는 2017년 9월 독일 베를린 강연에서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북한은 핵과 미사일 실험을, 그리고 한미는 연합군사훈련을 동시에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국내외에서 펼치며 끝내 관철시켰다.

문 특보는 2018년에도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 방향을 적극 알렸다. 문 특보는 지난해 초 국내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북관계만 개선되면 우리가 한미동맹에 과도하게 의존할 필요가 없다”며 “모든 옵션은 ‘온 더 테이블’이다”라고 말했다. 미북 평화협정으로 시작해 주한미군 조정문제까지도 협상 카드로 내세울 수 있다는 취지였다. 문 특보는 “보수 쪽에서 ‘우리는 미국과 영원히 같이 가야 된다’고 하는데 나는 회의적”이라며 북한의 위협만 사라지면 한미동맹에 의존할 필요도 상당 부분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문 특보는 지난해 5월 미국 시사월간지 <애틀랜틱(The Atlantic)>과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는 한미동맹이 종식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그는 “일반적으로 동맹이란 게 국제관계에선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상태”라며 “단기적으론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있어야겠지만 중장기적으론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균형자 외교’를 해야 할 운명이기 때문에 한 국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주장이다. 바로 이 ‘균형자 외교’는 노무현 정부 이후 좌파세력들이 한미일 삼각공조에서 미묘히 벗어나려 할 때마다 내세우는 금과옥조다.   

문 특보는 미국과 북한이 상호불가침 조약에 해당할 미북 평화협정, 또는 남북 종전협정을 맺으면 한반도에서 미국의 역할은 상당부분 축소된다고 국내외에서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선결과제가 해결된 이후 ‘주한미군 철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애틀랜틱>은 문 특보의 입장이 주한미군의 필요성과 주둔비용 등에 상당히 인색한 태도를 갖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과 상통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한편 문 특보는 북한을 자극할 것을 우려해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배치에 앞장서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김정은의 대외행보가 늘 ‘대단한 결단’에서 나온 것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북한 입장에 상당히 기울어진 문 특보는 2012년 10월 국내언론과의 인터뷰에서 “NLL은 영토선이 아니며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반국가' '친북' '종북'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이야말로 대한민국 헌법과 국제법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선동적 정치세력들”이라 성토했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 대해서도 문 특보는 이를 부인하는 듯한 발언을 끊임없이 했다. 2011년 7월 존 미어샤이머와 칼 포퍼의 이론들을 인용한 문 특보는 북한이 저질렀다는 ‘확신’이야말로 ‘허위’로 판명날 수 있으며 ‘반증’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미국과 영국 보수와 달리 ‘확신’을 강요하는 한국 보수는 문제가 있다며 당시 박선영 의원이 북한의 천안함 폭침을 비판한 것에 “형이상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비판했다.

야당은 문 특보의 해임을 문 대통령에게 요구해왔다. 지난해 3월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여야5당대표 오찬회동에서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미래당 대표는 문 대통령에게 “(문 특보는) 한미관계를 이간질 시키는 특보”라며 “국민들이 오해할 수 있고 국제사회에서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 파면하는게 맞다”고 요구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 내에서 다양한 의견 표출이 있을 수 있다며 거절했다.

이번에 청와대가 조윤제 주미대사의 후임으로 문 특보를 내정해 보름 이상 인선 절차를 거치고도 막판에 성사되지 못한 것을 두고 여러 이설들이 흘러 나오고 있다. 하지만 '주미대사직을 고사했다'는 문 특보는 계속해서 문 대통령 최측근으로서 '남북관계 개선'과 '한미동맹 성격전환'이라는 대외정책의 전체 방향을 가늠지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 실세들은 거의 모두가 ‘연정(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라인’으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도 입김이 컸던 문 특보가 핵심에 있다.

문 특보는 제주 오현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연세대학교 철학과 학사,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는 사우디아라비아 관련 논문으로 받은 것으로 이후 문 특보는 미국 켄터키대학 등에서 중동 정치를 주로 강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4년 문 특보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부임과 동시에 한국정치학회 국제위원장을 맡았다. 중국 개혁개방포럼 국제고문을 맡은 게 이채롭다. 한국에선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장을 지냈고,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 옹호자로 좌파정부와 긴밀히 호흡해왔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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