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논란'보다 더 중요한 게 문학적 허명(虛名)에 대한 검증
-대표작 ‘만인보’ 4001편에서 대한민국 현대사 무한 저주
-이승만-박정희는 맹렬히 비판, 박헌영-조봉암 같은 좌익은 무한 옹호
-대한민국에 해악 끼치고 얻은 문학적 명성 가소로워
-백낙청의 비평적 지원 등 좌향좌 문단 구조도 문제

조우석 객원칼럼니스트(KBS 이사)
조우석 객원 칼럼니스트

여성시인 최영미가 문예지에 발표한 시 ‘괴물’의 문제제기는 한 차례 소동으로 그쳐선 안 된다. 이 문학권력의 정말 추악한 뒷모습, 즉 대한민국 현대사를 무한 저주하면서 얻어낸 명성의 실체까지 밝혀야 마땅하며 그래야 건강한 사회, 건강한 문학이 소생한다.

최영미는 ‘괴물’의 주인공을 ‘En 선생’이라고 표현했지만, 중앙일보가 이달 8일 보도한 대로 'En 선생'은 시인 고은(84)이 맞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문제는 그녀 시에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라고 표현된 “똥물”이 20세기 한국인의 삶과 대한민국 현대사 전체를 온통 더럽혀온 점이다.

무엇보다 고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만인보(萬人譜)가 문제다. ‘만인보’는 1986년 첫 발표 이래 시집 30권에 수록시 총 4001편으로 구성된 방대한 연작 시집이다. 말 그대로 “만인의 삶에 대한 기록”이란 뜻이며, 한국사에 명멸한 인간 군상의 부침-영욕을 담아냈다고 설명된다. 문단 내의 평가도 높아 제3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평론가 김병익의 경우 “시로 쓴 민족사의 벽화”이며 피카소의 ‘게르니카’보다 대단하다고 거품을 물었는데, 모두가 그렇게 고은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그게 맞는 소릴까? 거꾸로가 맞다. ‘만인보’ 전체가 현대사에 대한 무한저주로 가득하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라는 인식 탓이다.

현대사는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짓밟혔다는 노무현 식 자학(自虐)의 연속인데, 저주만이 문제가 아니라 이념 편향이 너무도 심하고 집요한 점이다. 일테면 현대사에서 좌익에 섰던 사람은 무한 칭송을 거듭하는 반면 대한민국 정통인 우익 진영 인사는 먹칠하는 것으로 일관하니 ‘좌익=선(善)’, ‘우익=악(惡)죄’의 잘못된 이분법이 ‘만인보’ 전체에 춤을 춘다.

우선 건국 대통령 이승만부터 그는 내리친다. 그는 “벗어나지 못한 봉건”이며, 동시에 “나라의 불행을 잘 썼”던 사람이고, “나라의 모순을 잘 쓰고 남겼”던 사람으로 내내 묘사(‘만인보’ 18권 ‘이승만’ )된다. 물론 전혀 근거 없는 소리이거나, 정반대로 된 해석에 불과하다.

‘만인보’ 18권 ‘석낙구’란 시에서도 최악의 말을 이승만에게 다시 뒤집어씌운다. “하와이 막일꾼 동포들의 돈을 마구 걷어 들였다/명문대학 학위도 척척 받으며/이승만 옹 가는 데마다 동포들 당파를 만들었다 갈라섰다 그놈의 영감 땡감”. 영감 땡감으로 끝나는 마무리까지 고약한데, 이승만을 하와이 깡패로 표현했던 좌익들의 동영상 ‘백년전쟁’ 수준이다.

당연히 부국 대통령 박정희 역시 몰이해와 지탄의 대상인데, 이걸 시문학 작품이라고 할 수 있나 하는 개탄도 나올 판이다. “일본 육군의 모범장교였다 천황의 금시계를 받았다/좌익이었다/좌익을 팔아넘긴 우익이었다/기구한 육군 소장으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심지어 그의 외모까지도 비하하는데, 고향 밭두렁의 바위를 닮아 “거무튀튀 척박했다”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는다(‘만인보’ 11권 ‘박정희’).

맞다. 그건 고은의 좌익 본능의 반영인데, 좌익 인물에 대한 무조건 숭배에서 새삼 재확인된다. 심지어 좌익들의 애인까지도 덩달아 칭찬하는 일도 비일비재다. 일테면 남로당 박헌영과 그의 애인 주세죽을 포함해 최창익-허정숙 커플, 김삼룡-이순금 커플 등을 10여명 나열한 뒤 이렇게 대놓고 찬양하는 시 ‘주세죽’(‘만인보’18권)도 있다.

“붉은 사람들…//…그 동백꽃들//그들은 한국 사회주의 혁명동지이고/혁명부부였다” 그런 식이다. 답답하다. 아니 역겹다. 문학으로 포장된 이적(利敵)행위가 분명하다. 실은 조봉암의 애인을 단독으로 찬양하는 시 ‘김이옥’(‘만인보’ 10권) 도 그는 썼다. 이렇게 달콤하게 시작한다.

“조봉암의 애인 김이옥은 아름다웠다//강화도 부농의 딸/경성여고보 졸업/이화여전 음악과에 다녔다…”. ‘만인보’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바쳐진 시도 있는데, 물론 칭송 일변도다. “고난이 필요한 시대 그는 고난의 과녁”이었고, 1971년 대선에서 “그는 혼자서도 백만 인파”였다는 듣기 거북한 수준의 장광설로 일관한다.

뿐인가? 정치인 김영삼 장준하 정일형 이해찬 이부영 김정남, 작곡가 윤이상에서 노동자 전태일과 그의 모친 이소선, 민중신학가 안병무 서남동, 신부 함세웅, 판화가 오윤, 평론가 백낙청 염무웅, 목사 김재준 김원룡, 출판인 박맹호 김언호 등은 무조건 호의적으로 그려진다.

반면 우익 진영에 섰던 이들에겐 예외 없이 비판적인데, 대표적으로 선우기성(서북청년회 지도자)의 사례가 그렇다. “백색테러가 시작되었다/유혈낭자/군정청 경무부장 조병옥의 지원을 받았다//선우기성/점점 살벌해졌다 인간보다 비인간이 더 치열했다//38 이남이 떨어댔다” (‘만인보’ 18권 ‘선우기성’) 고은은 확실히 좌익 세상에서 사는 게 어울릴 위인이 맞다.

오해 마시라. ‘만인보’ 일부만이 그런 건 아닐까 의문이 들 것이다. 아니다. 전체가 이렇다. 그럼 왜 이런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을까? 문단이야말로 음습한 자폐적 공간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런 이유 때문에 외부인의 건강한 시선이 허용되지 않아왔다. 그게 화를 키웠다.

물론 고은, 그가 가진 강점은 있다. 놀라운 박람강기(博覽强記)에 힘입은 좌익 세상에 대한 자기 확신과 헌신적 자세가 그것인데, 그건 자유주의 문학 진영엔 없는 종류의 것이다. 분명한 건 고은의 시세계는 건강한 문학이 아니고, 내 눈엔 명백한 반역의 문학이 맞다. 그걸 눈 감아온 문단도 같은 혐의를 피할 수 없다.

본래 고은은 승려 생활을 했고, 술 퍼 마시고 하는 기행으로 악명이 높았다. 1960년대에 환속했고, 1970년대 이후엔 민주화 투사로 변신을 했다. 그런 그의 문학적 허명(虛名)이 높아진 배경에는 창작과비평 백낙청의 비평적 지원이 컸다. 하지만 때가 됐다. 고은의 음습한 뒷모습을 더 캐야 할 때다. 거짓이 무너질 때 더 크고 요란한 소리를 내는 법이다. 필자인 나의 지적이 억울한가? 고은, 이제 당신이 내 질문에 답할 차례다.

조우석 객원 칼럼니스트(KBS 이사)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