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희 칼럼] ‘혼란과 타락의 시대’가 끝나면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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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8.08 09:00:00
  • 최종수정 2019.08.0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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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형제였는지 누가 적이었는지, 심지어 누가 쓰레기였는지 판가름날 것
‘판단’의 가이드는 절대 정의, 애국심, 정직, 지조, 품위 등의 보편적 가치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1917년 10월 혁명 후 러시아에서 내전이 일어났다. 제정 러시아의 부활을 꿈꾸는 백군과 공산주의 적군 사이의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볼셰비키 공산주의들의 승리로 끝난다. 내전에 승리함으로써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은 비로소 완성된다. 어쩌면 이 내전은 러시아가 공산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고비였을 수도 있다. 비록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이었지만 그 과정과 결과가 우리의 역사와 여러 가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 중 그 전쟁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만 여러 문학 작품, 영화 등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엿볼 뿐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의 시대적 배경도 바로 이 러시아 내전이다. 러시아 작가의 이 소설을 영국의 데이비드 린 감독이 만든 영화 <닥터 지바고>를 보고도 러시아 내전에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시대적 상황에 휩쓸려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인생이 비극적으로 흘러가는 남녀의 운명과 아름다운 설원 장면들만을 기억에 담을 뿐이다.

러시아 내전의 상황을 가장 절실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문학 작품이 있다. 미하엘 숄로호프의 소설 <고요한 돈강>이다. 숄로호프는 이 작품으로 1965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대하소설 분량의 이 작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백군과 적군의 전쟁 이야기로 이뤄져 있다. 이 소설을 읽노라면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치열하게 전쟁을 하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러시아 카자크들은 주로 백군이었지만 목적에 부합한다면 때로 적군에 가담하기도 했다. 농민인 그들이 전쟁에 가담하는 목적이 이념 수호가 아닌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또 자신의 땅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심정은 적군에 가담한 카자크들도 마찬가지였다. 자기 가족의 목숨과 땅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얼마 전까지 이웃이었던 상대를 향해 목숨을 걸고 총칼을 휘둘러야 했다. 그런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사실 장기의 말에 불과해. 말은 사람의 손이 자기를 어디에 놓아줄지 모르는 거야. 예를 들면 나 같은 건 본부에서 무엇을 하는 지 짐작조차 안 가네.” - 소설 <고요한 돈강> 중에서

러시아 내전에서 ‘장기 말을 놓는 사람의 손’ 역할을 했던 인물 중 한 사람은 알렉산드르 콜차크(1874〜1920) 제독이다. 그는 제정 러시아 시대에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해군 장교로서 블라디보스토크 극동함대 사령부에 근무하며 러일전쟁에 참전했다. 우리 역사와도 전혀 무관한 사람은 아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 해군과의 전투에서 전공을 세우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러시아의 영웅이 되었다.

그런데 그의 삶은 러시아 혁명 후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국민적 영웅이었던 그는 우선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치욕을 당하게 된다. 이제껏 조국 러시아를 위해 헌신했던 그의 모든 업적은 거부당하고 제독의 자리에서는 강제로 해임되었다. 공산주의자들 가운데 비교적 온건했던 멘셰비키 정부의 수반 케렌스키는 그를 국외로 추방하였다.

한때 미국으로 망명한 콜차크는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웬만한 사람들 같으면 그에 만족하고 후일을 도모하며 살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콜차크는 그런 평범한 삶을 택하지 않았다. 그는 1918년 러시아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병력을 모아 백군의 사령관이 되었다. 그는 왜 러시아로 돌아왔을까? 백군이 승리하면 자신이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있다는 야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사태 파악을 제대로 못한 무모함 때문이었을까? 그것보다는 그의 국가에 대한 투철한 애국심과 황제에 대한 충성심, 그리고 자신이 겪은 사회주의의 부당함과 불합리에 대한 반감이 그를 사지(死地)인 러시아로 이끌었을 것이다.

콜차크 제독의 백군은 모스크바가 있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진격하여 한때 볼가강 근처까지 다가가기도 했다. 볼가강은 모스크바에서 기차로 하루도 안 걸리는 도시들을 지나고 있다. 그만하면 승산이 있어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승부는 예상치 못한 변수에 의해 결정되곤 한다. 협력하기로 했던 체코 군단의 배신 등으로 콜차크는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옴스크 시내를 가로지르는 얼어붙은 이쉬타르 강

결국 그는 사령부가 있던 옴스크를 적군에게 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혹한의 한겨울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 더 깊은 곳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시베리아의 신도시 노보시비르스크를 거쳐 그가 도착한 곳은 이르쿠츠크. 바이칼 호수 인근에 있는 이 도시는 시속 100킬로미터 넘는 지금 기차로도 옴스크에서 2박3일이 걸리는 거리에 있다. 이르쿠츠크 역에서 콜차크는 적군에게 체포되었다. 그를 구하러 백군 부대가 이르쿠츠크로 접근해온다는 소식 등에 마음이 급해진 적군은 그를 총살하여 앙가라 강 얼음을 깨고 시신을 던져버렸다. 1920년 2월의 일이다.

물론 공산 적군 측의 입장에서 보면 콜차크 제독은 내란 선동자이며 혁명의 최대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또 적군에 가담하여 내란에 참전했다가 희생당한 사람들의 유족 입장에서 보면 철천지 원수로 여겨질 수도 있다. 러시아 공산주의 정부는 옴스크에 내란 당시 백군에게 희생된 적군 장병들을 추모하는 ‘꺼지지 않는 불’을 만들어놓았다. 생각해보면 냉전 당시로서 이는 당연한 조치였다. 시베리아 한복판의 도시 옴스크는 백군의 사령부가 있던 곳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더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러시아 내전 중 희생된 적군 장병들을 추모하는 꺼지지 않는 불(옴스크 시내)

그런데 이렇게 공산주의 소련에서 반역자 취급을 받던 콜차크 제독은 2008년 영화의 주인공이 되면서 화려한 부활을 했다. <제독의 연인>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되었던 영화이다. 우리나라에는 ‘연인’과의 러브 스토리가 강조된 발췌본이 소개되었지만 실제 이 영화는 <Admiral(제독)>로 콜차크 제독의 영웅적 일대기를 담은 대작이다.

이 영화는 러시아 영화 제작 100주년을 기념작으로 2천만 달러라는 거액의 제작비가 투입되었다. 1년 반 동안 바다, 육지 합해서 총 3천만 킬로미터의 로케이션이 진행되었고 철저한 고증에 의한 엄청난 양의 의상 등도 화제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 영화는 2009년 베를린 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했다.

이르쿠츠크 즈나멘스키 수도원 앞에 서 있는 콜차크 제독의 동상

세르게이 사벤코프 감독의 작품인 이 영화는 러시아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다. 그런데 러시아 정부가 영화 제작 100주년 기념작의 주인공으로 백군 사령관 ‘알렉산드르 콜차크’ 제독을 선정했다는 것은 대단히 시사적인 일이다. 기획 당시에는 푸틴 대통령이 집권 중이었다. 독일 함대를 무찌르는 장면을 통해 ‘강한 러시아’를 강조하고자 하는 푸틴의 의도가 담긴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러시아가 세계적으로 세력을 가장 크게 떨친 때는 전 지구의 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냉전 시대 아닌가? 단지 ‘강한 러시아’를 보여주고자 함이었다면 레닌이나 스탈린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콜차크 제독의 영화는 세월이 지나고 세상의 조류가 이리저리 뒤섞여 흘러도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존중하는 가치는 결국 인정을 받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도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존중받는 가치란 무엇일까? 그것은 절대 정의, 애국심, 정직, 지조, 품위 등일 것이다.

콜차크 제독의 부하들은 그의 시신을 앙가라 강에서 건져 이르쿠츠크 즈나멘스키 수도원 근처에 매장했다. 즈나멘스키 수도원에는 귀족의 작위를 버린 채 목숨을 걸고, 유형된 남편을 따라 시베리아 유형지에 온 ‘제카브리스트’의 아내들의 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아내들이 지조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볼 때 수도원 앞에 서 있는 콜차크 제독의 동상은 무척 잘 어울려 보인다.

이르쿠츠크 즈나멘스키 수도원

러시아 내전에서 적군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조국을 무너뜨린 적군에 서슴없이 가담했던 제정 러시아 장교들 덕분이라는 평가도 있다. 조국에 대한 지조를 지키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것이다. 소설 <고요한 돈강>의 카자크들은 자신의 가족과 농토를 지키기 위해 반볼셰비키 백군의 주축을 이루었다. 현실에서 볼셰비키가 승리하면서 그 지역에서 카자크 말살 정책이 실시되었다. 이런 엄혹한 시대에 지조를 지키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래서일까, <고요한 돈강>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실려 있다.

"형제들이여, 혼란과 타락의 시대에는 형제를 판단하지 말라." - 소설 <고요한 돈강> 중에서

지금 우리나라는 혼란과 타락 속에서 헤매고 있다. 그러나 혼란과 타락의 시대는 언젠가는 끝이 난다. 혼란과 타락의 시대가 끝나면 누가 형제였는지 누가 적이었는지, 심지어는 누가 쓰레기였는지 확연히 판가름이 나게 된다. ‘판단’의 시기는 반드시 돌아온다. 그때 화려하게 부활한 콜차크 제독처럼 될 것인지 동상이 끌어내려져 땅에 뒹구는 스탈린처럼 될 것인지는 혼란과 타락의 시기에 미리 결정해야 할 일이다. 그 결정을 위한 가이드로 절대 정의, 애국심, 정직, 지조, 품위 등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존중받는 가치들을 다시 한번 강조해본다.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다상량인문학당 대표 · 역사칼럼니스트) /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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