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소재 日 수입에 절대적 의존...국산화율 높이려 해도 日 의존도 벗어나기 힘들다
미래성장동력 핵심 소재 탄소섬유도 위험...日의 고품질 대체재 찾기 어려워
주요 제조업, 철강, 공작기계 등도 생산 차질 전망
일본이 예고한 대로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우대국 명단)’에서 제외했다. 이에 한국경제신문이 조사한 결과 국내 기업들이 일본에서 83개 핵심 품목을 조달하는 데 큰 차질을 빚을 것으로 확인됐다. 모두 연간 대일(對日) 수입액이 1000만달러 이상이고 일본 수입 비중이 50% 이상인 품목들이다. 특히 한국 경제를 견인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의 소재·부품 장비가 절반에 육박한다.
반도체 소재 日 수입에 절대적 의존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83개 품목 중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부품·장비만 37개(44.6%)가 포함돼 있다. 실리콘 웨이퍼, 블랭크 마스크, 에폭시 수지 등 핵심 소재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증착·노광·도포·식각·검사 등 주요 공정에도 빠짐없이 고위험 품목이 있었다. 수입액으로는 실리콘 웨이퍼가 8억 4870만달러로 가장 많았다.
특히 실리콘 웨이퍼는 반도체의 기초재료로 일본이 세계시장의 53%를 점유하고 있다. 국내 주요 수입업체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이다. 특히 SK하이닉스는 2016년 한 해에만 웨이퍼 구매에 4877억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반도체 소재 구매액(3조8099억원)의 13%에 해당하는 액수다.
그 뒤로는 반도체 소자 분석기 등 검사 장비(4억6330만달러), 디스플레이 압착 공정에 쓰이는 실리콘 러버 시트(3억5740만달러) 순이었다.
일본 수입 비중으로는 반도체 디바이스 제조에 쓰이는 레이저작동식 기기(100%)가 가장 높았다. 평판디스플레이용 연마기·광택기(99.9%), 액정표시장치(LCD) 제조용 식각 기기(99.4%)가 뒤를 이어 사실상 반도체의 전 공정이 일본에 의존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핵심 소재는 물론 그 소재를 만드는 기기, 재료도 일본 수입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실리콘 웨이퍼 제조에 쓰이는 식각·세척 기기(92.9%), 연마기·광택기(88.9%), 석영 도가니(99.2%) 등의 일본 수입 비중이 90%를 넘었다.
주요 제조업, 철강, 공작기계 등도 생산 차질 전망
석유화학·화학제품(8개), 공작기계(7개), 철강·알루미늄(7개) 등 주요 제조업에도 타격이 작지 않다. 석유화학·화학제품 분야에선 자일렌, 톨루엔 등 합성수지 기초 원료가 다수 포함됐다.
공작기계의 7개 품목은 금속 가공용 머시닝센터(자동공구 교환장치를 장착한 공작기계)와 컴퓨터 수치제어(CNC) 선반·연삭기 등이다. 공작기계는 자동차나 선박에 필요한 부품을 생산할 때 쓰는 정밀 장비다. 독일 등에서 장비를 대체 수입할 수 있지만, 가격이 일본산보다 비싸 대부분 중견·중소기업인 부품업체 입장에서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또한 국내 공작기계 업체는 물론, 관련 장비를 많이 쓰는 자동차, 조선, 건설장비 등 부문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철강은 주로 특수강 분야 중간재가 고위험 품목으로 분류됐다. 텅스텐·몰리브데넘 등 광물·광물성 생산품 6개도 일본 수입 의존도가 높았다. 차세대 주력산업인 2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분리막’ 역시 여파가 클 것으로 전망된다. 분리막의 경우 일본 수입액이 작년 1억 4780만달러, 수입 비중은 83.4%에 달했다. 분리막은 일본기업이 전체 시장의 50%를 차지하며, 국내기업인 SK이노베이션의 점유율은 약 9%에 불과하다.
수입 의존도가 50% 미만인 전략물자도 안심할 수 없다. 한국이 미래성장동력으로 꼽는 수소전기차의 핵심, 수소탱크 제조 등에 쓰이는 탄소섬유가 대표적이다. 도레이사가 세계 시장 점유율 40%로 1위를 차지하는 등 데이진, 미쓰비시케미컬 등 일본 기업 3사가 전 세계 시장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탄소섬유의 일본 수입 비중은 39%에 그치지만, 고품질이 필요한 분야는 일본 도레이 등의 제품을 대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안덕관 기자 adk2@pennmik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