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로 수문 열리는데 지하 48m 작업자들은 이 사실 전혀 몰라...사고 근본 원인은 소통 안 된 탓
서울시, 사고 사실 뒤늦게 인지해...3명 사망한 사건 놓고 양천구청 서울시 현대건설 책임전가 급급

1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 배수시설 공사 현장 수몰지에서 실종자 수색과 시신 수습을 마친 119 구조대원들이 크레인을 이용해 지상으로 돌아오고 있다./연합뉴스

전날 오전 갑자기 내린 폭우로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펌프장에서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근로자 2명이 1일 숨진 채 발견됐다. 전날 먼저 발견된 60대 한국인 근로자 1명도 병원에 후송됐지만 끝내 사망했다. 이를 두고 시공사인 현대건설과 시설 관리자인 양천구청이 책임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서울시도 돌발상황에 전혀 대비가 안 된 모습을 보여 면책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양천구청은 1일 새벽 5시 42분과 5시 47분에 양천구 목동 빗물펌프장 배수시설에서 현대건설 직원 안모(30)씨와 미얀마 국적 근로자 M(24)씨 시신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안씨와 M씨의 시신은 목동운동장 인근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 등 방재시설 확충공사’ 현장의 저류시설에서 발견됐다. 소방당국은 이날 새벽 4시 30분까지 수로 배수작업을 통해 수위를 1.4m까지 낮춘 뒤 배수시설 터널 안에서 실종자 시신을 찾았다. 앞서 구모씨는 전날 10시 26분쯤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사고의 근본 원인은 소통 안 된 탓

소방당국과 서울시, 시공사 등에 따르면 사고 개요는 다음과 같다. 전날 오전 7시 10분까지는 비가 내리지 않아 협력업체 인부 2명이 일상 점검을 위해 지하 터널에 내려갔다. 하지만 7시 30분 서울에 호우주의보가 발효되면서 양천구 관계자는 7시 38분 현대건설에 전화해 수문이 곧 개방될 것이라고 알렸다. 이에 현대건설 담당자는 수문 상황을 볼 수 있는 제어실로 향했지만 비밀번호 등을 물어보는 사이 7시 40분쯤 수문이 열렸다.

수문 개방예정 사실을 알린 시간에서 실제 수문이 열리기까지 2분 남짓 남은 상황이다. 설사 보고가 이뤄졌다 한들, 투입된 인부 2명이 지하 터널에서 빠져나오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에 따라 현대건설 소속 안씨는 오전 7시 50분 투입된 인부에게 수문 개방 소식을 알리러 지하 터널로 내려갔다. 사고 현장은 지하 48미터 밑에 위치해 무전이 닿지 않아 인편을 통해서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곧이어 안씨의 연락도 끊겼다. 현장에 이 같은 상황에 대응할 만한 상황대책 매뉴얼은 없었다.

현장의 안전매뉴얼도 준공 이후 운영할 때의 초기 매뉴얼만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공사장 안전수칙은 있었지만 사고 발생 시 인부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행동수칙은 없었다. 현장에는 튜브 등 최소한의 안전 장비도 없었다. 인부들의 안전 장비는 머리에 쓴 안전모가 유일했다.

서울시, 현대건설, 양천구 서로에게 책임전가

이 같은 참변에도 발주처인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와 시공사인 현대건설, 관리 주체인 양천구는 계약·절차를 따지며 책임 전가에 급급한 모습이다. 사고상황을 설명하는 브리핑 자리에서 이들은 ‘왜 폭우 등의 상황을 고려해 수문을 닫지 않았느냐’는 쟁점을 두고 다퉜다. 현대건설은 “수문 개방에 아무런 제한 권한이 없고 패스워드도 모른다”고 밝혔다. 수문 개폐 권환을 가진 양천구에 이번 사태의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다.

양천구는 즉각 반박했다. 지금은 공사 진행 중이므로 양천구에 시설물이 인수인계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지금껏 현대건설 측에서 언제 지하 터널에 인부를 투입하는지 연락받은 적도 없다며, 수위 운영에 관한 것만 양천구가 관리한다고 반박했다.

현대건설은 폭우를 알고도 수문 조작 권한이 없어 참사를 막을 수 없었고, 양천구는 작업자가 투입된 사실을 전파받지 못해 절차대로 수문을 개방했다는 말만 반복한 것이다.

현장에 있던 실종자 가족은 "수문을 닫아야 하는데 서로 어떤 조치를 해야겠다는 소통을 하지 않은 것인가"라며 "인명이 달린 문제인데 상황실을 운영하는 업체나 구청이나 현대건설이 다 따로 놀고 있다"고 비판했다.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31일 갑작스러운 폭우로 작업자들이 고립된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 펌프장에서 사고발생 현황을 보고받고 있다./연합뉴스

사고 현장을 방문한 박원순 시장은 "시장으로서 사망자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에게 사과와 위로 말씀드린다"며 "모든 행정력을 총동원해 실종자를 이른 시간 안에 구조하는 게 급선무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발주처인 서울시 역시 책임 회피에 자유로울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폭우로 인해 현장의 위험수위가 높아져 사고가 우려되면, 관리 감독의 최종 책임자인 서울시가 나서서 수문을 닫도록 지시하는 게 옳다. 그러나 서울시는 오전 8시가 넘어서야 인부가 터널에 갇히고 수문이 개방된 사실을 인지했다. 무방비 상태로 사고를 방관한 셈이다.

이번 사고는 지난 2013년 서울 동작구 노량진 수몰 사고의 재연이란 지적을 받는다. 당시 터널 안에 있던 근로자들이 강물에 휩쓸려 7명이 사망한 사고로, 작업 중지 등 지시를 내리지 않고 작업을 강행해 서울시의 안전불감증과 행정 무능이 비판받기도 했다. 당시 박원순 시장은 두 번 다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6년에는 열악한 작업환경과 관리 소홀 때문에 젊은 청년이 사망하는 등 서울시의 행정 무능으로 발생하는 인재(人災)가 이어지고 있다.

안덕관 기자 adk2@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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