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규, 2012-2018년 대법원이 예외적・보충적 법리로 '기존 판결 뒤집기' 했다고 주장
30일 페이스북에 원고지 100여장 분량 글 나눠 올려...법조계 인사들 공유하며 돌려보는 듯
김태규 "국가간 조약도 체결되는 경우 국내법과 같은 효력 갖는데...2012년-2018년 대법원 이를 흔들어"
"나라면 1, 2심 판단(기각)대로 했을 것...일본 두둔해서 그런 것 아니라 보편적 법의 잣대 판단"
미국서 징용 손해배상 청구 기각된 사례도 소개..."원고가 받아야 할 보상은 앞으로 올 평화와 교환됐다"
법조계 파장 이어질 듯...현직 법관・판사들 "법리적으로 명쾌하고 시원" "인용한 미국 판결 문구도 명문" 평가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 (사진 = 김태규 판사 페이스북 캡처)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 (사진 = 김태규 판사 페이스북 캡처)

지난해 10월 대법원 징용 배상 판결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현직 판사의 분석이 나왔다. 해당 판결은 2012년 징용 배상 파기환송과 더불어, 일본이 수출특혜 폐지에 나선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징용배상판결을 살펴보기’라는 글을 2만1200여자에 걸쳐 나눠올렸다. 그는 글 작성 이유로 “징용 판결 내용이 궁금하기도 하고, 주위에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어 판결문을 정리하다보니 일이 커졌다. 외교분쟁은 양국 정부 간 충돌에서 발생하는데, 법원 판단이 일부 원인 제공을 했다는 것이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라고 했다. 법조계 인사들과 자유우파 성향인사들의 ‘좋아요’와 공유도 이어졌다.

김태규, 2012년・2018년 대법원 판결 두고 “한일 청구권협정 위상 흔드는 판결”

김 부장판사가 비판대상으로 삼은 것은 지난해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확정된 신일본제철 배상책임 인정 판결이다. 김 부장판사는 2012년과 지난해 대법원 판결이 한일 청구권 협정의 위상을 흔드는 판결이라고 봤다. 국가간 조약도 체결이 되는 경우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는데, 이를 흔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가 일괄처리협정을 통해 개인 청구권을 제한하는 것은 위법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대법원 판결에서 반대의견을 나타낸 대법관들이 그런 입장에 있다”라며 “최초 대법원 판결(2012년 주심 김능환 당시 대법관의 신일본제철 관련 파기환송)은 미리 결론을 정하고 그곳에 논리를 무리하게 가져다 쓴 느낌”이라고 비판했다.

2012년 대법원 판결 이전 1심과 2심은 징용 손해배상을 원고(징용 피해자) 패소판결한 바 있다. 김 부장판사도 “나라면 2012년 대법원이 파기환송하기 전의 1, 2심판단대로 했을 것”이라면서도 “원고들의 입장을 모르거나 일본을 두둔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현존하는 법률, 법학의 일반적인 법리 그리고 대법원과 각급 법원이 쌓아온 선례를 통해 보편적인 법의 잣대로 판단하면 그리 가는 것이 맞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일본은 1965년 청구권 협정 당시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를 제공하고 “청구권 관련 문제는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몇몇 역대 정부와 좌파 성향 단체들에서는 “일본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고 지적해왔다. 2005년에는 소위 ‘태평양 피해자 그룹’까지 나서 징용과 위안부 등 배상을 문제삼았지만, 노무현 정부에서 열린 민관 공동위원회는 “징용 피해자 배상 관련 사항은 한일 청구권협정에 반영됐다”고 발표하며 마무리된 것처럼 보였다. 다만 김 부장판사가 문제삼은 2012년과 지난해 대법원 판결 이후, 징용 피해자들은 일본 기업들의 재산 강제집행 등에 나서고 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및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 선고 예정된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를 비롯한 피해자 가족들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및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 선고 예정된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를 비롯한 피해자 가족들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대법원이 판결 뒤집은 근거는 보충적 법리...미국은 비슷한 소송 있었지만 기각”

김 부장판사는 대법원 판결 비판 근거로 크게 ▲민법 상 예외적이고 보충적으로 활용되는 법리들을 사용해 장벽(소멸시효, 법인격 법리, 일본 법원 판결 기판력 등)을 피해갔다 ▲미국에서도 전후 일본 회사를 상대로 한 노역 손해배상 소송이 있었지만 기각됐다 라는 2가지 점을 들었다.

김 부장판사는 대법원이 장벽을 넘은 근거가 ‘신의칙’이라고 봤다. 그에 따르면, 일본에 대한 청구권은 민법 제766조에서 정하는 불법행위의 소멸시효 기간을 훌쩍 넘겼다. 또 2012년 판결 대상이었던 신일본제철은 후지제철 등과 합병한 회사로, 구 일본제철과 다른 회사이기에 당사자성도 인정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한 일본 판결도 있어 기판력(확정판결을 받은 사항에 대해서는 후에 다른 법원에 다시 제소되더라도 이전 재판내용과 모순되는 판단을 할 수 없도록 구속하는 효력)도 있었다. 다만 2012년과 지난해 대법원은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공서양속위반 금지 원칙 등 보충적 원칙들로 이 ‘장벽’들을 넘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의 청구권 소송도 소개했다. 김 부장판사에 따르면, 1941년 태평양전쟁 포로였던 제임스 킹(James King)이라는 병사는 낮에는 일본 철강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포로수용소에 수감돼 고통받다 종전과 함께 석방됐다. 그를 포함한 피해자들이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에 일본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지만, 당시 미국 연방법원은 “일본과의 평화협정이 원고들이 주장하는 주장을 막고 있으나, 그를 통해 원고가 받아야 할 충분한 보상은 앞으로 올 평화와 교환되었다”고 판결했다. 김 부장판사는 이를 두고 “원고들의 희생에 무한한 감사를 표하면서도 그들의 청구는 기각한 것”이라고 했다.

원고지 100장 분량 글, 법조계에 널리 읽혀지는 듯...김태규 부장판사가 인용한 미국 판결문 공부했다는 댓글도

김 부장판사의 글은 법조계 널리 읽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소개한 문화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 재경지법 판사는 “법리적으로 명쾌하고 시원한 글”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 매체는 한 고위 법관이 “김 부장판사가 인용한 미국 법원의 판결 문구는 널리 알려질 필요가 있는 명문”이라고 평가했다는 점도 인용했다.

김 부장판사가 인용한 미국 판결문을 찾아봤다는 페이스북 시민 댓글도 있었다. 그는 “(김 부장판사가 인용한) 미 연방법원의 판결문을 찾아 공부해봤다. 판결문 말미에 쓰인 “역사는 그 흥정의 지혜를 증명해왔다(History has vindicated the wisdom of that bargain)도 명문이다”라며 “판사 개인의 의견을 덧붙이는데 있어 이처럼 훌륭하고 지혜로운 말이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2012년 김능환 대법관보다 더) 건국하는 심정으로 작성된 판결문 같다”고 말했다.

김종형 기자 kj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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