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삼 칼럼] 전직 빨갱이의 뜨거운 고백, “박정희가 옳았다”
[김용삼 칼럼] 전직 빨갱이의 뜨거운 고백, “박정희가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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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없는 투쟁을 통해, 이 땅에서 공산주의자들과 피를 흘리며, 때로는 사상전을 벌이며 대한민국을 건국했고, 지켜왔다. 그런데, ‘반공 대한민국’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대놓고 북한을 찬양한다.
공산 전체주의자들이 대한민국을 침략하기 위해 열심히 칼을 갈고, 핵·미사일·대량살상무기를 재여 놓고 있는데 담을 허물고, 대문을 열고, 지키는 자들의 무기를 빼앗고, 너무 열심히 지키면 안 된다고 윽박지르고, 열심히 지키던 부대를 해산한다. 박정희는 “미친개에겐 몽둥이가 약이라 했는데, 현 대통령은 ”미친개에겐 선물을 줘야 물지 않는다“고 국민 세금으로 잔뜩 선물을 갖다 안긴다

오랜만에 화끈하고 속이 뻥 뚫리는 책이 나왔다. 이강호라는 저자가 지은 『박정희가 옳았다』라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이성)와 가슴(감성)이 모두 부글부글 끓는 듯한 감동을 받았다.

내가 저자 이강호를 잘 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자주 만나 대화를 하고 함께 공동의 일을 한 이강호는 가명이고 본명은 따로 있다. 그는 한 시절 유명한 ‘빨갱이’였다. 그저그런 시시껄렁한 빨갱이가 아니었다.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소굴이나 다름없던 서울대에서도 알아주는, 한 가락 하는 빨갱이였다. 북한과 김일성·김정일을 추종하는 저질·변태·사이비 종교적 전체주의자가 아니라, 마르크스 등등을 추종하는 오리지널 정통 공산주의자였다.

그런 빨갱이 두목 급이 전향을 했다. 그에게 ‘전향’이란 말은 합당하지 않다. 이제야 원래 있는 그대로의 세상으로 돌아온 것이니 ‘정상성의 회복’이 맞는 용어다. 그의 ‘정상성 회복’은 어느 날 느닷없이 번갯불 맞고 콩 튀듯이 전향한 것이 아니다.

그는 오랜 기간 수많은 좌절과 고통, 불면의 밤을 지샜다고 고백한다. 마약을 끊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런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왜? 자신의 생명까지 바쳐 ‘공산혁명’을 하려 했고, 그 길이야말로 고통 받는 민중을 구원하는 방법이라는 메시아적 믿음까지 합쳐진 세계와 태를 갈라야 했기 때문이다.

전직 빨갱이의 용감한 고백

그것은 자신의 인생과 청춘과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과정이었다. 그런 인고의 시간을 거쳐 그는 정상성을 회복했다. 정상성이 뭐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따지고보면 별 거 아니다. 올바른 생각과 행동과 사고(思考)를 통해 우리 사회를 사실(fact)에 입각하여 정확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는 작심하고 『박정희가 옳았다』라는 용감한 책을 펴냈다. 그가 이 책을 쓰겠다고 작심했을 때 나는 옆에서 열심히 그의 저술을 부추겼다.

이 책은 자신이 한 시절 공산혁명을 통해 뒤엎으려 했던 박정희 시대를 있는 그대로의 사실적 눈으로 바라본 자기 고백이다. 전직 공산주의자, 그것도 지옥불 가장 가까이까지 갔던 ‘골수 빨갱이’가 과거를 참회하면서 쓴 글이기에 더욱 중량감이 느껴진다.

그는 말한다. 5·16과 10월유신은 민주주의 형식만으로 재단하면 시비가 많이 일어나지만, 한국 자유민주체제의 본질과 근간을 수호하고 강화했다는 점에서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그는 또 외친다. ‘민주주의’는 껍데기 장식물에 불과하다고. 오직 자유를 심장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일 때만 생명력을 갖는다고. 민주주의는 자유를 부정하는 공산 전체주의의 반대편에 있지 않으면 결국 사망한다고.

이강호 씨가 펴낸 '박정희가 옳았다' 표지(사진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제공).
이강호 씨가 펴낸 '박정희가 옳았다' 표지(사진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제공).

문제는 공산 전체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소비에트 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등등 한결같이 ‘민주주의’로 위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왜 자신들의 본심(즉 공산주의)을 ‘민주주의’란 위장막으로 은폐하는 것일까?

공산주의란 자신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 혁명을 일으켜 현존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존재 이유다. 인간이 인간을 착취·수탈하는 제도를 폐지한다는 명목으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악착스럽게, 무자비하게, 비타협적으로 권력을 탈취하는 것이 공산주의자의 근본 목표다.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본심을 숨기고 대중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이를 위해 거짓말을 밥 먹듯 해야 하고, 속임수를 숨 쉬듯 써야 한다. 이를 위해 자신들의 주장을 이중 구조로 숨겨서 은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저들이 사용하는 평화란 단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본래의 뜻과는 완전히 다르다. 저들의 평화는 “자본주의가 완전히 멸망해 전쟁조차 필요 없는 상태”를 뜻한다. 이것이 공산 전체주의자들의 즐겨 사용하는 언어혼란전술이다.

그들은 농민을 공산당에 끌어들이기 위해 “지주들의 땅을 빼앗아 공짜로 나눠준다”고 선동한다. 거친 폭력을 사용하여 지주들 땅을 빼앗아 농민들에게 나눠주는데, 소유권을 주는 게 아니라 사용권(즉 경작권)만 준다. 뭘 모르는 농민들은 일단 토지를 준다고 하니 공산당 선동에 속아 공산주의에 동조한다.

공산혁명이 완성되면 이제 농민에게 잠시 사용권(경작권)을 주었던 토지를 다시 빼앗아 국유화한다. 공산당이 지주로 들어앉고, 모든 농민들은 농노로 전락한다. 이 과정에서 자기 재산을 지키기 위해 반항하는 자들은 인민재판이란 이름으로 무지비한 폭력을 행사하여 살해한다. 산 사람 태워 죽이기, 목에 밧줄 걸고 자동차에 묶은 다음 비포장도로 달려 목과 신체를 분리시키기, 산 사람 머리에 못 박아 죽이기 등등... 공산주의에 따르지 않거나 저항하면 어떻게 된다는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 가급적 끔찍하고 참혹하게 사람을 죽인다.

이런 끔찍한 지옥을 유토피아로 착각하며 청춘을 소비했던 저자 이강호는 누구보다 강렬한 목소리로 ‘반공’을 외친다. 그는 말한다.

“이 세상에 빨갱이는 한 명도 많다.”

반일 운동에 가세한 전국 52개 지방자치단체들이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조치 즉각 철회, 시민들의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일본 여행 보이콧 등을 적극 지지하겠다고 나섰다(사진 연합뉴스 제공)
반일 운동에 가세한 전국 52개 지방자치단체들이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조치 즉각 철회, 시민들의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일본 여행 보이콧 등을 적극 지지하겠다고 나섰다(사진 연합뉴스 제공)

위대했던 반공의 길

이런 체험을 보유한 저자이기에 박정희가 거사한 5·16은 반공을 위한 혁명이었고, 10월유신도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의 배양”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런 점에서 10월유신은 5·16의 연장선이라고 주장한다.

이 부분에서 저자 이강호의 의견과 필자 의견이 정확하게 일치한다. 필자는 지난 5월 출간한 『박정희혁명(1·2)』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쿠데타를 5·16 때 한 번만 한 것이 아니라 5·16(1961), 6·3사태(1964), 10월유신(1972) 등 다단계로 쿠데타를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리하여 마차와 지게가 주류였던 농업사회를 자동차와 비행기가 주류를 이루는 공업사회로 변화시켰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기틀을 완전 혁신한 혁명이었다고 주장한 책이 『박정희혁명(1·2)』다.

박정희가 수행한 일들은 전 국민이 박수 치고 환호를 보낸, 포퓰리즘적 정책은 하나도 없다. 포퓰리즘은커녕 전 국민에게 피와 땀, 눈물, 노력, 자기희생을 당당하게 요구했다. 그것은 월남 파병, 한일 국교 정상화, 향토예비군 창설, 고속도로·제철소 건설 등등 전 국민이 거국적으로,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이 모든 일들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늘리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었지만, 성리학과 주자학에 쩔어버린 이 땅의 야당 정치인·언론·학자·교수 등 붓쟁이 나부랭이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결사반대, 목숨걸고 저항했다.

당시 지식인들에게 인기 높았던 잡지 「사상계」는 1965년 2월 ‘신을사조약의 해부’라는 주제로 긴급증간호를 발행했다. 이 증간호의 권두에 박두진·박남수·조지훈의 연작시 ‘우리는 다시 노예일 수 없다’라는 시를 실었다. 이 연작 시 중 조지훈이 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들은 잊지 않을 것이다/ 아니 우리들은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빼앗긴 나라의 황토 바닥에 엎디어 호곡하던 할아버지들을/ 비바람 치는 광야에서, 모진 형벌의 감옥에서/ 외치다가 쓰러지다가 피투성이로 숨이져간 아버지들을/ 아아 쫓기고 짓밟히고 개처럼 끌려가 송두리째 잃어버린 우리들의 청춘을-/ 어찌 잊을 수가 있단 말이냐/ 간에 새기고 입술을 깨물어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다/ 아니 잊을 수가 정말로 없을 것이다/ 빼앗은 자는 누구며 판 자는 누구며 빼앗긴 자는 누구였던가/ 60년 전 오늘, 되돌아간 을사의 그 기만의 요설과 잔인의 독아를/ 우리는 역력히 알고 있다/ 아니 원수가 하자는대로 도장만 눌른 그 더러운 조약의 글자마다 어구 마다가 샅샅이 보여 주고 있다/ 이 수 많은 허점과 함정을, 잃어버린 주권을 국민 앞에 내려놓고/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말하는 자는 누구며 그렇다고 맞장구 치는 자는 누구냐/ 우리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용서할 수가 없을 것이다/ 가부가 무엇이냐, 비준이 무엇이냐, 이 더러운 종이쪽지를 의정의 자리에/ 내어거는 것 조차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어엿한 배상금을 청구권은 무엇이며 독립축하금은 무엇이냐/ 무상이고 유상이고 이것은 먹을 수 없는 미끼!/ 이 더러운 돈으로 나라의 피폐한 경제가 되살아 나리라고/ 웃기지 말아라. 그 철없는 도박을 우리가 믿고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사상계」, 긴급증간호, 1965년, 3월, 17~19쪽)

소중화 판타지의 세계가 反日로 치환되다

조지훈 시인의 열렬한 외침은 민족감정이 극에 달했던 시대에는 그럴 듯하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일 국교 정상화가 없었다면 이 지구상 어느 나라가 한국의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대주었겠는가.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결단이었다.

박정희는 당장 굶어죽는 국민들 밥 한 끼라도 먹이겠다고 일본과 손을 잡았다. “매국노”, “제2의 이완용”, “신을사조약”이란 모욕을 당해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며칠, 몇 달 지나지 않아 먹물 지식인들의 주장은 자기 얼굴에 똥칠을 하는 시대착오적 망언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먹물 지식인들은 자기 주장이 틀리든 말든 그 주장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냥 선명성만 뚜렷하면 상품성이 인정된다. 나라가 망하든, 다른 사람이 멸문지화를 당하든 말든, 패가망신하든 말든 그것은 자기 책임이 아니다. 먹물 지식인들의 무책임한 시대착오적 주의·주장은 1637년 병자호란에서 오랑캐 두목 청 태종에게 항복하고, 그 나라에 대한 복수를 위해 북벌을 외치는 노론 정치인 송시열을 빼다 박았다. 당시 청나라는 인구 3억이 넘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최강국이었다. 병력 1만도 채 안 되는 조선이 청나라를 정벌한다?

이것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 아닌가. 결국 비루먹은 개처럼 슬그머니 ‘북벌론’ 내던진다. 그 정신적 공황, 멘붕 상태를 채워준 것은 주자학적 세계관이었다. 오랑캐 청나라를 멸시하고, 조선이 그들보다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소중화(小中華)의 판타지 세계로 빠져든 것이다.

일본으로부터 기술·자금·노하우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서 조지훈 시인을 비롯한 먹물 지식층은 오랑캐에게 머리 숙이고 소중화의 판타지에 안주했던 조선 주자학자들과 똑같은 정신세계에 함몰된다.

“일본은 과거에 우리가 한자·불교·건축기술·유교를 전수해준 오랑캐 쪽바리 아닌가. 우리가 잠시 한눈 팔다 36년간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지만, 어디 감히 쪽바리들에게 머리 숙이고 돈을 지원받는단 말인가. 이것은 민족 자존심 상 용납할 수 없는 폭거다.”

그들의 소중화 가치관에서 ‘적대적 타자’가 청나라 오랑캐에서 쪽바리 일본으로 바뀐 것이 오늘날 한국 먹물(정치인·언론·학자·교수 등등)들의 공통된 반일 아이덴티티다. 그런 인간군상이 어디 조지훈 시인 한 사람뿐이었는가.

이강호 저자는 『박정희가 옳았다』의 프롤로그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1968년 선포한 국민교육헌장 “반공 민주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란 대목에 감동한다. 이것이 바로 5·16과 10월유신으로 대표되는 ‘박정희 정치’의 압축적 설명이기 때문이다.

국민교육헌장도 폐지된 지 이미 오래고, 반공도 이제 박물관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진부한 유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세계 모든 나라의 현대사는 ‘반공 민주정신’이 없는 민주주의, 개인의 자유가 없는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공산주의 세계로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수없는 투쟁을 통해, 이 땅에서 공산주의자들과 피를 흘리며, 때로는 사상전을 벌이며 대한민국을 건국했고, 건설했고, 지켜왔다. 그런 ‘반공 대한민국’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촛불혁명이라나 뭐라나, 그런 난동 무법천지를 일으켜 박근혜를 탄핵하고 출범한 문재인 대통령은 백주에서, 그것도 중인환시리에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대놓고 북한을 찬양한다.

미친개에겐 선물을 줘야 물지 않는다?

공산 전체주의자들이 대한민국을 침략하기 위해 열심히 칼을 갈고, 핵·미사일·대량살상무기를 쌓아놓고 있는와중에 담을 허물고, 대문을 열어 젖혔다.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무 열심히 지키면 안 된다" 윽박지르고, 휴전선 해안선 열심히 지키던 부대를 해산하고 있다. 박정희는 “미친개에겐 몽둥이가 약이라 했는데, 현 대통령은 ”미친개에겐 선물을 줘야 물지 않는다“고 국민 세금으로 잔뜩 선물을 갖다 안긴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반공 대한민국’은 이제 소멸했다. 소멸한 그 자리에 나눔·평등·공정·정의·사람이 먼저라고 외치는 붉은 바이러스가 미친 듯이 퍼져나가고 있다.

전직 빨갱이 이강호는 말한다. “역사가 다시 반복되는 것인가? 반복되는 역사, 그 앞에서 다시 박정희를 생각한다”라고…. 이 미친 붉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으려면,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악의 무리와 싸우는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국민이라면 조만간 내전은 피할 수 없다. 그것이 선거가 됐든, 시가전이 됐든, 선전전이 됐든 조용히 넘어갈 수는 없다. 가만 앉아 있다가 감염되어 죽느니 싸워다 죽는 게 낫다. 죽기로 싸우다 보면 승리의 희망이라도 보이지 않겠는가.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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