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안 팔겠다’는데 '그럼 우리도 안 사겠다'는 것은 되려 일본정책에 호응하는 모순된 불매운동
한일간 무역 분쟁 원인 ‘文대통령의 신뢰 상실’ 외면하고 불매운동 벌이는 건 백해무익
불매운동을 애국이라 떠드는 자들은 과거 양이 물리치겠다며 굿판 벌인 무당에 지나지 않아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차원에서 외교 갈등 해결하는 선진의식 보여야

김병헌 국사교과서 연구소장
김병헌 국사교과서 연구소장

1866년 8월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계기로 조선원정을 명령받은 아시아함대 사령관 J.로저스는 군함 5척, 함재대포 85문, 해군과 육전대원 총 1,230명을 이끌고 1871년 5월 16일 일본의 나가사키를 출발하여 19일 서해안 남양만에 도착하였다. 뱃길을 탐사하면서 북상하여 물치도를 자국 함대의 정박지로 정한 미군은 공격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미군의 침략이 임박했다는 소식으로 공포에 휩싸인 조정에서는 속수무책 허둥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국정 책임이 없으면서도 온갖 영향력을 행사했던 흥선대원군이 백성들에게 내린 경고 1호는 바로 이것이다.

"무당은 나서지 마라!"

예나 지금이나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도처에서 나라를 구하겠다는 열혈 애국자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고종 대의 백성들 중에 최고 애국자는 무당이었다. 그들은 양이(洋夷)가 침범해오면 제일 먼저 성루에 올라 흰 옷자락 펄럭이며 굿판을 벌였다. 그것이 적을 물리치는 최고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흥선 대원군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군사들의 행동을 방해하는 굿판을 벌이지 못하도록 엄중 지시를 내린 것이다.

하지만, 흥선 대원군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군이 광성보에 접근하자 맨 먼저 성루에 나타난 사람은 무당이었다.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미명(微明)을 등에 업고 흰 옷자락 펄럭이며 굿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흥선 대원군 입장에서야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무당은 자기의 행동이야말로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작금의 한·일간 무역 갈등은 한국이 전 정권에서 이루어 놓은 위안부 합의를 뒤집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소멸된 징용공 문제를 되살려 놓는 일련의 신뢰 상실, 즉 '문재인의 신뢰 상실'에 대한 대응조치에서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일본은 불화수소를 비롯한 일부 수출품의 규제를 엄격히 하고 그동안의 무역혜택을 더 이상 제공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곧 한국에 수출을 덜 하겠다는 것, 한국에 물건을 덜 팔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열혈 애국자들은 이에 대응해 '일제 불매(不買) 운동' 즉 일본 제품을 안 사겠다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일본이 안 팔면 우리도 안 판다고 해야 할 텐데 어찌 된 일인지 일본이 '안 팔겠다'고 하자 '그럼 우리는 안 사겠다'고 일본의 정책에 적극 호응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야말로 친일적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우리가 일제 불매 운동을 하면 일본도 당연히 대응할 것은 상식이다. 일본이 자국 상품은 불매(不賣:팔지 않음)하고 한국산 상품을 불매(不買:사지 않음)하는 운동을 벌인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가?

상대를 이기려면 계산기부터 두드려 봐야 한다. 이길 수 있는 싸움인지, 우리는 상처를 입지 않을 것인지, 상처를 입는다면 견딜만한 수준인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거북선 12척을 거론하고 거북선 회집에서 스시 한 사라 놓고 술 한 잔 하면서 반일감정으로 조장한다고 불매운동으로 화답한다면 그건 진정으로 나라를 구하는 길이 아니다. 다함께 손에손잡고 죽음의 구렁텅이로 뛰어드는 것이다.

한·일간 무역 분쟁의 원인인 '문재인의 신뢰 상실'은 뒷전에 두고 불매운동이라는 비이성적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백해무익이다. 이런 운동을 애국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무리들은 바로 양이를 물리치겠다고 흰 옷자락 펄럭이며 굿판을 벌인 무당에 다름 아니다.

정신 좀 차리고, 불매운동 굿판을 당장 멈춰라!

김병헌(국사교과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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