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 누구를 위한 '韓日 경제전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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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7.24 10:02:58
  • 최종수정 2019.07.24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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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더 큰 피해 경고한다"는 문재인 판단 걱정스럽다
"文정부 흔들기" 뉴스에 격분한 與, 정권 수호 위한 反日 되어서야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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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해 “결국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을 경고한다”고 발언한 것은 대일(對日) 강경 대응의 신호탄이었다. 경제 문제로 국가 간 갈등이 발생하면 힘이 약한 나라가 더 손해를 보는 게 상식이다. 2000년 중국과 마늘 분쟁이 벌어졌을 때도 우리가 두 손 들고 항복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문 대통령은 왜 일본이 더 피해를 보는지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이 발언 이후 좌파 진영에서는 “우리가 버티면 이긴다”는 ‘승리 예측’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경제 전쟁’을 강조하는 함성이 커지고 있다. 아울러 이순신 의병 죽창가 등 전쟁 동참을 촉구하는 선동 구호들이 봇물을 이룬다. 

하지만 지금은 엄밀히 말해 ‘경제 전쟁’에 돌입한 단계는 아니다. 일본은 3개 반도체 소재의 심사권을 손에 쥐고 쥐락펴락 하며 상대방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중이다. 앞으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를 우대해 주는 국가)에서 제외하는 추가 조치를 실행하느냐 마느냐가 분수령이 될 것이다. 파국에 이르기까지 외교적 해결의 여지가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볼 수 없다.

여기서 문 대통령의 ‘일본이 더 큰 피해를 볼 것’이라는 발언을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 말은 청와대 안에서 어떤 분석 자료를 갖고 참모들과 논의한 뒤 나왔을 것이다. 22일에도 문 대통령은 “우리는 일본을 추월할 수 있다”며 투쟁 의지를 재확인했다. 일단 문 정권의 방향은 ‘일본과의 정면 대결’로 정해졌다. 

일본도 뒤로 물러설 낌새는 전혀 없으니 이대로 가면 마주 달리는 기관차처럼 충돌하는 일만 남았다. 사태가 오래 가는 장기전 전면전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두 나라가 서로 경제적으로, 인적 교류 면에서 깊이 맞물려 있는 상태에서 벌어지는 장기전과 전면전은 ‘최악의 시나리오’이지만 국민들은 여기까지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 정부가 특히 경제 정책에서 근거 없는 자신감을 보여 왔다는 점이다. 소득주도 성장을 필두로 국민들이 한두 번 속았던 게 아니다. 경제 전쟁이 벌어지면 누구에게 더 승산이 있을지 만일을 대비해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경제 전쟁은 무력이 아닌 경제력으로 대립하는 싸움이므로 경제 지표를 비교하는 일이 먼저다. 일본 인구는 1억2700만 명, 한국은 5100만 명으로 일본이 2.5배 많다. 지난해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GDP)는 4조9709억 달러로 한국의 1조6194억 달러와 비교해 3.07배를 기록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2018년 일본이 4만1340달러, 한국이 3만600달러로 집계돼 많이 좁혀졌지만 역시 격차가 있다.

국부(國富)를 따지는 지표로서 일반 국민들이 보유한 자산을 합친 가계 순자산은 일본이 2경5958조원(2016년 한화 기준), 한국이 7539조원으로 일본이 3.4배 많다. 세계 최고 수준인 일본의 기술력이나 제조 능력, 대외 신인도 등 무형적 자산을 계산에서 제외한 상태에서 한국의 경제력은 대략 일본의 3분의 1 수준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경제 전쟁으로 한일 양국이 같은 금액을 손해 보더라도 그 펀치의 영향력은 우리에게 더 세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위기에 대처하는 두 나라의 사회문화적 특성이다. 외부 요인으로 곤경에 빠졌을 때 그 사회가 어떤 자세로 대응하느냐는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인은 미국이 여태까지 전력을 기울여 싸운 적(敵) 가운데 가장 낯선 적이었다’고 서술했다. 인접 국가인 한국인의 눈에도 일본인은 꽤 차이가 느껴진다.

일본은 ‘단체전’에 강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유난히 많이 발생하는 지진 태풍 등 자연 재해에 일사불란하게 대처하는 모습은 세계 뉴스에 자주 등장할 정도다. 지리학적으로 위기 때 뭉치는 힘이 강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불매운동은 크게 드러내지 않고 진행되면서도 위협적이고 지속성이 길게 유지된다. 이에 비해 한국은 단기적인 결집력과 일본에 대한 강한 승부욕이 장점이지만 과거 역사왜곡 사건 등에서 쉽게 흐지부지되는 모습을 보였던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강한 나라와 그보다 약한 나라가 충돌한다고 해도 어느 쪽이 이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경제 전쟁으로 비화되지 않고 조기에 마무리하는 것이 우리 국민들을 위해 최선의 방안이다. 전면전이 벌어지면 최대 피해자는 서민들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일전을 피할 수 없다면 지금 정권이 벌이는 방식으로는 ‘전쟁 수행’이 불가능하다.

문 정권의 반일(反日) 모드는 일각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가 문재인 정부를 흔들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나온 다음 더 격해졌다. 정부 입장과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을 ‘이적(利敵)’이나 ‘신(新)친일’로 몰아세우고 신중론 현실론을 꺼내는 사람들의 입을 막고 있다. 국가가 아닌 자신들의 정권을 위해, 대(對)일본 외교의 실패를 가리기 위해 반일을 충동한다는 반발과 분열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정권 핵심의 흥분 상태는 전쟁에서 독약이다. 

다시 불거진 문 대통령의 ‘근거 없는 자신감’은 더 문제다. 경제는 잘 돌아가고 있다던 그간의 호언장담은 허망하게도 정반대 결말을 맺고 말았다. 이번 사태에서도 대통령의 잘못된 상황 판단이 이뤄지면 거의 재난 수준이 될 텐데 어떻게 책임지려고 하나. 오히려 우리가 비록 객관적 열세이지만 일치단결해서 극복해보자고 솔직하게 호소해야 승리의 길이 보일 것이다.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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