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법치주의, 문창극 인사청문회부터 흔들려
사법부 블랙리스트 파동, 영장도 없이 컴퓨터 압수수색
이재용 항소심 재판부,법치주의 생명 끊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줘
양식 있는 판사들의 소신과 용기,이를 격려하는 시민과 언론이 한국 법치주의의 마지막 보루

차기환 객원 칼럼니스트
차기환 객원 칼럼니스트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이 2018년 2월 5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석방되었다. 작년 2월에 구속된 지 만 353일만에 신체의 자유를 되찾은 것이다. 박영수 특검팀이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할 때 내세웠던 중요한 명분이 되었던 스포츠 재단 설립, 영재센터 지원과 관련된 제3자 뇌물죄, 재산국외도피 등의 죄는 전부 무죄가 선고되었고 승마 국가대표였던 정유라에게 고가의 말을 타게 한 것과 그와 관련된 용역대금 부분만 유죄가 인정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결정 이후 한국 사회에 휘몰아친 이른바 ‘적폐 청산’의 광풍 속에서2심 재판부(재판장 정형식 고등부장판사)가 나름 사실 인정과 법리 적용에 고심한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사회의 법치주의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은 2014년 6월 24일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서 보지도 못하고 사퇴를 강요당했을 때 분명하게 느꼈다. 문창극 후보자는 과거 교회 강연에서 조선이 일제 식민지배를 당하게 된 것은 조선 지배층의 무능, 부패로 인한 것이고 이로 인하여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시련을 주셨지만 완전히 망하게 하시지는 않았고 우리 민족이 그 시련을 이기고 오늘날의 번영을 이룩했다는 취지로 강연했다. 그 강연 전체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문창극 후보자가 일제 식민지배를 결코 정당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KBS 를 비롯한 일부 매체나 기자들은 문창극 후보자의 강연 내용을 짜집기하거나 완전히 반대로 왜곡하여 문창극 후보자가 조선민족의 품성을 비하하여 일본 식민지배를 정당화한 것인 양 맹공을 가했다.

법치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정권이나 정당이었다면, 사실관계를 분명히 하고 그 책임 소재를 명명백백히 가렸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와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은 눈앞에 닥친 보궐선거를 염두에 두고 문창극 후보자를 총리 인사청문회장에 서지도 못하게 한 채 사퇴시키고 말았다. 필자는 그 사태를 보고 당시 시사주간지인 미래한국에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백기, 야만의 시대가 오나’라는 칼럼을 기고하여 그 사태의 본질이 자유민주의, 법치주의에 대한 공격이라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그 이후에 진행된 사태를 보면, 한국 사회는 법치주의가 점점 더 흔들리고 있어 야만의 시대로 들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검찰이 백남기씨 사건에서 적법하게 발부받은 사체 부검영장 하나 제대로 집행하지 못한 것이나 대통령을 탄핵하면서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탄핵결정부터 해 놓고 형사 소추를 해서 탄핵결정에 맞추고 있는 것이나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나라라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법치주의 파괴를 보여주는 최근의 상징적인 사례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부 블랙리스트 파동을 조사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법원행정처 판사들이 사용하는 컴퓨터를 당사자의 동의나 영장도 없이 압수∙수색한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이러한 처사는 사법부내 ‘적폐청산’을 내세워, 압수∙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가 청구하고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하여야 한다(제12조 제3항)는 가장 기본적인 헌법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문명국가(文明國家)’에서 있을 수 없는 야만적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사태를 보면서 필자는 21세기 한국의 사법부가 19세기 일본의 사법부가 문명국가의 법치주의를 달성하기 위하여 기울였던 수준에조차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자괴감을 느꼈다. 19세기말인 1891년 러시아는 프랑스로부터 차관을 들여와 시베리아 철도 공사에 나섰는데 그 철도가 완공되는 경우 러시아 육군이 동아시아에 언제든지 투입될 수 있고 이는 동아시아 정세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므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당시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는 1891. 5. 31. 블라디보스톡에서 예정된 시베리아 철도 기공식에 참석하기에 앞서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오쓰(大津) 시에 들렀다가 경비 순사 쓰다 산조(津田三藏)에게 테러를 당하였다.

당시 일본 형법상 일본 천황이나 황족에게 위해를 가할 때에는 사형을 가하도록 규정하고 있었으나 외국의 황제나 황족에 대하여 위해를 가했을 때 사형을 선고할 법조문은 없었다. 러시아 주일공사는 테러범을 사형시킬 것을 요구했고 불응시에는 어떤 사태가 생길 지 모른다고 위협하였다. 일본 정부의 원로인 이토 히로부미룰 비롯해 총리대신 마쓰카타 마사요시, 사법대신 야마다 아키요시 등이 사형을 강력히 주장하고 사법부에게도 그런 의견을 전달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계엄령을 선포해서라도 사형을 시키자고 했고 심지어 일부 각료는 쓰다 산조를 납치하여 테러로 살해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까지 주장했다. 1891년 당시 일본은 러시아에 비해 국력이 약해 일본 정부는 물론이고 시민들도 러시아가 위 사건을 빌미로 일본에게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하거나 영토의 할양을 요구할 것을 염려하여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신사, 사원, 교회에서 황태자 회복을 위한 기도회가 이어지고 문안전보가 1만통 넘게 쏟아지며 대학생들의 사과 편지가 이어지고 어느 여성은 ‘죽음으로 사죄한다’며 자살하기도 했을까.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적폐 청산’의 열풍을 뛰어넘는 일방적인 여론이 형성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 대법원장 고지마 이켄(兒島惟謙)은 내각총리대신과 사법대신에게 서신을 보내어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는 처벌을 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일본 대법원장의 위와 같은 처신은 행정부의 간섭으로부터 사법부 독립을 지킨 것이기도 하지만, 당시 서양 열강들에 대하여 일본국도 서구와 같은 문명국가임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서구 열강이 일본에게 불평등조약을 강요할 때 일본국은 서구 문명국가와 같은 사법제도가 없으므로 자국민들을 일본의 재판권 행사에 응하도록 할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는데 일본이 이러한 수치스런 상황을 극복하려면 서구 열강에 못지 않는 법치주의를 갖추어 문명국가로서의 위신을 확보하여야 한다는 것이 일본 대법원장 고지마이켄의 생각이었다. 결국 일본은 이런 노력과 국력의 신장이 어우러져 서구 열강과 체결한 불평등조약을 점진적으로 개정해 나갔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영장주의에 위반하여 법관들의 컴퓨터를 불법적으로 압수, 수색하였다는 보도를 접하고 필자는 19세기 일본 대법원장 고지마 이켄의 처신를 떠올리고 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차 정형식 고등부장판사가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대부분의 중요 기소 내용에 대하여 엄격한 증거법칙을 적용하여 무죄 선고를 한 것을 듣고 한국 사회의 법치주의가 완전히 부서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2심 판결에 대하여 불만을 가진 세력들이 정형식 재판장을 비롯해 재판부 판사들의 신상털기부터 시작하여 온갖 비난을 가할 것이다. 그러나, 그 재판부의 용기있는 판결이 한국사회에 법치주의의 생명이 끊긴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며 박수를 보내고 감사해 하는 법조인들과 많은 시민들이 있다는 것을 부디 사법부내 양식 있는 판사들이 알아주기 바란다. 그런 판사들의 소신과 용기, 이를 지지하고 격려하며 지킬려고 하는 법조인들과 시민들의 용기와 행동, 그러한 내용을 보도해 주는 언론이 한국의 법치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이다.

차기환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변호사

KBS 이사,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서울지방법원 의정부 지원 판사, 수원지방법원 판사

자유와 통일을 향한 변호사 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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