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여전히 유엔 대북제재 회피해 불법 환적 활동 중
北과 유류 환적 의심 선박 8척, 北석탄 수출 연루 선박 9척 1년 넘게 자취 감춰...지금도 불법 환적 중일 가능성 높아
AIS를 끄고 운항하는 건 유엔 제재의 감시망을 피하는 北의 전형적 수법
의심 선박들, 등록국가를 번갈아 바꾸는 수법으로 감시 피하기도
美국무부, 北선박 불법환적 제보에 500만달러 포상금 내걸어

16일 경북 포항 남구에 있는 포항신항만에 북한산 석탄 반입 의혹을 받고 있는 토고 국적 선박 'DN5505'호가 정박해 있다./연합뉴스
16일 경북 포항 남구에 있는 포항신항만에 북한산 석탄 반입 의혹을 받고 있는 토고 국적 선박 'DN5505'호가 정박해 있다./연합뉴스

북한에 석탄과 유류 등을 환적해 대북 제재를 위반한 것으로 추정되는 선박 상당수가 1년 넘게 행적을 숨기고 있다고 미국의 소리(VOA)가 18일 보도했다. 해당 선박들은 선박위치식별장치(AIS)를 꺼서 위치를 감추는 방식으로 환적 단속을 피했다.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는 이 같은 불법 행위를 선박이 소속된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고 19일 밝혔다.

미 재무부는 지난 3월 ‘대북 제재에 관한 권고’를 발표하고 제재 위반 의심을 받는 선박을 공개했다. 북한의 기만적인 선적 행위에 관한 정보를 각국에 제공하기 위해서다. 선박 추적 시스템인 ‘마린트래픽’을 통해 확인한 결과, 명단에 오른 34척 중 17척이 1년 이상 자동선박식별장치(AIS)를 끄고 선박의 위치 추적을 피하고 있었다.

현재 북한 유조선과 불법 환적을 한 것으로 보이는 선박 8척이 자취를 감춘 상태다. 시에라리온 선박 진혜는 2018년 1월 타이완 남쪽 바다에서 잡힌 신호를 끝으로 1년 3개월간 행방을 알 수 없다. 토고 선박 ‘서블릭’호와 러시아 선박 ‘탄탈’호 등 8척의 배도 AIS를 꺼 뒀다.

북한산 석탄 수출에 연루된 선박 9척 역시 마찬가지다. 시에라리온 선박 ‘펭션’호는 2018년 4월 홍콩 앞바다를 마지막으로 사라졌고, 코모로 선박 ‘페트렐 8’호는 2017년 10월 북한의 북단인 중국 잉커우 항 앞에서 마지막 신호가 포착됐다. 또 벨리즈 선박 ‘탈렌트 에이스’호, 토고 선박 ‘아시아 브릿지’호 등 모두 9척의 종적이 묘연하다.

연락이 끊긴 경우 외에 여전히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선박의 움직임도 포착됐다. 코모로 선박 ‘플라우리싱’호는 지난달 18일 중국 닝보 항 앞에서 AIS 신호를 드러냈다. 이후 8일 뒤 북한 청진항 앞에서 다시 신호를 노출했다. 지난 7일에는 제주 애월읍 앞바다에서 중국 방향으로 가는 것으로 신호가 잡혀 북한과 중국 사이를 계속 운항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8년 6월~8월 북한의 불법 해상환적 모습./안보리 대북제재위 보고서=연합뉴스

문제는 신호가 두절된 선박들이 지금도 북한과 불법 환적을 계속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AIS를 끄고 운항하는 건 유엔 제재의 감시망을 피하는 북한 수법으로 알려져 있다. 유엔은 지난 2017년 안보리 결의 2397호를 통해 “북한이 선박 간 환적을 통해 원유와 석탄을 운송하고 있다는 점에도 깊은 우려”를 전하며 “북한 선박을 유엔 회원국들이 압류와 조사, 동결 등의 조처를 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 노동당 출신으로 해외 지사장을 지낸 리정호는 VOA와 지난 9일 인터뷰에서 “북한 정권은 해상에서 불법 환적으로 충분한 양의 정제유를 확보함으로써 제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서 그는 어떤 정부 차원에서 조직하지 않으면 선박 간 불법 환적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불법 환적 행위를 적발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는 17일 VOA에 “선박 단속 책임은 해당 국가에 있다”고 알렸다. 선박의 소재지로 등록된 국가가 나서서 환적을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 조야에선 분명한 한계가 있는 방안이란 반응이 나온다. 선박이 임의로 국가 등록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대북 제재 위반 혐의로 조사받은 뒤 폐기된 ‘카트린 ’호다. ‘카트린’호는 파나마 깃발을 달았지만, 실제 선주는 한국 혹은 중국식 이름을 사용하는 '두영'이나 '도' 쉬핑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2003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 깃발을 달고 ‘정진 넘버1’호와 ‘덕양’호, ‘도신마루’호 등의 이름으로 번갈아 운영되기도 했다.

아울러 미 재무부가 발표한 제재 위반 의심 선박의 등록국가도 분명하지 않다. ‘대북 제재에 관한 권고’ 명단에 오른 ‘서블릭’호는 토고 선적으로 돼 있지만, ‘마린트래픽’에서는 인도네시아 선적으로 나온다. 마찬가지로 재무부는 ‘아시아 브릿지’가 토고 선박이라 주장하지만, 마린트래픽에서는 벨리즈 선박으로 확인된다.

미 하원 외교위 아시아태평양비확산 소위 브래드 셔먼 위원장./
미 하원 외교위원회 아시아태평양비확산 소위 브래드 셔먼 위원장./

해상에서의 환적 행위를 추적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지적된다. 안드레아 톰슨 재무부 군축·국제안보 차관은 불법 환적을 막는 일을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격’에 비유했다. 거대한 바다 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일일이 포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불법 환적을 금지하면 그들은 방식이나 장소를 바꾼다”며 단속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럼에도 미국의 대북 불법 해상 거래를 단속하기 위한 방안은 계속 추진되고 있다.

브래드 셔먼 미 하원 외교위원회 아태소위 의원은 '대북 밀수 단속 법안'을 국방수권법안에 대한 수정안 형태로 지난 10일 제출했다. 이 법안은 선박 간 불법 환적 차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험회사와 금융기관이 선박 등록이 쉬운 나라들과 함께 제재 이행을 감시하도록 요구하는 내용이다.

미 국무부 또한 대응책으로 북한의 대북제재 위반 활동을 제보할 시, 최대 500만 달러(약 59억 원)를 지급하겠다며 포스터를 제작해 지난달 5일 배포한 바 있다.

현재 미국, 일본, 영국, 캐나다 등 7개국은 지난해 초부터 동중국해와 근해에서 북한의 제재 회피 행위를 단속하고 있다.

안덕관 기자 adk2@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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