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칼럼] 자꾸만 음모론에 눈이 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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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7.19 09:11:28
  • 최종수정 2019.07.1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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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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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이라는 게 참 묘하다.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어야 음모론이다. 이 음모론은 공작(工作)과 함께 움직인다. 그런데 성공한 공작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공작이 성공해야 비로소 음모론이 완성되는 기묘한 역설이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음모론이 무성하다. 미국이 한국을 제치고 일본, 북한과 모종의 거래를 하고 있다는 시나리오다. 명색이 동맹인데 차마 직접 때리지는 못하고 일본을 시켜 한국을 두들겨 패고 북한과는 딜을 해서 대중국 전선(戰線)의 틀을 새로 짠다는 얘기는 정황상 아귀가 딱딱 맞는다. 이른바 신(新)가쓰라-테프트 음모론이다. 맞다. 미국은 필리핀을 먹고 일본은 조선을 먹기로 합의 본 그 밀약이다. 추측의 단서는 많다. 먼저 일본 사정부터 보자. 최근 일본이 우리에게 꽂아 넣은 훅hook이 선거를 앞둔 아베의 포석이란 일부의 주장은 일본의 정치 현실을 잘 몰라서는 하는 얘기다.

일본은 과연 자유의지가 있는 나라인가

지난 6월 자민당의 지지율은 27.7%였다. 그 뒤가 입헌민주당으로 3.3%이고 국민민주당, 공산당 등 5개 잔당(殘黨)의 지지율을 더해봐야 6.5%다. 사실상 경쟁상대가 없다.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비율은 59.4%에 달하는데 이 숫자는 나중에 사표(死票)가 되거나 자민당으로 간다. 일본 우익을 결집시키는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총선용은 아니라는 얘기다. 또 하나는 우리가 체감하지 못하는 미일 관계의 실상이다. 마고사키 우케루라는 사람이 쓴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 했나’라는 책이 있다. 전직 외교관이 썼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공식 추천하지 않는 이유는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이야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일본 외교를 ‘미국을 향한 자주와 종속의 치열한 싸움’으로 정의한다. 책에는 이런 내용들이 나온다. “미국 종속노선과 미국 자주노선,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가 전후 미일 외교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브레진스키는 일본을 미국의 ‘안보상 보호국’으로 표현하고 있다. 일본이 미국의 보호국이라는 상황은 점령시대에 만들어진 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말 그대로다. 전후 미국은 일본을 완전히 해체했고 자근자근 밟았다. 책에는 ‘감히’ 반미 정책을 썼다가 붕괴된 정권의 사례가 줄줄이 나온다. 미국은 반미의 조짐만 보여도 씨를 말렸으며 우리에게 ‘전공투’로 알려진 60년대 좌익의 안보투쟁 때에는 좌익에 자금을 대서 정권을 무너뜨렸다. 일본을 손에 쥐고 놓지 않은 미국의 집요한 지배의 기록이 일본 현대사인 것이다. 일본은 항복이 아닌 종전(終戰)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전쟁 패배의 굴욕을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일본은 자기 의지대로 대외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이런 일본이 미국의 충분한 시그널 없이 한국을 압박한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시는가.

훅을 날렸으면 이번에는 턱에 스트레이트가 들어올 차례

문제는 일본의 한국 타격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한국에 대한 생각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복싱에서 상태를 쓰러뜨리는 가장 일반적인 패턴이 복부에 훅을 넣어 움직임을 둔화시킨 다음 턱에 스트레이트를 날리는 것이다. 훅은 이미 들어왔다. 과연 일본은 팔을 뻗어 우리의 안면을 가격할 것인가.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에서 일본인의 정서를 ‘수치의 문화’로 규정한 바 있다. 기독교 기반의 서양에서는 ‘신의 눈’이 중요하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을 신이 보고 있기에 거기에 맞춰 스스로의 행동을 조율하고 자제하는 ‘죄의 문화’가 전통이다. 반면 일본의 문화는 신이 아닌 ‘타인의 시선’을 더 중시한다. 남의 눈을 의식해 행동을 통제하고 비난받을 짓을 피하기 때문에 ‘수치의 문화’인 것이다. 일본이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한국에 압박을 가한다면 세계 여론도 비난의 화살을 일본에게 돌릴 것이다. 이는 일본에게 ‘수치’를 자극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럼에도 일본의 공세가 단계를 높여 이어진다면 이는 결코 자신들만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니다. 적어도 밀약이 있거나 최소한 미국의 동의를 얻은 행동이라는 얘기다. 스트레이트가 날아오는 순간 우리는 외교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더 나가면 ‘소설’이 될 것이기에 예측은 이쯤에서 줄인다.

자세로서의 외교 실력 부진

정치인 아베에게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이 사람이 인격을 스스로 분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베가 지한파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한국 음식을 좋아하고 우리말도 제법 할 줄 안다. 그러나 지금의 아베는 자연인 아베와 너무나 다르다. 오로지 국익을 위해 자신의 성향을 기꺼이 포기하는 아베의 반한(反韓)은 그래서 더 무섭다. 우리 대통령은 반대다. 일본 싫어하는 건 안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 한 국가의 대통령으로서 우리 대통령은 일본을 좋아해야 한다. 자기 성향대로 정치를, 외교를 하고 있으니 이게 답답하고 한심하다. 대통령만 그런가. 일전에 일본 문예 춘추에 한국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다섯 사람의 대담이 실렸다. 여기서 한국 후지 제록스 회장이었던 다카스키 노부야는 이런 말을 했다.

‘제가 19년간 비즈니스를 통해 아는 특성이 다섯 가지 있습니다. 첫째로 사대주의인데 큰 쪽에 붙고 싶어 합니다. 두 번째가 야랑자대(夜郎自大)로 허세를 떨고 싶어 합니다. 셋째는 책임전가로 가능한 한 남 탓을 합니다. 넷째는 유교ㆍ주자학적인 도덕, 정의감입니다. 항상 ‘어느 쪽이 정의인가’의 양자택일을 하는데 ‘내가 정의다’입니다. 다섯 번째가 일본에는 무슨 말을 해도 된다, 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백 프로 동의한다. 나머지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겠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정서와 말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도무지 감추는 법을 모른다. 목소리 클수록 ‘허당’이라는 건 세상의 진리다. 우리는 반대다. 악만 쓰면 이기는 줄 안다. 이런 성향이 외교에도 그대로 반영이 되니 참 문제다. 상식은 보편적이다. 영화 ‘대부’에는 재미있는 대사가 많이 나온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은 고전 중의 고전이다. 그거 말고 개인적으로 심금을 울린 대사가 셋인데 하나는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둘은 ‘적이 절대 네 생각을 알지 못하게 하라’ 셋은 ‘적을 미워하지 마라. 판단력이 흐려진다’이다. 미국 갱스터보다도 못한 게 지금 한국 외교라면 지나친 자학일까.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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