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 사안 구제문제서 韓日 대립 첨예해 3자적 판단 받아보자는 것...그런데 文정부는 국가주의적 프레임으로 바라봐"
"日내 韓 여론, 징용 판결 이후 급속도로 악화돼...투자기업에 대한 사실상의 압류 이후엔 극단으로 치닫아"
"이번 파문 계기로 日이 가지고 있던 '도덕적 부채의식'도 상실...과거와 피해-가해 관계 역전되는 양상 진행"
노무현 정부 '민관 공동위원회'서 "징용 피해자 배상, 1965년 韓日 청구권 협정에 반영"...文대법원 뒤집는 확정판결
"韓日관계, 미래전략 생각할 때 중요한 파트...횡적인 협력 도모하는 전략 취해나갈 수 밖에 없어"

이원덕 국민대 교수.
이원덕 국민대 교수.

한일(韓日) 관계가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사태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한일협정 최고의 전문가로 꼽히는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가 한일관계에서 더 이상의 파국을 막으려면 징용 재판의 국제사법재판소(ICJ) 공동제소를 통한 해법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17일 펜앤드마이크TV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권순활 펜앤드마이크 논설주간과의 특별대담에서 “(징용 사안에서) 피해자의 구제 문제를 두고 우리 대법원과 일본 최고 법원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3자적인 판단을 받아보자는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과도하게 국가주의적인 프레임으로 ICJ제소를 바라보고 있어, 그에 대한 두려움과 반대가 있는 것 같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대담은 일본의 반발과 경제 보복 조치 등 이번 한일 갈등을 초래한 핵심 원인인 한국 대법원의 지난해 10월 '징용 배상 판결' 이후 일본이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요구해온 단계적 해법 중 '제3국을 통한 중재위' 설치 시한인 18일을 하루 앞두고 이뤄졌다.

이 교수는 징용 배상 판결 후 한국 정부가 취해온 무시 전략이나 한일 기업이 출연한 기금을 통한 해결은 이미 물 건너간 상황이고 시한이 임박한 '제3국을 통한 중재위'를 한국이 받아들일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일본 국민들은 일본 정부와 마찬가지로 한국 대법원의 징용 관련 판결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라고 전하면서 최근 일본 내에서 한국에 대한 반감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일본 총리실에서 매년 하는 여론조사가 있는데, 당초 60%의 국민이 한국에 대해 호감을 표시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거의 반토막난 30% 정도만 호감을 표현했고, 나머지는 호감이 없다는 식의 답을 했다”며 “(일본 내 이같은 분위기는) 일본 내 투자기업들에 대한 사실상의 압류 조치가 시행되면서 더 극단적으로 치닫았다”고 했다. 징용 배상 판결과 위안부 문제 등에 막무가내로 일관하는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이 경제 분쟁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다만 경제 보복적 조치에 대해서는 일본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

일본이 한반도 식민지배와 관련해 일정부분 지니고 있던 한국에 대한 ‘도덕적 부채의식’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라지고 있는 점도 우려했다. 일본은 지금까지 한국과의 관계에선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일정 수준의 양보와 자제 등을 병행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도덕적 부채의식’은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일본 내에서) 지금까지 한국은 역사 문제와 관련해 ‘피해자다’라는 여론이 있었지만, 징용과 위안부 문제로 피해-가해 관계가 역전되는 양상이 진행되고 있다”며 “강대국으로서의 일본도 최근 (중국 등의 성장으로) 위협을 느끼고 있고, 이제는 과거의 아량을 베풀 수 있는 국가가 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005년의 ‘민관 공동위원회’ 사례도 소개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열린 이 위원회는, 징용 피해자 배상 관련 사항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반영됐다고 발표했다. 당시 발표로 징용 배상 문제는 끝난 것이란 인식이 퍼져 법원 판결에도 영향을 줬지만, 2012년 5월 대법원에서 ‘한・일 협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개인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파기환송 판결을 냈고, 2018년 10월에는 그 판결을 확정했다.

'펜앤 초대석'에서 대담을 진행하고 있는 이원덕 국민대 교수(좌)와 권순활 펜앤드마이크 논설주간(우).
17일 '펜앤 초대석'에서 대담을 진행하고 있는 이원덕 국민대 교수(좌)와 권순활 펜앤드마이크 논설주간(우).

이와 관련, 이 교수는 “과거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일본으로부터 구제조치가 이뤄졌음에도, 태평양 피해자 그룹은 구제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문제제기를 했다”며 “(그룹은) 외교문서 속에 권리 청구권이 숨어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외교문서 공개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당시 정부가 패소해 외교 문서가 공개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위원회 활동 후속조치로 나온 게 2007년에 특별법이었고, 그 결과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사업이 이뤄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런데 대법원이 지난해 10월 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이 있다고 결론을 내면서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한일관계에 대한 정부의 ‘신중한 대응’도 당부했다. 그는 “한일관계는 양자관계에 그치지 않고 미래전략을 생각할 때 대단히 중요한 파트라고 본다. 아시아 태평양은 미국과 중국이 전략적으로 경쟁하는 구도로 접어들 것이다. 그 사이에 끼인 게 한반도와 일본”이라며 “(한국과 일본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고 있는 소중한 관계다. 한일이 협력을 하고, 그를 기반으로 횡적인 협력을 도모하는 전략을 취해나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를 통해 대미・대중 관계도 조절해나갈 수 있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서울대 외교학과와 동대학원을 거쳐, 일본 도쿄대에서 한일 협정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대표적인 일본 전문가 중 한 명으로 일본 학계 등 각계 주요 인사들과도 교분이 깊다. 또 이날 대담을 맡은 권 주간은 1997년부터 2000년까지 동아일보 도쿄특파원을 지낸 지일파 언론인으로 펜앤드마이크 창간과 함께 전무 겸 편집국장으로 창간 초기 지면제작을 책임진 뒤 올해 4월부터 논설주간을 맡고 있다.

김종형 기자 kj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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